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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4-2-3 미쓰비시 하시마탄광

중국인 이경운(李慶雲) | 1943년 포로가 되어 1944년 하시마탄광에 연행
 
이경운 씨는 허베이성 출신입니다. 1942년에 중국 팔로군에 들어가 1943년 11월 일본군에 포위되어 붙잡혔습니다. 일본군은 마을을 습격하고 집에 있는 물건을 빼앗고 불태웠습니다. 고문을 받아 몇 번이고 기절했습니다. 감옥에서 탕구(塘沽)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하시마로 끌려갔습니다. 하시마에서는 허름한 목조 가옥에 수용되었는데, 방 하나에 40~50명을 몰아넣었습니다. 휴일도 없이 하루에 12시간 2교대로 일했고, 대규모 출탄(出炭)일에는 더 연장되었습니다. 갱내에서 때로는 훈도시(褌)만 입거나 맨몸으로 일을 시켰습니다. 공복으로 현기증이 나서 석탄을 싣는 작업이 늦어진 적이 있는데 감독은 뒤에서 몽둥이로 머리를 때렸습니다. 아파도 쉴 수 없었습니다. 신체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은 혼합가루를 작은 공기로 한 그릇씩이었습니다. 병에 걸려도 치료는 받지 못했고 오히려 배식량은 줄었습니다. 2명이 가스 누출로 죽었 때 7명이 탄광장에게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습니다. 7명은 단단히 묶여 난타를 당하고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경찰관이 목 뒤를 칼로 베었습니다. 귀국 후에는 대일협력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매우 위축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軍艦島に耳を澄ませば)』, 社会評論社, 2011, 『제2차 세계대전 일본 강제연행 중국노동자 구술사2(二戦擄日中国労工口述史2)』, 斎魯書社,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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