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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배한섭

시내가 뭐 잿더미가 됐어
배한섭 | 1944년 야하타에서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로 강제동원 | 2007.5.2. 구술
배한섭씨는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 출신으로 1926년에 태어났습니다. 1939년에 누나를 의지해 야하타시 모토시로정으로 건너와 야하타 화물자동차회사에서 운전조수가 되었습니다. 1944년 4월에 나가사키조선소에 징용되어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조선소에서는 3명이 한 조로 “카시메(カシメ, 철판끼리 결합시키기 위해 리벳[rivet, 연성 금속 못]을 박아 넣는 것)”작업에 동원되어 보조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야근이 끝난 후 기숙사로 돌아올 때에 피폭되어 허리 등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병원에서 한 달 이상 치료를 받았습니다. 해방이 되어 누나집으로 갔다가 한 달을 기다린 후 귀국선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내 몸에 새겨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폭체험』,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2008, 258~273쪽
 
 
배한섭(裵漢燮)_남. 84세
 
  • 일자
  • 내용
  • 1926.5.27.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에서 출생.
  • 1944.4.
  •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소재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나가사키(長崎)조선소로 동원됨.
  • 1945.10.
  • 해방 후 귀국.



징용가기 전에 살고 계셨던 곳은 어디셨어요?


일본. 제가 열여섯 살 먹었을 때, 그 당시에는 보통학교 졸업하고….


어디 보통학교를 나오셨어요?


설천보통학교라고 그때 있었어. 설천면 보통학교가 있었는데, 열여섯 살 먹을 때 졸업을 하고. 그래가지고 일본에 우리 자형이 거 있었어요.


자형이? 누님이 있었네요?


예. 누님이 일본 구주 복강현(福岡縣) 야하타시(八幡市)라 카는 데가 있었어요. 거기서 인제 누님집에서 생활을 했어요.


그럼 보통학교 졸업하자마자 복강현에 가신 거예요?


예. 졸업하자마자. 3월달에 졸업을 했는데 9월달에 들어갔으니께.


그게 몇 년인가요?


그니께 그때는 소화(昭和)라고 했는데, 에… 소화14년(1939년) 9월.


일본 가기 전에는 어디에 살고 계셨어요?


여기. 집에 있었지요.


여기가 고향이세요? 설천면 문의리?


예. 1XXX번지가 우리 아버지 번진데.


1XXX번지는 아버님이고. 어르신은 1△△△번지잖아요?


인제 이 집 번지는, 우리 큰집은 저기 있었거든요. 바로 여기 앞에 있습니다.


바로 지척에 있었네요. 그러다가 이쪽으로 이사 오셨어요?


예. 요리. 인제 나는 분가를 해서 나왔지.


본가는 지금도 누가 살고 계세요?


큰집에 조카들이 살고 있는데, 몸이 불편해서 집을 비워놓고 있어요.


아버님은 무슨 일을 하셨어요?


농업을 했지요.


보니까 순 바단데, 농사지을 곳이 있나요?


아이, 바다 어업도 하고 농사도 짓고. 여기 농사짓는데 협소하거든요.


형제분들은 몇 명이셨어요?


형제가3형제…, 5형제에요. 남자가 셋, 여자가 둘. 내가그중막내이지요.


그러면 학교를 졸업할 때쯤 큰 누이한테 간 거예요? 후쿠오카에?


아니지요. 내 위에 둘째 누이.


야하타시에 가셔서 무슨 일 하셨어요?


그때는 직업이 귀해서 일본 가서 꽃 장사를 했어요. 꽃 장사.


꽃 장사를 하려면 일본말은 잘 하셨나 봐요?


일본말로… 그때는 인제 보통학교 다닐 때 가나다라 이런 것만 배웠지, 일본말은 서툴렀지요. 서툴렀는데 거 인제 꽃 장사를 하고 보니까 일본말이 살살 익혀지데요. 그래 인자 꽃 장사가 뭐냐 같으면, 이 점포가 있는 게 아니고 양쪽 ‘하코(箱:상자)’ 다가, 이 안에다가 짊어지고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꽃 사세요. 꽃 사세요” 에고(외고) 다녀요. 그래가 팔았어요. 그래서 한 2년 동안 그걸 팔았어요.


누님은 무슨 일 하셨구요?


작은 누님도 그런… 자형도 그렇고.


다른 형제분들은 다 어디 계셨구요?


남은 형제들은 고향 다 있었고.


여기에 다 계셨구요?


예. 큰 누님은 출가해버리고.


형님들은 여기서 어업이나 농업 하면서 지내셨어요?


예. 두 분이 여기 계셨죠.


2년간 일하셨으면, 나이가 한 열여섯, 열일곱 살 정도 되셨겠네요?


열여섯, 그 정도 됐지.


그러고 난 다음에 전쟁이 나서 북새통을 이뤘잖아요?


그 당시는 만날 일주일에 한번씩 훈련을 하라고 말이지 소집을 해요, 일본서도. 그래가지고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라고 카는데, 거 가서 훈련도 받고 이랬는데.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군대를 갈낀데, 한살 군대 갈 나이가 적었어요. 적었는데, 꽃 장사 하고본께 그거도 희망도 없고. 이래서 일본 야하타 화물자동차라 카는 회사가 있어요. 거기를 들어갔지요. 거기 들어가가지고 인자 자동차 운전조수를 했어요. 조수를 하고 있는데 징용통지서가 나와가지고. 그때는 저 상공회의소에서 무슨 통지가 나왔어요.


어디로요? 그 회사로?


예. 야하타시.


누님하고 같이 살고 계셨으니까, 누님댁으로 징용장이 나온 건가요? 아니면 회사로?


그니까 누님하고 내하고는 [서로] 인자 떠났지. 떠나가지고 나는 조수생활하고. 그래가 그 자동차 회사서 조수생활을 하는데, 거기도 군용 물자도 실어 나르고 하는 회산데, 징용이 나왔단 말입니다. 나와 가지고… 징용통지서가 왔데요. 그래가지고 할 수 없이 응해서, 저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이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미쓰비시(三菱) 조선소 가서 근무를 했지.


징용장에 미쓰비시 조선소라고 써 있던가요? 거기로 오라고?


예.


그럼 어르신 혼자서 가신 거예요?


아니지요. 인솔했지, 왜놈들이.


야하타시에서 사람들이 인솔을 해서?


인솔을, 기차도 타고 갔는데….


몇 명이 인솔돼서 가던가요?


그때 약… 많았지요.


다 조선사람만 인솔돼서 가던가요? 일본사람도 같이 가던가요?


한국사람도 섞이고, 일본사람도 섞였어요.


이때가 소화 몇 년이 되나요?


긍게, 소화 17년도. 17년인가 18년인가.


해방 바로 전인가요?


아니. 거기서 한 1년 넘어 근무를 해서 열아홉에 해방이 되었거든요? 내가 열아홉 살에 해방이 되었는데, 열일곱에 [징용되어 갔으니까]… 한 2년.


여기 신고하실 때는 ‘쇼와(昭和)’ 19년에 가셨다고 적으셨는데. 그러니까 1944년, 해방 바로 전 해?


이거 내가 쓴 글씬가 본데…. 그러니께 거기 시(市)에서 인솔자가 있어가지고 그날 ‘어느 장소에 모여라. 집합해라.’ 그래가지고. 싹~ 다 집합해가지고. 집합하니까 야하타역에서 타가지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몰랐지 우리는. 몰랐는데 가고 보니까, 나가사키 조선소. 조선소 거 가니까 옷 갈아입히고.


회사 옷으로요?


우리 이 평민 옷을 갈아입히고 말이지. 그 조선소 옷을 입혀가지고 거기서 기숙사로 싹 다 입소를 시키삐데.


기숙사가 이름이 있어요?


제1기숙사가있었고 제2기숙사가 있었는데, 그 지방 이름을 모르겠어. 내가.


기숙사가 있던 마을 이름은 기억이 안 나시구요?


예. 처음에 있던 기숙사는, 거… 조선소서 굴이 있어요. 굴로 파가지고, 그 굴이 한 2키로(km)정도는 돼요. 공장에서 조금 나와가지고 굴로 지나 가지고, 굴 너머에 기숙사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거기서 한 7~8개월 넘어 있었을끼야.


혹시 기바치(木鉢町)라는 건 들어보셨어요?


[한 7~8개월 넘어] 있었는데, 폭격을 당했어요.


폭격을 당했어요?


예. 그래가 한국사람 그때 두, 세 명 돌아가셨는데. 그 뒤로 딴 데로 옮겼어요.


혹시 마을 이름인데 기바치라고 들어보셨어요?


그 기숙사가 해변가에 있었는데, 해변가 그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니까 제1기숙사, 제2기숙사라는 이름이 아니라, 첫 번째 기숙사에 있다가 다음 기숙사로 옮겼다는 거네요?


예.


두 번째로 옮긴 기숙사는 어디 해변가에 있었어요?


다음 기숙사는 산골짜기에 있었어.


옮긴 기숙사로 가봤더니, 거기에도 조선사람들이 와 있던가요?


우리 한국사람이 그때 일개… 약 한 백사, 오십 명 정도 넘어 됐지요.


어르신하고 같이 간 사람들이?


우리 한국사람만. 한국사람은 기숙사가, 수용소가 따로 있어요. 일본사람하고 같이 안 넣어요.


그러니까 어르신이랑 야하타에서 같이 간 한국사람이 백오십 명?


아니라.


거기 도착해서 세어보니까?


도처에서 모아서.


도처에서 모아서? 그럼 어르신이랑 같이 모였던 백오십 명은, 일본에 있던 사람들을 모은 거예요?


예. 일본에 있던 사람들이 싹 다 끌려갔어요.


거기 가셨을 때는 조선에서 끌려온 사람은 아직 없었구요?


조선에서 끌려온 사람은 없었어요.


기숙사 사감이 누군지 혹시 기억하세요?


사감이… 그때는 군인인데, 육군 대위라요.


한 백오십 명 되는 사람들이, 인제 조선사람들끼리만 숙소에서 살았던 거네요?


아니지요. 기숙사가 이래 열로 지어가지고 줄줄이 있어요. 요래, 요래 있는데 중앙에는, 그 중 앞에는 한국사람들 기숙사고. 기숙사가 요래 있고, 여러개 있었어요. 여기는 식당이고.


식당은 무지 크던가요?


예. 여기로 한 오백 명도 넘게 있었는데.


오백 명도 넘게 들어갔어요?


일본사람들… [그림을 그리면서] 여기는 한국 숙소고. 여기는 일본사람들, 일본사람들끼고. 여기도 일본사람들. 여기도 또 있었어. 요래 있었는데, 폭탄이 어디로 떨어졌냐 할 것 같으면은, 한국사람들 있는 숙소 여기 가운데 여, 여기 조금 공간이 있었는데 여기로 떨어져버렸어. 떨어져가지고 군용차 몰고…, 밤인데 밤 한 7시나 8시나 됐는데 비행기가 오더만… 그날 비가 왔어요. 비가 왔는데 똑 한국사람 있는데 여. 그때는 폭탄도 작았지. 작기는 작았는데, 거기 떨어져가지고 한국사람 둘인가 셋인가 죽었어.
각주 )
피해신고건 중 이갑○ , 신관○ 의 제적부에 ‘1944.8.11. 長崎市木鉢町三菱木鉢寮사망’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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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울타리 같은 건 없었어요?


울타리는 다 있어요. 울타리 있어가지고 도망 못 가게 이래 싹 다 울타리로.


정문은 어디였어요?


아까 여기 식당에. 여기 숙소 앞에 사무실이지. 정문이, 여기 들어가는 문이 여 있어. 여기는 문이고, 또 여기는 사감실이고. 요래 있었는데 인자 사감은 한국사람들 옆에 있어요. 그게 날마다 왜놈들이 와서 우리가 출근하고 나면 소지품을 싹 다 디비요(뒤져요). 뭐 가있는고(뭐 가지고 있는지). 왜놈들이 와서 디비는데, 한국사람이 그때 태극기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어. 그 뒤 마~ 그 사람 체포해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도 못하겠고, 그런 현상이 생겼었어.


기숙사에 도착해서 곧바로 일을 시키던가요?


아니. 하룬가 쉬었어요. 그런데 인자 하루를 쉬니께, 그 공장에서 인솔자가 있어요. 공장에 데려가서‘너는 어디로 가라. 니는 뭐해라. 니는 뭐해라.’ 싹 다 배치가 됐지.


배치를 해도 뭐 할 줄 알아야 일을 할 거 아니에요?


가니께, 거기 가서 인자 그 똑 쉬운 놈만. 한국사람은 좋은걸 안 가르쳐. 안 가르쳐주고 일본가면 저 일본말로‘가시메’라 카는게 있는데. 조선소 가면 요만한 못을 구어가지고요.


빨갛게 달구죠?


구녕에 넣어가지고 철판하고 철판하고 연결시키요. 고놈 하는 거, 고걸 시켜요. 그래가지고 우리들은 고기고, 또 딴 사람은 또 다른 거 하는 사람이 있지.


‘가시메’를 담당하신 거예요?


‘가시메’도 인제 그게 서이(3명)가 있어야 돼요. 왜 그러냐 같으면 못을 구어주는 사람이 있고. 연탄불 그 석탄을 구어가지고, 구어주면 발그레 구어주거든요? 구어주면 그걸 받아가지고 그 구녕에다가 싹 밀어가지고. 밑에 ‘오사에’라 카는게 있는데, ‘오사에’가 못을 딱 받혀주면 위에서 그걸 또 벌겋게 달은 못을 거기‘가시메’라고 하는 기계가 있어요. 그걸 가지고 철판하고 철판하고 합쳐지지. 합쳐지면 인제 그게‘가시메’인데, 그 일 했어요. 그 일 했는데, 나는 ‘오사에’고.


어르신은 ‘오사에’?


예. 나는 ‘오사에’고, ‘가시메’하는 사람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일본사람이에요?


아니요. 한국사람.


한국사람?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 니시하라라고 했는데, 그 사람 이름이. 한국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요. 사진도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다 없어져버렸어.


일본사람들도 같이 숙소에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일본사람도 같이 숙소에 있었는데.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대로 별도로 숙소에 있었고, 일본사람들은 일본사람대로 있었고.


일본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남자들이에요?


남자들. 전부 남자들.


젊어요? 나이가 들었어요?


나이가 다 젊었지.


군대 안 간 사람들이요?


인자 거기서 군대, 일본사람들 군대 간 사람도 있었고. 징용을 가가지고 군대 소집돼 가는 사람은 가고 이랬지. 그런데 일본사람만 갔지. 한국사람은 안 갔어.


그럼 그 같이 일한 일본사람들은 군대갈 사람들이에요? 아니면 군대갔다 온 사람들이에요?


갔다 온 사람도 있고, 안 간 사람도 있고. 나이가 뭐 뒤죽박죽이지요. 한 뭐 30세 미만.


그 사람들도 어르신들처럼 ‘가시메’같은 일도 하고 그러던가요?


아이요. 그 사람들은 딴 거 시켜요.


무슨 일을 시켜요?


일본사람들은 좀 수월한 거 시키고, 한국사람들은 댄 거(고된 거), 어려운 거, 그런 거 시켜요.


좀 수월한 일은 어떤 일이에요? 일본사람들이 하는 일은?


일본사람들 그것도 여러 종목이 있어요. 조선소 가면 용접을 하는 사람, 설계하는 사람, 전기 놓는 사람. 또 이‘가시메’를 해놓으면 그 철판 사이에 물 못 들어오게 거석하는 그게 뭐야, 이름이 뭐꼬? 그거 하는 사람. 여러 가지 일이라. 거기서 인자 항공모함도 우리가 만들었는데요. 그거는 우리가 맨들다 해방이 됐는데, 침수는 못하고. 잠수함도. 조그만한 잠수함도 만들었어요. 그거는 왜 그러냐 하면 일본놈들 특공대라고 몇이 타가지고, 저 큰 군함하고 가서 부닥쳐 버리는기라. 그 안에 폭탄 들고 가서. 고마, ‘다이아다리( たり:육탄공격)’라고 하지.


그런데 아무튼 조선사람보다는 좀 쉬운 일을 한 거 같다?


쉽지요. 암만해도 쉽지요.


나도 좀 쉬운 것 시켜달라고, 일본말도 잘 하시는데 얘기 안 했어요?


일본말로 다 읽었습니다. 그때는 일본말 어느 정도 들었지요. 나도 통할 수 있었고.


‘가시메’일을 하러 숙소에서 그 조선소까지 쭈욱 걸어가신 거예요?


걸어갔지요.


걸어가려면 그 터널을 지나는 거예요?


터널을 지나서 가고. 제1기숙사는 터널을 지나서 가고. 제2기숙사는 산 넘어 있었는데, 거기는 도보로 해서. 또 거 오는, 조선소 건너는 조선이 있어요.


배가 있어요?


예. 배가 있어가지고. 직원들 실어다 나르는 배가 있어요.


그러면 제2기숙사는 조선소 건너편에 있었다는 거네요?


배를 타고 왔으니까. 예. 그렇죠. 떨어졌지. 나가사키시 너머에 있었으니까. 나가사키시 안에 조선소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조선소가, 나가사키시가 여기 있을 거 같으면은 한쪽은 조선소고 한쪽은 여 사이에 강이 있어. 여기는 말하자면 나가사키시고, 여기는 바다야. 바다고. 여기는 인제 조선소. 조선소가 요래, 여기는 조선소. 여기는 싹 다 육지가 연결되어있어. 그러면은 우리 제2기숙사는 시(市) 너머에 여 있어. 시 너머에 여기는 산이 있었고. 여기도 막 기숙사 뒤로도 산이 있었고. 산이 있었는데, 여기서 인자 걸어서 도보로 공장을 출근할라면 걸어서 여기 시내까지 나와야 돼. 시내까지 나오면 여기서 건너 다니는 조선이 있어, 배가. 여기서 이리 돌아가려면 한참 멀거든요. 멀어노니까 여기서 배를 타고 여기 공장까지 실어가. 실어다 여기서 인자 하륙(下陸)하면 공장가서 일하고 이랬지요.


제1기숙사에 있을 때 폭격이 왔다고 그러셨잖아요? 그건 기숙사에 가서 얼마나 있다가 폭격이 온 거예요?


[폭격이 있을 때까지는] 한 몇 개월 있었어. 한 4~5개월 넘어 있었어.


기숙사에서 아침에 일하러 가려면 몇 시쯤에 일어나서 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죠. 한 5시나 되서 일어났어요. 식사하고 도시락은 안 주고. 공장에 가면 콩껍데기 밥을 줘요. 뭉칫밥을.


주먹밥을 줘요?


예. 주먹밥으로. 그때는 쌀이 귀한께 콩껍데기하고 밀하고 섞어서. 쌀이 하나씩 섞이고. 그런 주먹밥을 요만씩 주지. 공장서 점심 얻어먹고 그래 오면, 료에서 또 저녁 얻어먹고.


몇 시부터 일을 시작하나요?


5시부터 저기 하면, 한 7시 되면 공장에 출근해야 돼요.


7시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오후 5시까지. 일 많을 때는 뭐 6시에도 시키고.


그러고서 료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하시는 거네요?


예. 식사하고. 또 식사하고 난 다음에는 점호를 마치지.


점호는 한국사람만 하나요, 일본사람도 하나요?


일본사람은 하는가 안 하는가는 모르겠고. 기숙사가 달라논께. [우리는] 점호를 하거든요. 이 사람이 확실하게 있나 없나, 도망갔는가 안 갔는가 그런 걸 점검하는 거죠. 그 점호를 저녁마다 합니다.


점호하다 보면 도망간 사람도 발견되고 하나요?


도망은 안 갔어요. 안 가고. 우리끼리 인자 고단하니까, 몸에 병도 없는데 병이 있다고 이걸 꾀병을 해갖고 어쩌다 나간 사람이 있어요.


어르신 계신 동안에는 조선사람이 조선에서 오지는 않았어요?


안 왔어요. 조선사람은 없고, 일본 살던 사람이 싹 거기 다 와 있었어.


그럼 일본에서 살던 [조선]사람들이 왔으니까, 고향도 제각기겠네요?


예. 각처에서 뭐. 그런데 우리 있을 때, 한국 정신대가 많이 왔어요.


여자 정신대요?


예.


중학생인가요, 고등학생인가요?


고등학생쯤 되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 인제 이야기도 하고. 그 하는 사람들은, 정신대 하는 일은 또 틀리거든요.


그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요?


뭐 옷 같은 것도 짓고, 뭐 그런 공장이요. 조선소하고 사뭇 분리가 됐는데.


그러니까 조선소에서 일한 게 아니라…


예. 아니고, 다른 데서 일을… 조선소가 여기 있으면은 시내가 요리 여기가 육지인데, 요 정도 있었어. 인자 몰랐는데 한국사람이 정신대가 저기 많이 왔다고. 인제 그 정보가 있거든요.


정보가 왔어요?


예. 그래서 알았지요.


직접 만나보거나 하시진 않구요?


못 만나봤어요.


그럼 이야기만 들어보신 거예요?


예. 어디 뭐 외출을 시키는가요? 잘 안 시키니께.


아침 7시부터 6시까지 일을 했으면 참 오랫동안 일을 하는 건데.


그 당시는 전시가 되어논께 뭐. 밤으로 야간 근무도 하고.


월급은 안 주던가요? 그렇게 일을 오래 했는데?


오래 해도 그거 뭐. 받아도 한달에 용돈, 용돈은 줘요.


용돈 얼마나 주던가요?


용돈 뭐, 그때 돈으로 백원 됐는가. 겨우 비누 같은 거 사 쓰고, 이 칫솔 같은 거 사 쓰고. 그런 거 하라고 주지 뭐. 큰 돈 주지도 않어. 그리고 우리 있을 때 미군 포로들이 많이 와 있었어.


미군 포로들하고 이야기해 본 적도 있으세요?


이야기해도 뭐, 미군말도 모르는기고. 옆에서 이러면 손짓으로 이러고.


일도 같이 하고 그랬어요?


예.


아까 그 비누, 칫솔 같은 거 사 쓰고 그랬다는데 이거는 바깥에 나가서 사야 돼요?


일본서? 우째요? 그거는 기숙사에 매점이 있어요. 매점이 있어가 거기서 싹 다 살 수 있어.


여기서 지내는 동안에 친하게 지낸 한국사람은 없었어요?


친하게 지낸 한국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 사람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백씨인데…. 아이고, 지금은 돌아가셨나 어쨌나 모르겠네.


이름은 기억 안 나세요?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일본말로 히라카와. 그때는 창씨가 돼가지고 싹 다, 한국 성이 없었거든요. 그래논께 백씨인데. 왜 그러냐면 해방 후에 여기 나와 갖고 경비대근무를 했거든요. 경비대 들어갔단 말입니다. 들어가가지고, 서울에서 서울 경비학교 들어가니까 그 친구가 와가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에 안 봤는데 서로 반갑고 일본 생각나고 그랬는데. 그러고 나서 군(軍)에서 헤어져버려 노니까 우째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분 말고 또 기억나는 이름은 없으세요?


없어요. 싹 다, 일본말로 싹 다 했으니. 성이 박씨면 박씨 다, 박형, 박 친구 이랬으면 될낀데 일본말로 싹 다 창씨가 돼 논께.


여기 근무하신 조선소가 무슨 조선소라고 그러셨죠?


미쓰비시 조선소.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근무하실 때, 원자폭탄이 떨어졌잖아요? 원자폭탄 떨어진 날. 그 날 아침부터 어르신은 무슨 일을 하고 계셨는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일 안 했어요. 10시 돼서 원자탄이 터졌는데.[정확히는 오전 11시 2분] 그 앞에 날, 전날 비행기가 와갖고 삐라를 뿌려요. 내일 몇 시 되면 원자탄을 투하할낀께 그래 알라고. 그 삐라를 주워봤지요. 주워본께 10시경에 틀림없이 그 10시 정도에 와가지고. 10시 한 10분이나 됐을끼다. 와가지고 원자탄을 투하시키데요. 근데 그날 내가 운수가 좋았지요. 좋은 게 우쨌냐 할꺼 같으면은, 그 앞날 저녁에 밤일을 했어요.


밤에도 일을 해요?


밤에 일을 해요.


아침에서 저녁까지만 하고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아니지요. 낮에 일한 사람은 밤일 안 하고. 밤일하는 사람도 있었고 낮일하는 사람도 있었고. 교대로 그리 시켜요.


그날은 밤일 하는 순번이었어요?


밤일하고 기숙사 돌아오는데, 원자탄이 터져버렸어. 인자 밤일했으니까 아침에 퇴근해야 될 거 아입니까. 퇴근해서 돌아오는데 원자탄이 터지는데… 다행히도 기숙사가 시 너머에 여 산이 있는데 산을 딱 넘었는데, 원자탄이 터져버린단 말입니다. 터지는데 아이고~, 고마 나무뿌리고 뭐고 싸악~ 다 뽑혀나가고 이러는데. 딱 우째해서 엎쳤다(엎드렸다). 엎쳐가지고 막 흙 같은 거 날아오고 뭐도 날아오고. 내 여기 허리 흉터가 있거든요. 흉터가 여 많이 있어요. 맞아가지고 뭐 꼼짝을 할 수가 있습니까.


아~ 여기 흉터가 있네요. 이게 원자탄 때문에 다친 흉터에요?


예. 원자탄 직접 맞은 게 아니라 돌 같은 파편이 날아와서.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래가지고 미쓰비시 가면, 기숙사로 근근히 친구들 짜가지고 데리고 갔는데. 기숙사에는 진료하는 데가 없어요. 없어서, 미쓰비시 가면 미쓰비시 병원이 있어요. 큰 병원이 있어요. 거 가서 약 한 달 20일 넘어 내가 치료를 받았어요.


여기 뭐 쑥밭이 됐을 거 아니에요? 나가사키 시내가 원자폭탄으로?


여기는 시내고, 조선소 안에 병원이 있어요.


그러니까 시내를 지나야지만 조선소 가잖아요. 그럼 여기 쑥밭이 된 데를 지나서 조선소로 가셨어요?


이게 인제 시내 같으면, 시내 복판으로 여 기숙사 아니요? 여기 직통으로 길이 있어요. 배타는 데. 가운데로 이래가지고 배를 타고 요리 건너가지.


원자폭탄 터지고 난 그 다음날 바로 지나갔어요?


다음날. 폭탄 터진 다음날. 저 원자탄 터진 다음날 요리 인제 후송이 된 기지요. 여기 병원이 있거든요. 병원이 여기 있는데, 병원에 후송을 해가지고 여기서 치료를 받은기지.


거기서 얼마간 치료를 받으셨다구요?


1개월. 한 40일 넘어 받았어. 그때는 뼈가 겉에가 상해가지고 꼼짝을 못했거든요.


병원에는 원자탄 때문에 다친 사람들 많이 와 있지 않아요?


많이 있었지요. 있었고. 그러니까 원자탄 터져가지고 시내가 싹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흔적도 없어요. 시내가 뭐 잿더미가 됐어.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르신은 다쳐서 시내 나갈 기력도 없으셨을텐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 기숙사 인제 친구들이 있은께. 여 맨날 댕기는 배가 있고 그런께 인제 병원으로 후송시킨 거죠.


후송될 때 시내를 보셨어요?


후송당할 때 본 거지요. 잿더미만 떨어지고. 집도 어디로 가버렸나 없어져버리고. 형편없이 돼버렸지. 또 조선소가 여 있고, 여기 섬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는 미쓰 이 조선소가 있었어요.


미쓰이(三井)라고 조선소가 또 있었어요?


하모. 강 건너 여, 미쓰이 조선소라고 있었어요


가와나미(川南) 조선소라고 들어보셨어요?


가와나미… 가와나미 조선소.


여기에 미쓰이는 없어요, 나가사키에는. 가와나미는 있어요.


아, 가와나미! 가와나미가 여 큰 조선소가 있었어요.


가와나미는 아세요? 들어보셨어요?


우째 그걸 잘 아요?


제가 가봤으니까요.


가봤어요? 가와나미가 섬에 여 어데 있었어.


[지도를 보여주며] 여기가 나가사키역. 나가사키역에 보면 이렇게 강이 하나 흘러내려오죠? 여기 바다고. 여기 이렇게 건물들이 쭉쭉 있죠? 여기가 미쓰비시 조선손데 어르신 기억나세요?


요게 인제 미쓰비시 조선소죠?


숙소는 어디라구요?


여서 인제 요리 건너는 배가 있어.


여기에 제2기숙사가 있어요?


예. 이 너머에 있었어.


그럼 제1기숙사는요?


제1기숙사는, 여기 산이 하나 있었는데. 산에 굴을 뚫어가지고, 산 너머에 있었어요. 기숙사가 처음에는 여기 있었는데. 처음에 징용 당해가지고 갔을 때는 여기 있었는데, 인자 폭격을 당하고 나서 이동을 시키데요. 이동을 시켜서 제2기숙사는 이 강을 건너가지고 산이 있었는데, 산 너머에 있었어요. 산골짜기에 있었는데. 그 일본놈 기숙사도 있었고 그 기숙사가 커요. 또 포로 기숙사가 있었고, 한국사람 기숙사가 있었고. 이래 세 군데가 있었어요.


아이고, 그걸 기억하고 계시네요. 어르신 여기 조선소 말고, 건너편에도 조선소가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가와나미. 여기 가와나미는 가보셨어요?


가와나미, 거는 못 가봤어요. 우리 조선소에서 잘 보면 그 조선소가 보여요. 가물가물하니 보여요.


근데 그 얘기를 왜 하시려고 그러셨어요? 그 가와나미 조선소에 뭐가 있었어요?


뭐가 있는 게 아니고. 우리 조선소, 미쓰비시 조선소서 여기는 바단데 쳐다보면 가와나미 조선소 그 건물이 보여요. 가물가물 보이지요. 한 5키로(km)도 넘게 되지 아마.


거기에 가보신 적은 없으시구요?


없어. 그런데 갈 수 있나? 자유가 없는데.


그럼 여기서 40일 동안 치료를 받고, 그러고 난 다음에 동료들이랑 같이 나오신 거예요?


그러고 나서 조금 있으니께 해방이 됐지.


조선소에서 ‘해방됐으니까 너네 나라로 가라’고 그러던가요?


예.


배도 주선해주던가요?


그래갖고 그때 돈은 몇 닢씩 주데요.


돈을 얼마간 줘요? 조선소에서?


그때 인제 차비할 만치 받았지요.


그래서 그 돈 가지고 어떻게 하셨어요? 각자 알아서 가라고 그래요?


각자 인자 자기 있던 곳으로 가라고.


어르신 어떻게 하셨어요?


나는 인제 우리 누님 댁으로 왔지요, 야하타로.


그때는 허리가 좀 많이 나았어요?


허리가 많이 나았지.


움직일 정도가 된 거네요?


일은, 큰 일은 못해도 인제 내 자유스럽게 다닐만은 했어.


그럼 누님 댁에 가서 거기 계셨어요? 들어오셨어요?


누님 댁에 가가지고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안 하고 해방이 되서 고마 귀국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싹 다. 거기서 누님 댁에서 한 달 남짓 있다가 싹 다 한국으로 돌아왔지.


그게 해방되던 해, 몇 월쯤이 되나요?


10월. 10월 달 남짓 됐어. 그때 배가 없어가지고 또 그것도 오래 있다가 10월 달인가, 11월 달인가 나왔어.


이미 가을걷이 다 끝난 다음이네요?


끝난 다음이죠. 추수 다 해버리고, 겨울철.


아이고, 말씀 잘 해주셔가지고 제가 아주 그냥 한눈에 다 안 거 같네요.
면담일자:2007. 5. 2.
주면담자:허광무
보조면담자:김대영, 류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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