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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전 무겸 선전관 성초형이 군비책 6가지를 상소하여 건의하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694년 7월 16일(음)
  • 출전
사료해설
일본과의 울릉도 쟁계는 일반인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1694년(숙종20) 7월의 전무겸선전관(前武兼宣傳官) 성초형(成楚珩)의 상소가 그러한 것이었다. 그는 울릉도가 국가의 요충이며 땅이 넓고 기름짐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버려왔었다고 하고, 근자에 일본이 감히 ‘구거지계(求居之計)’를 내고 있다고 하니 이곳에 진(鎭)을 특설하여 일본이 넘보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숙종대 울릉도에 대한 관심이 조정은 물론 일반백성을 망라한 일반적인 것으로 발전하고, 울릉도의 방비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원문
○壬午/前武兼宣傳官成楚珩上疏, 陳備豫之策, 有六。 一曰, 鳥嶺,【聞慶。】竹嶺,【豐基。】置忠淸道兵使及營將, 鬱陵島設鎭是也。 二曰, 洞仙嶺【鳳山。】靑石洞【開城府。】設鎭是也。 三曰, 平山月籠洞, 築城儲穀是也。 四曰, 諸處戰船, 皆使之泛留水中是也。 五曰, 諸處軍官, 一定其額, 而汰其餘, 悉充軍兵之逃故者是也。 六曰, 諸處軍器, 無時點閱是也。 上命該曹稟處, 然無所施行。
번역문
전(前) 무겸 선전관(武兼宣傳官) 성초형(成楚珩)이 상소하여 예비(豫備)해야 할 계책 여섯 가지를 진달했다. 첫째, 조령(鳥嶺)과【문경(聞慶)에 있다.】 죽령(竹嶺)에【풍기(豊基)에 있다.】 충청도 병사(兵使) 및 영장(營將)을 두고, 울릉도에 진(鎭)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동선령(洞仙嶺)과【봉산(鳳山)에 있다.】 청석동(靑石洞)에【개성부(開城府)에 있다.】 진을 설치하는 것이었고, 세째는 평산(平山) 월롱동에 성을 쌓고 곡식을 저장하는 것이었고, 네째는 모든 곳의 전선(戰船)을 모두 바다 가운데 띄워 놓게 하는 것이었고, 다섯째는 모든 곳의 군관(軍官)을 일체 액수(額數)를 정하고 그 나머지는 도태하여 모두를 도고(逃故)한 군병에 충당하는 것이었고, 여섯째는 모든 곳의 군기(軍器)는 무시로 점열(點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임금이 해조(該曹)에 품처(稟處)하도록 명했으나, 시행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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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무겸 선전관 성초형이 군비책 6가지를 상소하여 건의하다 자료번호 : sd.d_0149_0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