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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에도시대 서민문화

2. 에도시대 서민문화

에도시대 도시민의 생활은 신분 계층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다. 중, 하급 무사들의 생활은 곤궁했으며, 특히 하급 무사는 부업을 통해 생활을 유지했다. 무사의 부업에는 화초 재배, 분재, 금붕어 기르기, 우산 제작, 붓 제작 같은 일이 있었고, 가족들이 협력하여 베틀을 놓고 옷감을 짜는 경우도 있었다.
조닌[町人]은 에도시대 도시의 상인이나 장인을 말하는데, 상층 조닌은 비단옷을 입고, 고급 생활용품을 소지하며, 유흥가를 출입하면서 거금을 쓰는 소비자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닌은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여 검소한 생활을 했다. 도시에는 하층민이 거주하는 지역이 형성되었으며, 무가(武家) 상가(商家)의 봉공인(奉公人), 목수, 토수, 행상, 일당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생활했다.
도시에는 목욕탕과 이발소가 많았고, 서민들이 즐기는 오락 시설도 많았다. 가부키(歌舞伎) 극장을 비롯하여 역사 이야기나 인물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단[講談], 만담의 일종인 라쿠고[落語]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고, 일본 씨름인 스모[相撲]도 인기를 끌었다. 유곽(遊廓)은 막부가 유흥가로 지정한 특별 공간이었는데, 교토의 시마바라[島原], 오사카의 신마치[新町], 에도의 요시와라[吉原] 등이 대표적이었다. 유곽은 신분의 제약이 없어 누구나 출입하는 공간이었지만 경제력 있는 조닌들이 대우를 받았다.
그림 17 에도의 유곽
도시는 생활이 유동적이고 부침이 심해 연대감이 형성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조닌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것은 공통의 취미였는데, 도시인의 취미생활은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보다는 교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에도시대에는 대도시의 유력한 조닌을 중심으로 유예(遊藝)를 배웠으며, 와카[和歌], 하이쿠[俳句], 교카[狂歌], 다도(茶道)와 관련된 동호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농민들은 도시의 조닌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 속에서 생활했다. 이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지을 때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할 때 협력하여 작업을 했다. 협동 작업에서는 요령을 피운다든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고, 촌락에서 그런 사람에게 집단으로 벌을 가했다. 농민의 오락으로는 쇼가쓰[正月], 봉[盆], 셋쿠[節句] 등의 연중행사가 있었고, 농한기에 개최되는 연극과 스모대회가 있었다. 이런오락은 단조롭고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농민들에게 휴식의 기회를 제공했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서민들에게는 관습적으로 지켜오던 신앙이 있었다. 농민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논과 물의 신령을 섬겼고, 각 지역마다 특별한 효험이 있다는 신령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서민들은 현세 이익을 추구하면서 전국적으로 영험이 있다고 알려진 사원과 신사를 참배했다. 특히 천황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가 모셔진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참배하는 것이 성행했고, 이곳을 참배한 이후에는 교토나 오사카 등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원, 신사, 영산, 명산을 찾아 기도하는 목적은 신불(神佛)의 가호를 받기 위해서였다. 서민들은 신불의 가호를 입어 일상생활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염원했고, 상업이 번창하고, 질병을 고치며, 집안이 평안하기를 빌었다(구태훈(2008), 227~230).
그림 18 우타가와 구니사다[歌川國貞]의 스모 그림, 18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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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서민문화 자료번호 : edeah.d_0004_0040_004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