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전사유적
坂田寺遺跡
유적개관
판전사(坂田寺)는 『부상략기(扶桑略記)』에 의하면 계체(継体) 16(522)年에 도래(渡来)한 사마달지(司馬達止)가 조성했던 다카이치군[高市郡] 坂田原의 초당(草堂)에 유래(由来)한다. 이 유적은 발해 것일 가능성이 있는 삼채호의 파편이 두 점 출토되었다. 이 두 점은 동일 개체로서, 3조의 튀어나온 띠를 돌리고 회백석의 바탕에 녹유, 적유 등이 칠해져 있다. 나라 삼채에서는 이러한 유약을 칠한 것이나 그릇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나라 내지는 발해산의 삼채라고 보인다. 이외에 철유가 칠해진 수각 1점과 고동색 계통의 유약이 칠해진 토기편 두 점이 출토되었다.
유물개관
삼채호의 파편이 2점, 철유가 칠해진 수각 1점과 고동색 계통의 유약이 칠해진 토기편 2점
참고문헌
윤재운, 일본소재 발해 유적유물의 종합적 검토, 한국사학보41, 2010년 11월
해설
사카다[坂田]사(寺) 유적은 일본 나라[奈良]현 타카이치[高市]군 아스카무라[明日香村]에 위치한다.
사카다사는 『부상략기(扶桑略記)』에 의하면 “케이타이[繼體] 16년(522)에 대당한인(大唐漢人) 사마달지(司馬達止)가 입조하여 야마토[大和]의 타카시[高市]군 사카다하라[坂田原]에 초당(草堂)을 짓고 본존을 안치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언급되었다. 여기서 초당은 본격적인 사원건축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후 587년, 사마달지의 후손으로 백제인 불공(佛工)으로 기록된 사마다수나(司馬多須奈)가 출가하여 사카다사를 세우고 장육불상(丈六佛像)을 만들었다고 하였으니, 사카다사의 창건은 587년으로 봐도 마땅할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발해와 연관성 있는 유물로는 삼채호(三彩壺), 즉 삼채 항아리 파편이 2점이 있다. 이 2점은 모두 회백색의 바탕에 투명, 녹색, 적색의 유약이 칠해져 있고, 3개의 튀어나온 띠를 돌렸다. 일본의 나라[奈良]삼채는 이러한 유약을 칠했지만 형태가 달라 당의 것이거나 발해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철유(鐵釉)가 칠해진 수각(獸脚) 1점과 고동색 계통의 유약이 칠해진 토기편 2점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사카다사는 『부상략기(扶桑略記)』에 의하면 “케이타이[繼體] 16년(522)에 대당한인(大唐漢人) 사마달지(司馬達止)가 입조하여 야마토[大和]의 타카시[高市]군 사카다하라[坂田原]에 초당(草堂)을 짓고 본존을 안치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언급되었다. 여기서 초당은 본격적인 사원건축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후 587년, 사마달지의 후손으로 백제인 불공(佛工)으로 기록된 사마다수나(司馬多須奈)가 출가하여 사카다사를 세우고 장육불상(丈六佛像)을 만들었다고 하였으니, 사카다사의 창건은 587년으로 봐도 마땅할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발해와 연관성 있는 유물로는 삼채호(三彩壺), 즉 삼채 항아리 파편이 2점이 있다. 이 2점은 모두 회백색의 바탕에 투명, 녹색, 적색의 유약이 칠해져 있고, 3개의 튀어나온 띠를 돌렸다. 일본의 나라[奈良]삼채는 이러한 유약을 칠했지만 형태가 달라 당의 것이거나 발해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철유(鐵釉)가 칠해진 수각(獸脚) 1점과 고동색 계통의 유약이 칠해진 토기편 2점이 출토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