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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편검산산성

偏山山城
  • 저필자
    정동준(충남대학교)
  • 시대
    고구려/발해/요금
  • 원소장처
    吉林省 龍井市 三合鎭 富裕村
  • 시대
    발해
  • 유형
규모
둘레: 1,502m
입지
산성은 동북쪽으로 고저 기복이 있는 산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서남 산 아래에서 1.5km 떨어진 곳은 도문강이고, 대안은 조선 유선군(游仙郡)이다.
유적개관
성벽은 대부분이 자연적인 험준함 혹은 절벽의 가장자리를 이용하여 석벽을 축조한곳이 많으며, 혹은 직접적으로 올라갈 수 없을 만큼의 천연절벽을 이용하여 수직 혹은 비스듬한 성벽을 이루었고, 성벽의 일부는 자연적으로 파괴되었다. 옹문은 모두 돌로 축조하였다.
유물개관
석조, 청동 숟가락
해설
길림성(吉林省) 용정시(龍井市) 삼합진(三合鎭) 부유촌(富裕村)의 한왕산(汗王山) 정상에 있어서 한왕산산성(汗王山山城)이라고도 부르는데, 청천촌(淸泉村)과는 2.5㎞ 떨어져 있다. 한왕산은 천불지산(天佛指山)의 지맥에 속하며, 그 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10㎞ 지점에 있다. 성은 동북쪽으로 높이에 기복이 있는 산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서남쪽 산 아래에서 1.5km 지점은 도문강(圖們江)이고 맞은편은 북한의 유선군(游仙郡)이다.
성 서북쪽에서 동남쪽까지는 620m, 동북쪽에서 서남쪽까지는 20∼160m, 둘레는 1,502m이다. 산 정상 바깥쪽의 사방에서 동북쪽이 비교적 완만한 동향의 비탈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높이 5∼15m에 이르는 절벽이다. 성벽은 대부분이 자연적인 험준함 혹은 절벽의 가장자리를 이용하여 석벽을 축조한 곳이 많으며, 혹은 직접적으로 올라갈 수 없을 만큼의 천연절벽을 이용하여 수직 혹은 비스듬한 성벽을 이루었고, 성벽의 일부는 자연적으로 파괴되었다. 동북쪽과 서남쪽에 있는 문지가 있는데, 동북쪽에 있는 옹문은 돌로 축조하였다. 성 안에는 3곳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는데, 서남쪽 문지 안쪽, 옹문 남쪽, 동남쪽 성벽 가장자리에 있다. 저수지는 옹문에서 남쪽으로 40m 지점에 있다.
조동(朝東) 산성은 주거지·저수지 등 일반시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견고하고 전술적 의의를 지니는 옹문,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돌로 축조한 성벽 등을 구비하고 있어, 중요한 군사시설이라고 생각된다. 산성의 축조연대와 그 역할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깊이 있는 연구를 기대하지만, 축조 형식과 특징에 근거하여 잠정적으로 아마도 고구려 시기에 축조하여 요(遼)·금(金) 시기(907∼1234)에도 계속 사용하였다고 생각된다.
성 안에 현존하는 유물은 매우 적어서 겨우 서남쪽 문지 남쪽의 성벽 부근에서 1점의 회색 베무늬 암키와조각을 수습하였다. 현지인들에 의하면, 성 안에서 일찍이 석조와 청동 숟가락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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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검산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50_0060_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