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김○조

  • 구분
  • 내용
  • 출생년도
  • 1926년
  • 본적
  • 경남 의령군 화정면
  • 동원 시점
  • 1943년 5월
  • 귀환 시점
  • 1945년 3월(징병)
  • 동원상황
  • 마을구장이 징용영장을 가져와서 정해진 날짜에 집결
  • 이동경로
  • 화정면(30명)→도보로 의령군청(360명 집결, 1박)→군북역→부산(트럭 이동)→일본 나가사키 시내(배)→하시마
  • 동원지
  • ○ 약 만평정도의 작은 섬에 있는 탄광이었음.
    ○ 사방이 바다로 된 조그만 섬이었고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이 있었음.
  • 노동생활
  • ○ 해저 800m아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석탄을 캠.
    ○ 아침에 도시락을 가지고 이름을 개찰하고, 철장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면 지하 850m까지 들어감. 탄광에 들어가면 12시간 후에 나왔음. 떨어지는 돌 때문에 모자 속에 고무즐을 넣어서 썼음. 굴 안은 서지 못할 정도로 좁고 온도가 46도를 넘었으며 고무즐로 서로 묶고 일을 하였음.
    ○ 폭행이 심했음. 군기가 매우 셌고 말을 안들을 때는 구타당하였음. 바닥에 엎어놓고 고무졸을 허리에 감아 때리기도 하였음.
    ○ 일요일에는 목총을 가지고 군사훈련을 하였음.
  • 숙소
  • ○ 군대식으로 판자를 깔고 담요를 덮음. 40~50명이 함께 생활
  • 식사
  • ○ 콩깻묵으로 밥을 해서 주었으며 보리밥과 섞어서 3끼를 먹었으나 한주먹 정도여서 항상 배가 고팠음.
  • 노동재해
  • ○ 노역 중 돌이 떨어져 머리가 찢어짐. 가끔 위에서 굴러 떨어진 돌에 맞아 죽는 사람도 있었음.
  • 특이사항
  • ○ 3개월 후 중국인 포로 350명과 교환되어 나가사키 조선소의 항공모함 만드는 곳으로 옮김. 당시 의령사람들은 모두 섬에서 나와 조선소로 이동하였음.
    ○ 조선소에서는 미군포로와 쇳덩어리 나르는 일을 2인 1조로 하였고 헌병이 칼을 차고 감시함. 미군 포로는 헌병의 감시를 받음. 일요일에는 옥상에서 군사 훈련을 함.
  • 귀국과정
  • ○ 1945.3월 징병대상이 되어 귀국. 의령국민학교에서 훈련을 받던 중 해방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김○조 자료번호 : isjs.d_0004_0010_004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