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숙녜(斯摩宿禰)를 탁순국에 보냄
46년주 001 봄 3월 을해삭(1일)에 사마숙녜(斯摩宿禰;시마노스쿠네)주 002를 탁순국(卓淳國)주 003에 파견하였다[사마숙녜는 어떤 성(姓)주 004
“갑자년(甲子年)주 006 7월 중주 007에 백제인 구저(久氐), 미주류(彌州流), 막고(莫古)주 008
번역주 004)
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이때 탁순왕(卓淳王) 말금한기(末錦旱岐)주 005가 사마숙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姓은 고대 일본에서 氏族의 등급을 표시한 칭호이지만, 본조에서는 姓이 氏(우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대 일본의 氏는 정치적·사회적 지위에 따라 대왕 혹은 천황이 하사하는 혈연 또는 擬制的 혈연집단으로서의 동족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각각의 씨에는 氏上이 있어서 씨집단의 재산 및 구성원을 관리하고 氏神에 대한 재산을 담당한다. 각 씨족이 어느 계통에 속하는가를 결정하는 근거는 각 씨족의 선조전승을 기록한 家記類였다. 한편 姓에는 臣, 君, 連, 直, 造, 史, 首 등이 있었는데 각각의 씨에 따라 다르게 사여되었다. 황실 계통의 皇別씨족에게는 臣·君, 天神 계통인 神別씨족에게는 連, 도래계 씨족의 경우에는 吉士·史의 姓이 사여되었다. 천무천황 13년(684)에는 8色姓을 제정하여 眞人, 朝臣, 宿禰, 忌寸, 道師, 臣, 連, 稻置 8종류의 姓으로 정리, 통합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 사여된 것은 忌寸까지의 상위 4성에 그쳤고 그 이외에는 舊姓이 그대로 존속되었다. 이러한 고대 일본의 氏姓제도는 6세기 전반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갑자년(甲子年)주 006 7월 중주 007에 백제인 구저(久氐), 미주류(彌州流), 막고(莫古)주 008
번역주 008)
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백제왕은 동방(東方)에 일본이라는 귀국(貴國)주 009이있다는 말을 듣고 신들을 보내 귀국에 조공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길을 찾다가 이 땅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신들에게 길을 가르쳐 통할 수 있게 해준다면 우리 왕은 반드시 군왕(君王)에게 깊이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때 왕이 구저 등에게 ‘본디 동쪽에 귀국이 있다는 것을 들은 바 있지만, 아직 왕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알지 못한다. 다만 바닷길이 멀고 파도가 거칠어서 큰 배를 타고서야 겨우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길이 있다고 해도 어찌 능히 도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에 구저 등이 ‘그러면 지금 당장은 건너갈 수 없겠습니다. 다시 돌아가 선박을 준비한 다음에 왕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만약 귀국의 사신이 오면 반드시 우리나라에 알려주십시오.’라고 당부하고 이내 돌아갔다.” 久氐, 彌州流 두 인물에 대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久氐는 『日本書紀』 신공황후 섭정 46년부터 52년까지 일관된 활동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당시 백제와 왜의 통교과정에서 왜 측의 千熊長彦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久氐의 ‘久’는 『日本書紀』에서 久爾辛, 久禮波, 久禮志, 久遲布禮, 久禮斯己母, 久禮牟羅城, 久麻那利, 久嵯旱岐, 久貴 등과 같이 모두 한반도의 인명과 지명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彌州流의 彌도 『日本書紀』에서 枕彌多禮, 布彌支, 彌麻沙, 印支彌, 彌至己知奈末 등과 같이 그 용례가 한반도계 인명과 지명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편 莫古는 莫古解를 가리킨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莫古解는 근초고왕 24년(369)에 태자 近仇首가 고구려와 싸울 당시 헌책한 인물로 나온다.
- 번역주 001)
- 번역주 002)
- 번역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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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4)
姓은 고대 일본에서 氏族의 등급을 표시한 칭호이지만, 본조에서는 姓이 氏(우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대 일본의 氏는 정치적·사회적 지위에 따라 대왕 혹은 천황이 하사하는 혈연 또는 擬制的 혈연집단으로서의 동족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각각의 씨에는 氏上이 있어서 씨집단의 재산 및 구성원을 관리하고 氏神에 대한 재산을 담당한다. 각 씨족이 어느 계통에 속하는가를 결정하는 근거는 각 씨족의 선조전승을 기록한 家記類였다. 한편 姓에는 臣, 君, 連, 直, 造, 史, 首 등이 있었는데 각각의 씨에 따라 다르게 사여되었다. 황실 계통의 皇別씨족에게는 臣·君, 天神 계통인 神別씨족에게는 連, 도래계 씨족의 경우에는 吉士·史의 姓이 사여되었다. 천무천황 13년(684)에는 8色姓을 제정하여 眞人, 朝臣, 宿禰, 忌寸, 道師, 臣, 連, 稻置 8종류의 姓으로 정리, 통합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 사여된 것은 忌寸까지의 상위 4성에 그쳤고 그 이외에는 舊姓이 그대로 존속되었다. 이러한 고대 일본의 氏姓제도는 6세기 전반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번역주 005)
- 번역주 006)
- 번역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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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8)
久氐, 彌州流 두 인물에 대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久氐는 『日本書紀』 신공황후 섭정 46년부터 52년까지 일관된 활동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당시 백제와 왜의 통교과정에서 왜 측의 千熊長彦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久氐의 ‘久’는 『日本書紀』에서 久爾辛, 久禮波, 久禮志, 久遲布禮, 久禮斯己母, 久禮牟羅城, 久麻那利, 久嵯旱岐, 久貴 등과 같이 모두 한반도의 인명과 지명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彌州流의 彌도 『日本書紀』에서 枕彌多禮, 布彌支, 彌麻沙, 印支彌, 彌至己知奈末 등과 같이 그 용례가 한반도계 인명과 지명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편 莫古는 莫古解를 가리킨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莫古解는 근초고왕 24년(369)에 태자 近仇首가 고구려와 싸울 당시 헌책한 인물로 나온다.
- 번역주 009)
색인어
- 이름
- 사마숙녜, 사마숙녜, 말금한기, 사마숙녜, 구저, 미주류, 막고, 구저, 구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