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와 고로칸
難波 鴻臚館
유적개관
난파(難波) 홍려관(鴻臚館)은 難波津(難波津)에 있었으며, 현재에는 오사카시 중앙구(中央区)와 북구(北区)에 위치한다. 홍려관(鴻臚館)이라는 명칭(名称)이 난파관(難波館)으로 사용되었던 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승화11년(承和11年, 844年)에 난파 홍려관(難波の鴻臚館)이 섭진국(摂津国) 국부(国府)의 정청(政庁)으로 이관되어 폐지(廃止)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해설
난파 홍관, 즉 나니와[難波] 고칸[鴻館], 즉 고로칸은 나니와즈[難波津]에 있었으며, 현재에는 오사카시의 중앙과 북쪽에 위치한다.
‘고로칸’은 헤이안시대(794~1185)에 일본에 온 사신들을 접대하고, 외교를 하기 위해 건축된 영빈관이다. 나니와 고칸은 나니와칸[難波館]이라는 명칭으로도 쓰였다.
발해의 사신은 함경도의 나진항(羅津港)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일본의 산잉[山陰], 호쿠리쿠[北陸], 데와[出羽] 방면의 항구에 도달하였다.
일본에 도착한 발해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곳이 노토[能登]과 와카사[若狹]의 객관(客館)이다. 또한 수도 헤이안쿄[平安京]에 고로칸[鴻館]을 설치하여 발해의 사신을 접대하였다. 헤이안 시대에 외교사절의 왕래가 폐지되자 고로칸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이 외교사신이 아닌 상인들이 되었다. 이에 고로칸의 기능이 외교의 장소에서 교역의 장소로 변화하게 되었다. 나니와칸이 사용되었던 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승화(承和) 11년(844년) 나니와의 고칸이 진부(津府)의 정(政)으로 이관되어 중지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로칸’은 헤이안시대(794~1185)에 일본에 온 사신들을 접대하고, 외교를 하기 위해 건축된 영빈관이다. 나니와 고칸은 나니와칸[難波館]이라는 명칭으로도 쓰였다.
발해의 사신은 함경도의 나진항(羅津港)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일본의 산잉[山陰], 호쿠리쿠[北陸], 데와[出羽] 방면의 항구에 도달하였다.
일본에 도착한 발해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곳이 노토[能登]과 와카사[若狹]의 객관(客館)이다. 또한 수도 헤이안쿄[平安京]에 고로칸[鴻館]을 설치하여 발해의 사신을 접대하였다. 헤이안 시대에 외교사절의 왕래가 폐지되자 고로칸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이 외교사신이 아닌 상인들이 되었다. 이에 고로칸의 기능이 외교의 장소에서 교역의 장소로 변화하게 되었다. 나니와칸이 사용되었던 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승화(承和) 11년(844년) 나니와의 고칸이 진부(津府)의 정(政)으로 이관되어 중지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