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의 침입과 대마도 정벌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남해안 일대에는 왜구가 창궐하였다. 왜구는 일본 해적으로 생계가 어려워지자 바다 건너 우리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다. 왜구에 대해 옛 고서들은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남겼다.
‘해상에는 해적이 많아지고… 이 무리는 수천 척의 배를 갖추고 원과 고려 각지에 밀어닥쳐서… 원과 고려의 이민(吏民)들이 이를 막아내기 어려워 포구 가까이에 있는 수십 곳의 마을이 모두 사는 사람도 없이 황폐해져 버렸다.’
-태평기(太平記)-
‘…왜적은 두세 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를 납치해 다가 머리털을 깎고 배를 가른 후 물에 깨끗이 씻어서 쌀, 술과 함께 제단에 올려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좌우편으로 나위어서서 풍악을 울리고 절을 하였다. 제사가 끝난 후에 그 쌀을 두 손으로 움켜쥐어 나누어 먹고 술을 석 잔씩 마신 다음 그 여자 아이의 시체를 불에 태우는데…’
-고려사 권126, 열전 제39 변안열전-
왜구의 규모는 단순한 해적의 수준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1380년 8월 진포에는 500여 척의 왜선이 나타났다. 나세
와 최무선
이 이끄는 고려 수군이 함포 사격을 가해 이를 격퇴시켰지만, 왜구들은 상륙하여 도주하며 온갖 노략질과 살상을 자행하였다. 비록 황산에서 이성계
가 이끄는 고려군이 잔당들을 소탕하긴 하였으나 왜구의 존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큰 우환거리였다.
새로이 들어선 조선은 왜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웠다. 이종무
가 227척의 병선과 1만 7천의 군대를 이끌고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 한 것이다. 원정군은 대마도를 기습하여 왜구 114명을 참수하고 배 129척을 불태우는 전과를 올리고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았다.
새로이 들어선 조선은 왜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웠다. 이종무
![왜구도권의 왜구모습](/download.do?fileName=edkj_0030014.jpg&levelId=edkj.d_0003_0020_0020)
왜구도권의 왜구모습
![대마도 정벌군이 상륙한 오자키항](/download.do?fileName=edkj_0030015.jpg&levelId=edkj.d_0003_0020_0020)
대마도 정벌군이 상륙한 오자키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