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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일본사료집

도시요리(年寄)의 진안(眞案) 2통

도시요리들이 보낸 진안(眞案)주 001
각주 001)
2통의 진문은 『竹嶋紀事』, 『竹島紀事本末』에도 수록되어 있다. 다음은 『竹嶋紀事』에 수록된 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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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태수주 002
각주 002)
1694년 9월에 사망한 4대 번주 소 요시쓰구(宗義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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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서 竹島(울릉도)의 일로 귀국[조선]에 사신(多田與左衛門)을 파견한 것이 두 차례인데 사신의 일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불행히 일찍 세상을 뜨셨고, 이런 연유로 사신을 소환하였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배에 올라 들어가 뵈었을 때주 003
각주 003)
다다 요자에몬이 번청의 지시를 받고 귀국길에 올라 쓰시마 후추(府中)에 도착한 것이 1695년 6월이고, 요시자네는 8월말에 쓰시마를 출발하여 10월 6일 에도에 도착했다(『池內敏』). 본문에 나오는 ‘배에 올라 들어가 뵈었을 때’란 요시자네가 쓰시마에서 에도로 이동하여 로주들에게 그간 조선과의 사이에 있었던 죽도 관련 교섭에 관해 보고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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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 질문이 竹島(울릉도) 땅의 형상과 방위에 대한 것이어서 사실에 근거하여 전부 대답하였습니다. 그곳은 본국(本邦)으로부터 아주 멀지만 귀국(貴國)에서는 도리어 가깝기 때문에 두 나라 사람들이 섞이게 되면 반드시 몰래 내통하거나 사사로이 시장을 개설하는 폐단이 생길까 두렵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로 [막부께서] 하교(下敎)하시어 영원히 일본인들이 고기잡이 하러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무릇 틈이 벌어지는 불화는 미세한 일에서 생기고, 재앙과 환난은 낮고 천한 곳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100년의 우호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자 한다면 일개 섬의 자질구레한 일은 따지기 않기로 얼른 결정하는 것이 두 나라에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귀국(貴國)은 南宮주 004
각주 004)
南宮: 조선시대 예조(禮曹)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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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명령하여 정성스럽게 서신을 쓰도록 해서 우리(我朝)의 성실한 우의에 감사한다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역관사(문위행)들은 귀국하는 날에 말로 설명하여 빠뜨리지 마십시오.
우리 공(요시자네)께서 친히 부탁하신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적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다음과 같이 서신으로 개진합니다.
귀국 사람 11명이 올해 여름 이나바(因幡)에 건너와 호소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두 나라의 교통(交通)은 다만 쓰시마(對馬) 한 길을 통한다는 맹약이 전날에 있었는데, 관계가 작지 않으니 이나바에 명령을 내려서 즉시 돌아가게 하고 전계(轉啟)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쓰시마(本州)는 두 나라 사이에 자리하여 通好를 전담하여 관장하여 온 그 유래가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 하루아침에 본주를 버리고 다른 길을 통하는 것은, 정해진 규약을 어기고 사사로운 계책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일이 의부(議府)에서 나온 것이라면 마땅히 명을 받들어 사신을 파견하여 그 까닭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의부에서는 일의 이치를 살펴 나라의 체면을 높이고 성실하게 생각하여 평소에 환하게 비추는데, 어찌 이 일을 가볍고 혼탁하게 거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내버려 두고 묻지 않은 것이니, 귀국은 마땅히 예전의 명령을 엄격하게 신칙하여 사사로운 폐단을 막고, 함부로 사단을 일으켜서 두 나라의 우호 관계에 분란이 일어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힘써 주십시오. 이에 역관사에게 미루어 짐작 하여 귀국하여 아뢰도록 당부합니다.

 우리 공(요시자네)께서 면대(面對)하여 고하신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아마도 말이 통하지 않거나 혹은 잘못 알아들었을까 염려되어 기록한 것을 역관사에게 건넵니다.

이상 前 번주님이 말씀하신 구상서의 내용만으로는 결말을 보기 어려워 가로(家老)들이 진안(眞案)을 상세히 작성해 주기를 역관이 원했으므로, 위와 같이 작성해서 도시요리(年寄) 연명(連名)으로 날인(朱印)하고 재판(裁判)을 통해서 건네주었다.

  • 각주 001)
    2통의 진문은 『竹嶋紀事』, 『竹島紀事本末』에도 수록되어 있다. 다음은 『竹嶋紀事』에 수록된 진문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2)
    1694년 9월에 사망한 4대 번주 소 요시쓰구(宗義倫). 바로가기
  • 각주 003)
    다다 요자에몬이 번청의 지시를 받고 귀국길에 올라 쓰시마 후추(府中)에 도착한 것이 1695년 6월이고, 요시자네는 8월말에 쓰시마를 출발하여 10월 6일 에도에 도착했다(『池內敏』). 본문에 나오는 ‘배에 올라 들어가 뵈었을 때’란 요시자네가 쓰시마에서 에도로 이동하여 로주들에게 그간 조선과의 사이에 있었던 죽도 관련 교섭에 관해 보고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004)
    南宮: 조선시대 예조(禮曹)의 별칭. 바로가기

색인어
지명
竹島(울릉도), 竹島(울릉도), 이나바(因幡), 쓰시마(對馬), 이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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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요리(年寄)의 진안(眞案) 2통 자료번호 : ud.k_0003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