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사료로 보는 독도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와 토산물 등을 바치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417년 2월 5일(음)
  • 출전
사료해설
이 사료는 안무사(安撫使) 김인우의 제1차 울릉도 쇄환 기록이다. 김인우가 우산도(于山島, 울릉도)에서 돌아와 대죽(大竹)과 물소가죽(水牛皮), 생모시(生苧) 등을 특산물을 바치고, 그곳의 거주민 3명을 쇄환해 왔는데 당시 그 섬에는 15호 86명의 남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울릉도민을 육지로 쇄환한 이유는 섬이나 해안 지역을 노략질하는 왜구의 침입을 막고, 각종 군역이나 부역을 피해 울릉도로 도망간 주민들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섬 주민을 쇄환하는 정책은 섬 주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을 뿐 영토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문
○按撫使金麟雨還自于山島, 獻土産大竹、水牛皮、生苧、綿子、檢樸木等物, 且率居人三名以來。 其島戶凡十五口, 男女幷八十六。 麟雨之往還也, 再逢颶風, 僅得其生。
번역문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颱風)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와 토산물 등을 바치다 자료번호 : sd.d_0149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