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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한(漢)
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우즈마사노키미노스쿠네)와 조상이 같으며 융통왕(融通王; 유우즈우와우)의 후손이다.
 
【주석】
1. 진기촌(秦忌寸)
진기촌씨는 좌경 제번(하)에 2개, 우경 제번(상)에 4개, 산성국 제번에 3개, 대화국 제번에 1개, 섭진국 제번에 1개, 하내국 제번에도 1개조가 실려 있다.
진(秦; 하타)이라는 씨명은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조에는 “천황이 진왕(秦王)이 바친 실, 솜, 명주, 비단은 짐이 입으니 부드럽고 따듯하여 피부와 같아서 파다(波多; 하타)라는 성을 내린다”라는 씨명 유래 기원 설화가 기재되어 있다. 진씨의 씨명에 관한 연구에서는 이 외에 기직(機織)을 의미한다고 보거나, 범어(梵語) ‘pata’가 견포(絹布)를 의미한다고 설명하거나, 고대 한국어 ‘바다’, 고대 한국 지명인 ‘파단(波旦)’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2년(683) 9월 정미조에는 “진조(秦造; 하다노미야츠코) 등 모두 38씨에게 연(連; 무라지)이라는 성을 내렸다”라고 하고, 천무천황 15년 6월 갑오조에는 “진련(秦連; 하타노무라지) 등 모두 11씨에게 기촌(忌寸; 이미키)이라는 성을 내렸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신찬성씨록』 에 게재된 진씨는 진 시황제의 후손인 궁월왕(弓月王; 유즈키오) 혹은 융통왕(融通王; 유즈오)의 후손이라는 조상 전승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신찬성씨록』 에 기재된 ‘진 시황제의 후손’이라는 출자 전승을 그대로 인정하는 연구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궁월군(왕)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신라나 가야 지역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진 시황제의 후손이라 칭하는 26씨 가운데 태진공숙녜와 동조관계를 맺은 씨족은 13개 사례가 확인된다. 이들은 진 시황제의 4세손 공만왕(功滿王), 5세손 융통왕에서 진주조(秦酒造)로 이어지는 계보상 인물의 후손임을 주장하고 있다. 화천국에는 본조의 「진기촌」 조(1046)와 다음 조에 기재된 「진승」 조(1047)에 “태진공숙녜와 조상이 같으며 융통왕의 후손이다”라고 적혀 있다.
진기촌이라는 씨성은 좌경, 우경뿐만 아니라 산성국, 대화국, 섭진국에 모두 게재되어 있으므로 특별히 국명을 제시하지 않은 한 화천국에 관부된 인물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계시(堺市) 토탑정(土塔町)의 대야사적(大野寺跡) 토탑 조사에서 출토된 ‘각서와(刻書瓦)’에는 승니의 이름과 사원이나 불상의 건립과 유지, 사경 사업 등을 위해 재물이나 노동을 기진하는 불교 용어로 ‘지식(知識)’이라 불린 인물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또 계시(堺市)의 ‘계(堺)’라는 지명은 섭진국, 하내국, 하천국의 경계[境; 사카이]에서 유래한 것이라 간주되며, 대판부(大阪府)의 천북(泉北) 지역에 위치한다. 천북은 율령제 화천국의 북부에서 유래한 지역 명칭이다. 따라서 대야사지에서 출토된 기와 명문(大野寺址出土瓦銘)에 나오는 성을 가진 진씨인 진련충마려(秦連虫麻呂), 성을 갖지 않은 진옥녀(秦玉女) 등의 문자가 확인된다. 이 문자와에 등장하는 진씨는 화천국 소속의 지식으로 간주되므로, 성이 기재되지 않은 진옥녀가 화천국 진기촌씨 일족일 것으로 추정된다.
*계시(堺市) 토탑정(土塔町) 대야사지(大野寺址) 토탑출토와(土塔出土瓦)
대판부(大阪府) 계시 토탑정에 소재한 대야사지 토탑은 흙을 쌓아 올리고 외면에 기와를 덮어 만든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다. 1997~2003년에 걸쳐 계시교육위원회가 실시한 발굴 조사에 의거해 행기(行基; 교키)가 조영한 대영사의 토탑이라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특히 ‘신귀 4년 □묘년 2월(神龜四年□卯年二月)’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면서 나량 시대의 고승 행기의 사적을 기록한 『행기연보(行基年譜)』 의 기록의 신빙성이 확인되었다. 『행기연보』 에는 행기가 신귀 4년(727) 화천국 대조군(大鳥郡) 대야촌(大野村)에서 대야사의 조영 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하고, 겸창 시대에 성립된 『행기보살행상회전(行基菩薩行狀繪傳)』 에는 대야사에 존재한 13층탑이 피라미드 형태라고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행기연보』 의 기재 연월과 일치되므로 이 유구가 바로 대야사의 13층탑이라는 점, 신귀 4년에 창건되었다는 점 등이 확인되었다.
2.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현존 『신찬성씨록』 은 초략본이므로 각 조문에는 ‘삼례(三例)’에 관한 내용만 초략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좌경의 「태진공숙녜」 조와 산성국의 「진기촌」 조에 는 조상의 사적과 씨성, 사성에 관한 내용 등이 비교적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진씨는 좌경 제번의 첫머리에 기재되어 동조관계의 주축을 이룬 태진공숙녜, 산성국 제번의 첫머리에 기재된 궁월왕 전승을 대표하는 진기촌, 그리고 하내국 제번의 진숙녜를 중심으로 하여 동조관계를 형성한 것이 확인된다. 태진공숙녜에 관해서는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 조(740) 참조.
3. 융통왕(融通王)
융통왕은 궁월왕(弓月王)이라고 분주에 기재되어 있다. 『일본서기』 응신(應神) 14년 시세조와 동 16년 8월조에는 궁월군(弓月君)이 백제에서 인부(人夫) 120현(縣)을 이끌고 도해한 전승이 기록되어 있다. 또 『신찬성씨록』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조(太秦公宿禰)」 조(740)와 산성국 제번 「진기촌(秦忌寸)」 조(914) 및 『일본삼대실록』 원경(元慶) 7년 12월 25일 정사조에도 보인다. 『고어습유(古語拾遺)』 에는 경도풍명조(輕島豐明朝)에 진공의 조상 궁월이 120현민을 이끌고 귀화하였다고 적혀 있다.
융통왕에 관해서는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 조(740) 융통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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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