고자묘
高慈墓
입지
고자(高慈)는 700년 납월(臘月) 17일에 당시 낙주(洛州) 합궁현(合宮縣) 평낙향(平樂鄕)에 묻혔다. 1923년 하남 낙양의 북쪽 근교에서 출토되었다.
유적개관
아버지인 고문(高文)은 고구려 멸망 이전에 당에 귀순하였다. 고자는 우무위장상(右武衛長上), 유격장군의구장상(遊擊將軍依舊長上), 영원장군위구장상(寧遠將軍依舊長上), 정원장군장상(定遠將軍長上) 등을 지냈다. 1923년 발굴된 무덤에서는 가로 세로 모두 72cm로, 37행 해당 36자, 해서로 쓰인 묘지가 발견되었다. 묘지명에는 그의 선조인 고량(高量)이 고구려의 삼품책성도독위두대형겸대상(三品柵城都督位頭大兄兼大相)을 역임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