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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평양역전 이실분

平壤驛前二室墳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조선
  • 원소장처
    평양직할시 중구역 련화동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평양 중구역 련화동에 위치한다.
유적개관
1954년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와 문화유물보존위원회가 공동으로 발굴조사하였다. 반지하에 돌로 쌓은 고구려 석실봉토벽화분이다. 묘도, 전실, 용도, 후실로 이루어진 이실묘이다. 전실 좌우에 감이 있다. 전실은 길이 3.12m, 너비 2.88m이며, 후실은 길이 3.78m, 너비 3.45m이다. 전실 동쪽 감 입구 좌우에 사각 돌기둥을 하나씩 세웠다. 석실 바닥의 다진 흙 위에 석회, 숯, 석회를 차례로 깔고, 그 위에 벽돌을 두겹으로 다시 깔았다. 파괴가 심하여 천장구조는 알 수 없다. 무덤 안에 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는데 주제는 생활풍속이다. 안악3호분이나 태성리1호분과 유사한 내용이다. 4세기 말로 편년된다.
출토유물
* 금제 심엽형장식품 3, 금제 화판형장식품 3, 금제 보요형장식품 1, 금제 구형장식품 1, 금동제 이식 1, 금제 구슬 3, 은제 지환 1, 금동제 화판형장식정 2, 철제 관정, 동제 편, 철관편 등
참고문헌
평양역전이실분발굴보고, 「고고학자료집」1, 1958
해설
1954년 발굴조사 된 반지하에 돌로 쌓은 고구려 석실봉토벽화분이다. 발굴 당시 이미 심한 파괴를 입어 벽체의 대부분과 천정부가 없어져 있었다. 묘도, 앞방[전실(前室)], 용도(甬道), 널방[현실(玄室)]로 이루어진 이실묘이다. 앞방[전실(前室)] 좌우에 감(龕, 신주를 모셔두는 곳)이 있다. 앞방[전실(前室)]은 동서 3.12m, 남북 2.88m이며, 널방[현실(玄室)] 은 동서 3.78m, 남북 3.45m이다. 널방[현실(玄室)] 바닥은 다진 흙 위에 석회, 숯, 석회를 차례로 깔고, 그 위에 벽돌을 두 겹으로 다시 깐 뒤, 벽돌 사이를 석회로 메꾸었다. 앞방[전실(前室)] 동쪽 감 입구 좌우에 사각 돌기둥을 하나씩 세웠다. 파괴가 심하여 천장구조는 알 수 없다. 무덤 안에 회(灰)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는데 주제는 생활풍속이다. 서쪽 감 입구 기둥에는 문지기가 검을 짚고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통해 서쪽 감에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감의 좌우에는 도끼를 쥔 의장대 행렬이 있다. 앞방[전실(前室)] 남벽 우측에도 서쪽을 향한 고취악대가 있고 좌측에는 기마대열이 있다. 동벽에는 방앗간과 부엌이, 동쪽 감의 동벽에는 수레바퀴가 남아 있다. 벽화의 내용이 안악3호분이나 태성리1호분과 유사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축조연대는 4세기 말로 편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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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역전 이실분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10_0100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