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혼지(東本願寺) 여관에서 삼사(三使)와 시(詩) 창화(唱和) 및 필담(筆談)
준신인(惇信院)님주 002의 시대에 조선인이 내빙했을 때,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여관에서 시창화와 필담[을 나누다]
도카칸(滕嘉奐),주 003 자는 이모쿠(夷目), 호는 간후(雁阜), 에도(東都)사람, 시라사키 나오에몬(白崎直右衛門)
세이세이요쿠(井世翼), 자는 시우(子羽), [호는] 류타쿠(笠澤), 이와이 야스에몬(岩井安右衛門)
규이칸(宮維翰), 자는 분요쿠(文翼), [호는] 류몬(龍門), 헤이안(平安)사람, 미야세 산에몬(宮瀨三右衛門)
학사(學士) 박경행(朴敬行), 자는 인칙(仁則), 호는 구헌(矩軒), 제술관(製述官)
태사(泰事) 이봉환(李鳳煥), 자는 성장(聖章), 호는 제암(濟菴), 정사서기(正使書記)
진사(進士) 이명계(李命啓), 자는 자문(子文), 호는 해부(海阜),주 004 종사서기(從事書記)
시라사키(白崎) 씨가 구헌(矩軒, 박경행)에게 물었다.
메이레키(明曆)·텐나(天和)에서 쇼토쿠(正德)·쿄호(享保)에 이르기까지,주 005 여러 빙사(聘使)들의 시를 모두 모아 세상에 간행했습니다. 나는 매번 그것을 읽고, 제술관 청천(靑泉) 공(公) 신유한(申維翰)주 006
각주 006)
의 시가 뛰어나다고 여겼습니다. 나 혼자 그렇게 칭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시에 숙달된 자 또한 ‘동쪽[일본]으로 온 자들 중 최고’라고 합니다. 그 시의 격조가 빼어나고 풍채와 태도가 사모할 만합니다. 신유한 공이 무탈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경모하는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신유한은 1719년 정사 홍치중(洪致中)·부사 황선(黃璿)·종사관 이명언(李明彦) 등 통신사 일행이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사행 중 신유한의 시를 받기 위해 수많은 일본 문사들이 모여들었고, 일본문사들로부터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 각각 주고받은 시와 필담이 『남도창화집(藍島唱和集)』·『상한창수집(桑韓唱酬集)』·『상한훈지(桑韓塤篪)』·『객관최찬집(客館璀粲集)』·『봉도유주(蓬島遺珠)』·『삼림한객창화집(三林韓客唱和集)』 등 수많은 필담창화집에 수록되어 있다. 신유한은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특히 시에 걸작이 많고 사(詞)에도 능했다. 사행일기로 『해유록(海遊錄)』이 있고, 그 밖에도 『청천집(靑泉集)』과 『충서난록(奮忠難錄)』 등이 있다. (대일외교 용어사전)
구헌이 답하다.
청천 [신유한]의 시는 과연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기운이 씩씩하고 말도 훌륭합니다. 그대는 그것을 아시는군요.
이와이(岩井) 씨가 구헌에게 고했다.
우리나라는 상고시기에 군현을 전국에 두어 하나같이 한당(漢唐)의 제도를 본받았고, 우리의 춘궁학사(春宮學士) 시게노노 사다누시(滋野貞主)주 008가 편찬한 『경국집(經國集)』에 그 책문(策問)주 009과 대책문(對策文)주 010을 상세히 실었습니다. 우리 신조(神祖)는 천명을 받아 난을 평정하여 올바름을 돌이켰으며, 국내를 통일하고 제후를 세워 사민(四民)을 나누었으니, 삼대(三代)주 011 봉건주 012의 제도와 크게 유사합니다. 다만 그 제도에 다시 오등(五等),주 013 삼등(三登)의 구분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한 바 공들께서 쓰시마부터 에도까지 거쳐 온 이곳저곳이 제후의 봉읍입니다. 우리나라는
천황이 역대로 야마시로노쿠니(山城國)주 014에 도읍했고, 제후는 모두 습봉(襲封)하며 대부는 모두 세록(世祿)하니, 무사의 자식은 항상 무사, 농민의 자식은 항상 농민, 공상(工商) 또한 그러합니다. 이것은 과거(科擧) 합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 그것을 아시는지요. 저 세이요쿠(世翼)의 경우 제후 가문에서 대대로 녹을 받는데, 다만 보잘것없는 무인으로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 외고 글을 읽으며 남몰래 유학(儒學)의 도의(道義)를 즐기고 끝내 뜻을 품고 가니, 지금은 비루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도 낙제의 부끄러움이 없으니 이것이 다행일 따름입니다. 아아, 공들은 과거시험에서 제일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습니까. 공경하며 부럽습니다.
도카이(東海)가 제암(濟菴) 이봉환에게 물었다.
공들이 오늘 쓴 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의포(衣袍) 또한 이름이 있습니까. 또 이번 달 초하루에 삼사가 쓴 관과 의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6일 쓰시마 번주 소씨의 초대에 응했을 때의 의관과 앞서 본 것은 달랐습니다. 상세하게 알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제암이 답했다.
구헌은 와룡관(臥龍冠), 저는 동파관(東坡冠), 해고는 고후팔괘관(高後八卦冠)입니다. 삼사 대인은 금관(金冠), 조복(朝服), 옥패(玉佩)를 착용했고, 한가로이 거처할 때 착용한 것은 윤건(綸巾)·심의(深衣)였습니다. 쓰시마 소씨를 만났을 때는 비단두건[紗幅]과 단령(團領)이었습니다.
류몬(龍門)이 해고(海皐) 이명계에게 물었다.
말 탄 사람이 연주할 때 사용한 현악기를, 귀국에서는 뭐라고 부르십니까.
해고가 답했다.
말 탄 사람이 연주한 현악기는, 해금(嵆琴)이라고 합니다.
다시 물었다.
말 탄 사람이 연주한, 갈대피리 같은 작은 관은 무엇입니까.
해고가 답했다.
갈대피리 같은 작은 관은 태평소(太平簫)입니다.
박구헌(박경행)에게 삼가 올림. 류몬(龍門)
아노라, 그대가 사명을 받듦에 휘광 있음을. 사신의 수레가 당당하게 화려한 궁전을 나오는구나.
문헌(文獻)은 한결같이 옛 덕을 전하고, 걸출한 자들은 만 리(里)에 선명(先鳴)을 겨룬다.
술 빚기를 친히 여긴 주랑(周郞)주 015의 아름다움이여. 풍류를 이끌던 순령(荀令)주 016의 향이여.
어찌 이 시편(詩篇)이 선물로 적당하겠는가.주 017 종일토록 일곱 번을 옮기어 앉아도 아직도 문장을 이루지 못하였네.
규류몬(宮龍門)에게 삼가 화답함. 구헌
사신으로 나서는 의관(衣冠)이 만 리에 빛나고, 풍류의 문장이 선당(禪堂)을 휘감는다.
하늘 저편의 아득히 큰 붕새를 따라가고자 하나, 누군가 금하여 바람 앞 말 울음으로 대신할 따름이다.
해안에 가득 찬 아름다운 빛은 도리어 꿈속이고,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옥 같은 마름풀이 향을 나누어주는구나.
화진(華津)주 018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복(三伏)을 맞이하는데,주 019 고원과 저습지에서 쓸쓸하게 읊조리는 사모장(四牡章).주 020
이제암(이봉환)에게 삼가 올림. 시라사키 간후(白崎雁阜)
구름은 창연하고 외교사절의 내방을 알리는 소리(鴻臚)주 021와 사신의 글월이 굽이쳐 흐른다. 하늘 남쪽에는 어젯밤 사성(使星)주 022이 떴네.
한나라의 악부(樂府)는 도위(都尉)를 천거했으니,주 023 그로부터 친구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시를 지었다네.주 024
도간후(滕雁阜)에게 삼가 화답함. 제암
무창(武昌) 성곽에 자줏빛 물결이 굽이쳐 흐르고, 선객(仙客)이 서로 만나 벼루를 연다.
걸출한 인물은 땅이 영험하고 풍토가 특별한 곳에서 나니, 후지산 겹겹마다 기이한 재능을 잉태하네.
이해고(이명계)에게 삼가 올림. 류타쿠(笠澤)
만리 뗏목을 타고 창해를 가르고, 휘어진 칼(吳鉤)의 자줏빛 기운이 별자리를 침범하네.
깃대가 멀리 조선 한양의 색을 가리키고, 배는 더욱이 한(韓)의 구름과 이어지네.
하찮은 이야기나 졸렬한 문장(驢鳴犬吠)에 응하여 웃으니 비로소 군계일학을 바라보네.
벼슬한 것은 알았는데주 025 글을 빨리 잘 지어내는 명성이 당신과 같은 이 누구이겠는가.
류타쿠(笠澤)에게 삼가 화답함. 해고
실의한 사람이 이별할 때에 임하여, 비단 상어 강에 지은 시는 화려하게 염색된 비단 같네.
세월의 아득함은 흘러가는 물에 비기고 예나 지금이나 구름은 산수로 돌아가네.
사람을 붙드는 신기루(蜃市)는 진실로 기이한 듯하고, 칼에 의지한 낮의 기운은 비할 바 없이 뛰어나다.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니 이별하는 한스러움에 이끌리지만, 꽃이 질 때 다시 그대를 생각하겠노라.
박구헌에게 삼가 올림. 간후
그대의 학문이 일시(一時)에 전해짐을 알았는데, 명을 받든 사신의 수레는 아득히 먼 곳으로 향하네.
스스로 명월(明月)의 색을 손에 쥐고 있어, 가지고 온 찬란함이 화려한 이 자리를 채우는구나.
도간후에게 삼가 화답함. 구헌
봉래산의 춘색(春色)은 시가 있어 전하고, 꿈은 층층 파도 아득한 데로 들어가네.
힘찬 문장과 풍류(風流)가 모이니 다만 만남의 장이 이것으로 이별함이 한스럽다.
제공(諸公)에게 고하는 필어(筆語)
공들과 번갈아 창수하며 그 뜻에 감동하였으나 저희들이 10여 일 동안 응대에 지쳐 침식(寢食)을 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의지가 느슨해지고 정신이 상하여 다시 응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헤아려 주십시오.
정사 홍계희(洪啓禧)가 여행하며 읊으니 후지산이라는 제목이다.
홀로 우뚝 선 백옥 같은 산이여. 하늘 한복판에 눈이 쌓여 여름에도 춥구나.
오색 구름의 아름다운 기운이 금궐(禁闕)주 026까지 닿아 있으니 훌륭한 다스림으로 만세가 편안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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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6)
신유한은 1719년 정사 홍치중(洪致中)·부사 황선(黃璿)·종사관 이명언(李明彦) 등 통신사 일행이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사행 중 신유한의 시를 받기 위해 수많은 일본 문사들이 모여들었고, 일본문사들로부터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 각각 주고받은 시와 필담이 『남도창화집(藍島唱和集)』·『상한창수집(桑韓唱酬集)』·『상한훈지(桑韓塤篪)』·『객관최찬집(客館璀粲集)』·『봉도유주(蓬島遺珠)』·『삼림한객창화집(三林韓客唱和集)』 등 수많은 필담창화집에 수록되어 있다. 신유한은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특히 시에 걸작이 많고 사(詞)에도 능했다. 사행일기로 『해유록(海遊錄)』이 있고, 그 밖에도 『청천집(靑泉集)』과 『충서난록(奮忠難錄)』 등이 있다. (대일외교 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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