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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오도령구문고분군

五道嶺溝門古墳
  • 저필자
    김지영(숙명여자대학교)
  • 날짜
    1978
  • 시대
    청동기시대~고구려초기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마선구 태평촌(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麻線鄕 太平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태평촌 서쪽 1.5km 떨어진 오도령구문 남쪽 비탈에 위치
유적개관
정방형 계장식 적석총으로, 도로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 3층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청동단검이 1점 확인되었다. 대부분 파괴되어 고분의 정황은 확실치 않다.
유물개관
청동단검1(전국 말기 이후), 청동검표1, 청동창3, 동부1, 월형부4, 동경1, 철촉2(도끼날)
참고문헌
「集安高句麗墓葬」, 2007
해설
오도령구문 고분군은 중국 통화시 집안시 마선향 태평촌의 서쪽에서 1.5㎞ 떨어진 오도령구문 남쪽 비탈에 위치한다. 무덤이 위치한 산비탈 아래로 집안과 환인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다. 이 고분은 집안시 태평향 소속이었는데, 태평향이 없어지며 현재 마선향 소속으로 바뀌게 되었다. 1978년 도로공사중에 청동기가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에 유물이 교란되면서 무덤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1978년 2차 조사 때 청동단검이 발견된 곳에서 계단식 돌무지무덤을 발견하였다. 무덤은 산비탈을 따라서 만들어졌는데 북동쪽이 높고 남서쪽이 낮다. 북동쪽은 자연의 산비탈을 이용해서 돌을 쌓았기 때문에 계단은 확인되지 않았다. 남서쪽은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오도령구문 고분은 사각형의 계단을 쌓은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남서쪽의 계단은 훼손이 심한데, 계단은 3층으로 추정된다. 남은 계단 돌들은 일정하지 않은 상태로 몇 개의 돌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북동쪽의 경우 계단을 만들지 않았고, 지대가 낮은 남동쪽에만 계단으로 단을 만들었다는 점을 본다면 단순 돌무지무덤에 가까울 가능성도 있다. 고분은 한편이 14m이고, 3단의 계단은 각 층마다 1.3m~1.85m 안쪽으로 들여쌓아 계단의 형태를 만들었다. 각 단의 높이는 80㎝이다. 무덤의 위쪽 중앙에서 약간 동쪽으로 떨어진 지점에 돌을 쌓아 만든 둥근 모양의 매장부가 있다. 현재 고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무덤의 북벽에서 약 5m, 동벽에서 약 12m 떨어진 곳에서 매장부 가운데 지점을 중심으로 11개의 청동기와 2개의 철기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유물을 분류해보면 청동단검(靑銅短劍) 1개, 동제 도끼(銅斧) 1개, 동제 거울(銅鏡) 1개, 칼집끝장식(劍鏢) 1개, 동제 창(銅矛) 3개, 부채모양도끼(鉞形銅斧) 4개, 도끼날 철제화살촉 2개이다.
오도령구문 돌무지무덤은 무덤 안에서 청동기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북한에서는 발견된 청동기가 쇠 화살촉과 같은 시대의 것이 아니라고 보고 쇠 화살촉은 다른 무덤에 있었던 것이 섞인 것으로 보고 있다. 발견된 청동기는 한국식과는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유물은 중국 동북 요동반도의 길림, 장춘 일대의 청동검과 유사한 형식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기는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인 기원전 3시기나 그 이후로 추정된다. 철제 화살촉의 경우는 고구려 계동의 화살촉으로 추정한다. 즉 고분은 이르면 중국의 전국시대 말에서 한 무제가 4군을 설치했던 기원전 108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덤은 청동기가 동반되었다는 점에서 그 시기가 매우 이르고, 한편으로는 고구려 돌무지 무덤의 기원을 알려주는 무덤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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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령구문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