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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서대총

西大墓/JMM0500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2003
  • 시대
    고구려
  • 위치
  • 관련자료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마선향(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麻線鄕)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산기슭 끝자락에 위치하며, 남으로 압록강까지 약 500m 거리이다.
유적개관
2003년 조사 당시 고분의 모서리 정리 및 트렌치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고분은 이른 시기에 대규모로 도굴되어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고분 중간에 남북 방향으로 고분의 바닥까지 파헤쳐 있으며, 묘실은 유실되었다. 서대묘는 대형의 계단적석총으로 잔고는 약 11m, 동북 양측변 길이는 53.5m, 서변은 56.7m, 남변은 62.5m인 평면 사다리꼴 형태이다. 현존 계단은 14단이며, 서쪽 중간에 '대길(大吉)'이라고 예서체로 음각된 글자가 있다. 고분 기단 주변에 입석판이 세워져 있으며, 배수로는 고분의 북측에 조성되어 있는데, 길이가 약 55m, 폭은 0.5m, 깊이는 0.3m이다. 북측에는 석단(길이 39m,폭 2m)이 존재한다.
유물개관
토기(어망추 1, 접시 1 등), 동기, 철기(호미, 못, 재갈 등), 석기(그릇), 도금장식(보요,관식, 포식 등), 기와(와당-권운문, 己丑년명, 문자와)
참고문헌
「集安高句麗王陵」, 2004
해설
마선구고분군 서쪽에 위치한다. 고구려의 초대형 계단적석총으로, 국내성에서 5.5km 떨어져 있으며 통구하를 건너 서쪽에 자리한다. 초대형 무덤 중 가장 서쪽에 자리하여 서대총이라 불렀으며, JMM0500호로 편호되었다. 마선향 건강촌의 북쪽 산기슭에서 자리 잡고 있는데, 남쪽 산기슭 아래로 집안과 단동을 잇는 도로가 지나가며, 멀리 남쪽으로 압록강이 바라보인다. 고분이 위치한 산기슭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고분의 남북 고도차가 10m나 된다. 동쪽으로 2km 거리에 천추총이 있으며, 1.5km 거리에 마선구626호분이 있다. 능원이 있는 계단적석총이었으나 일찍이 도굴되어 무던 중간에서부터 바닥에 이르는 긴 도랑이 생겼고, 도굴시 나온 석재들이 무덤 남쪽으로 흘러 내려서 현재는 장타원형의 돌무지 형상이다. 고분 평면은 사다리꼴로 동변과 북변의 길이 53.45m, 서변 56.7m, 남변 62.5m이며 잔존 높이는 11m이다. 고분은 두께 1.5m의 황색 점토층 위에 큰 석재로 계단을 쌓고 그 내부를 잔돌이나 강돌로 채우면서 층층이 쌓아올린 계단식 적석총인데, 잘 다듬은 화강암·사암·석회암 등을 계단석으로 사용했다. 남변 하부에 잘 다듬은 화강암 장대석을 사용했는데 길이 150~270cm, 높이 60~100cm이며 양측 모서리의 장대석은 길이 4m, 높이 0.2~0.4m로서 작을 뿐 아니라 가공 정도도 떨어진다. 서변 중단의 석재에는 ‘大吉’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각 계단은 수평을 이루는 형태로 쌓여졌는데 제1~2층 계단은 지세가 낮은 남측 부분에만 쌓였으며, 제3층부터 4면을 돌아가며 모두 쌓였다. 현재 남아 있는 각 모서리의 계단 수는 동북 11층, 동남 4층, 서북 5층, 서남 4층 등으로 이를 종합하면 계단 총수는 14층에 이른다. 매장주체부는 제14계단 위에 조영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도굴로 심하게 파괴되어 정확한 양상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도굴 구덩이와 위의 무너져 내린 돌 중에서 널방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을 가공된 석재가 보이지 않아 임강총과 마찬가지로 돌로 만든 널방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관못과 꺽쇠가 출토되어 목관과 목곽에 주검을 안치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제6층 계단 위쪽에서 기와 파편이 많이 발견되었다. 북변에서 회녹색 입석판이 발견되었는데, 제사와 관련된 유구로 추정된다. 북변 제1층 계단의 바깥에는 길이 55m, 너비 0.5m, 깊이 0.3m인 배수구가 발견되었다. 북측 40.5m 거리에서 강돌로 쌓은 담장유적과 계단 시설을 갖춘 문지가 발견되었다. 담장 주위에서 기와가 출토되고 있어 담 위에는 기와를 얹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동측 40m 거리에는 제대라 불리는 석축시설이 확인되었고 그 위에서 도금한 보요 장식품 등이 출토되었다. 평면은 긴 장방형이며, 가공한 돌로 네 둘레를 돌린 후 내부에 강돌을 채워 넣었으고, 상면은 고르지 않다. 이러한 석축시설은 종래 서측에도 있었다고 한다. 북쪽에서는 입석판이 발견되었다. 금동제 관식과 장신구를 비롯하여 철제 괭이·못·꺾쇠·재갈 등이 출토되었다. 기와편도 많이 출토되었는데, ‘爵’, ‘音’, ‘瓦’, ‘了’ 등의 명문(銘文)이 음각된 것도 있다. 특히 ‘己丑年□□于利作’이라는 명문이 있는 권운문와당도 출토되었는데, 이 명문의 기축년은 329년으로 편년된다. 이에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서대총이 329년 직후에 사망한 고구려 15대 미천왕의 무덤일 것으로 파악한다. 나아가서는 현재 파괴된 모습을 342년 전연 모용황이 미천왕릉을 도굴할 때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왜 고구려가 훼손된 선대왕의 능을 수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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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총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