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웅이 흉노의 입조를 받아들여 변방의 화를 방지할 것을 아룀
지금 선우는 [한의] 의(義)를 따르기 위하여 정성스런 마음을 품고, 그 [선우]정을 떠나 [천자] 앞에서 알현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대에서 이루지 못한 일이며 신령들이 바라고 희망하던 일입니다. 국가로서는 비록 비용이 들더라도 부득이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흉노 선우가] 내려오면 [천자를] 억누른다’는 말로 거절하고주 001[입조할] 날짜를 약속해 주지 않고 소외시켜, 지난날의 은혜를 사라지게 하고 장래의 틈을 열어두려 하십니까! 무릇 정성을 보이는데도 거리를 두어 원한의 마음을 갖게 한다면, 지난날의 말을 어기고 과거 [화친의] 약속에 연연해하면서 한을 향하여 원망하고, 스스로 [관계를] 끊고 끝내 북면(北面)하는 마음을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압하여도 효과가 없고 회유하여도 불가능하니 어찌 큰 근심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저 밝은 사람은 아직 형체가 드러나기 전에 알아보고, 총명한 자는 소리가 없어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진실로 일이 발생하기 전에 먼저 조치한다면, 몽염과 번쾌를 다시 쓸 필요가 없고, 극문과 세류를 다시 방비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마읍의 계책을 세울 이유가 어디에 있겠으며, 위청과 곽거병의 군공은 어디에 쓰겠으며, 다섯 장군의 위세가 진동해야 할 이유는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여 한번 틈새가 벌어진 뒤에는 비록 지략이 있는 사람이 안에서 애써 궁리하고, 변설에 능한 사람이 밖에서 [오고 가며] 수레 바퀴가 부딪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치하는 것]만 못합니다. 또한 과거에 서역을 도모하여 거사국(車師國)을 제압하였으며, 성곽을 세워 36개국을주 002모두 보호하였는데(都護),주 003
대저 밝은 사람은 아직 형체가 드러나기 전에 알아보고, 총명한 자는 소리가 없어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진실로 일이 발생하기 전에 먼저 조치한다면, 몽염과 번쾌를 다시 쓸 필요가 없고, 극문과 세류를 다시 방비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마읍의 계책을 세울 이유가 어디에 있겠으며, 위청과 곽거병의 군공은 어디에 쓰겠으며, 다섯 장군의 위세가 진동해야 할 이유는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여 한번 틈새가 벌어진 뒤에는 비록 지략이 있는 사람이 안에서 애써 궁리하고, 변설에 능한 사람이 밖에서 [오고 가며] 수레 바퀴가 부딪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치하는 것]만 못합니다. 또한 과거에 서역을 도모하여 거사국(車師國)을 제압하였으며, 성곽을 세워 36개국을주 002모두 보호하였는데(都護),주 003
각주 003)
그 비용이 해마다 수백만[전]을 헤아립니다. 어찌 강거국과 오손국이 백룡퇴(白龍堆)주 004를 넘어 서쪽 변경을 침략할까 두려워 그랬겠습니까? 그것은 흉노를 제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무릇 100년 동안 고생을 한 뒤 [그 쌓은 것을] 하루 만에 잃거나 열을 쓰고 나서 하나를 아끼는 것은, 신은 삼가 나라를 위해 불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폐하께서 난리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유의하시어 변방에서 싹트는 화를 막아주시기 바랍니다.이는 西域都護府 설치와 車師國에 戊己校尉府를 설치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西域의 諸國에 대해서는 본래 匈奴 日逐王이 僮僕都尉란 기구를 常置하여 통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宣帝 神爵 2년(전60)에 日逐王이 漢에 來降하여, 西域에 대한 지배권이 漢으로 이양되었다. 漢은 神爵 3년(전59)에 都護를 두어 서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都護”라는 명칭은 鄯善國 서쪽의 南道 諸國뿐 아니라, “車師國 서쪽의 北道까지 並護”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元帝 初元 원년(전48)에는 戊己校尉를 車師前王國에 두어, 屯田을 경영하게 하여, 西域都護府를 보조하도록 하였다(김한규, 1982 : 285∼288).
- 각주 001)
-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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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3)
이는 西域都護府 설치와 車師國에 戊己校尉府를 설치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西域의 諸國에 대해서는 본래 匈奴 日逐王이 僮僕都尉란 기구를 常置하여 통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宣帝 神爵 2년(전60)에 日逐王이 漢에 來降하여, 西域에 대한 지배권이 漢으로 이양되었다. 漢은 神爵 3년(전59)에 都護를 두어 서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都護”라는 명칭은 鄯善國 서쪽의 南道 諸國뿐 아니라, “車師國 서쪽의 北道까지 並護”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元帝 初元 원년(전48)에는 戊己校尉를 車師前王國에 두어, 屯田을 경영하게 하여, 西域都護府를 보조하도록 하였다(김한규, 1982 : 285∼288).
- 각주 004)
색인어
- 이름
- 몽염, 번쾌, 위청, 곽거병
- 지명
- 한, 한, 마읍, 거사국(車師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