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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축자사(筑紫史; 츠쿠시노후히토)

축자사(筑紫史; 츠쿠시노후히토)
 진사왕(陳思王) 식(植)[일명 동아왕(東阿王)이다.]의 후손이다.
 
【주석】
1. 축자사(筑紫史)
축자사의 씨명은 구주(九州) 축자국(筑紫國)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축자사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지통(持統) 5년(691) 정월조에 “직광사 축자사익(筑紫史益)은 축자대재부(筑紫大宰府)의 전(典)으로 임명된 지 지금 29년이다. 청백한 충성으로 봉사하여 결코 태만히 하지 않았다. 이에 식봉 50호, 굵은 비단 50필, 햇솜 25둔, 삼베 50단, 벼 5,000속을 내린다”라는 축자사익의 동향 기사가 보인다. 『속일본기』 연력 4년(785) 2월조에는 축자사광도(筑紫史廣島)가 야상련(野上連)의 씨성을 받고 있다(야상련씨에 대해서는 하내국 제번 「야상련」 조 참조). 『속일본기』 천평보자(天平寶字) 5년(761) 3월조에는 죽지마려(竹志麻呂) 등 4인이 판원련(坂原連)의 씨성을 받고 있는데, 죽지(竹志)는 축자(筑紫)를 말하며 백제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천평(天平) 9년 4월 일부 「서남각령해(西南角領解)」(『대일본고문서』13-220)에는 “죽지정도(竹志淨道)는 나이가 20세이고 섭진국(攝津國) 백제군(百濟郡) 남부향(南部鄕)의 호주인 정6위상 죽지마려려(竹志麻呂呂)의 호구이다.(「竹志淨道[年二十, 攝津國百濟郡南部鄕戶主六位上下竹志麻呂呂戶口.])”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죽지정도(竹志淨道)와 죽지마려려(竹志麻呂呂)는 백제 망명인들이 많은 섭진국(攝津國)의 백제군(百濟郡)에 거주하고 있다. 『속일본기』 에 죽지마려(竹志麻呂)가 백제인으로 나와 있는 것은 그가 백강전투 이후에 도래한 백제계 후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자사(筑紫史)의 출자도 『신찬성씨록』 편찬 단계에서 백제계에서 중국계인 진사왕 식의 후손으로 개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 진사왕식(陳思王植)
진사왕(陳思王) 식(植)에 대해서는 화천국 신별 「상촌주(上村主)」 조(773) 참조.
진사왕 식을 일명 동아왕(東阿王)이라고 한 것은 『삼국지』 위서 「진사왕식전(陳思王植傳)」 에 “(太和)三年徙封東阿”라고 하였듯이 위 명제(明帝) 태화 3년(229)에 동아(東阿)에 봉해진 데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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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자사(筑紫史; 츠쿠시노후히토)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10_0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