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에 대한 표기는 ‘夫餘’와 ‘扶餘’가 있다. 『史記』, 『漢書』, 『三國志』, 『後漢書』, 「廣開土王碑」, 「牟頭婁墓誌」 등에서는 夫餘라고 하였고, 『晉書』, 『魏書』, 『舊唐書』, 『新唐書』 및 『三國史記』, 『三國遺事』, 「東明王篇」, 『帝王韻紀』 등에서는 扶餘라고 하였다. 『한원』의 해당 주문에서는 『위서』를 인용해 扶餘라 했지만, 이외에는 ‘夫餘’로 표기하였다.
餘.
魚豢魏略曰: “高句驪國, 在遼東[之東]주 003
각주 003)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之東」을 보입. 『삼국지』 권30 고구려전과 『태평어람』 소인 『위략』 기사에 따라 「之東」을 보입.
千里. 南接朝鮮·穢貊, 東接沃沮, 北接夫餘也.”
각주 001)
원문 「接」. 길림본 「接」으로 교감.
각주 002)
부여에 대한 표기는 ‘夫餘’와 ‘扶餘’가 있다. 『史記』, 『漢書』, 『三國志』, 『後漢書』, 「廣開土王碑」, 「牟頭婁墓誌」 등에서는 夫餘라고 하였고, 『晉書』, 『魏書』, 『舊唐書』, 『新唐書』 및 『三國史記』, 『三國遺事』, 「東明王篇」, 『帝王韻紀』 등에서는 扶餘라고 하였다. 『한원』의 해당 주문에서는 『위서』를 인용해 扶餘라 했지만, 이외에는 ‘夫餘’로 표기하였다.
각주 003)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之東」을 보입. 『삼국지』 권30 고구려전과 『태평어람』 소인 『위략』 기사에 따라 「之東」을 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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