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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마안석유지

馬鞍石遺址
  • 저필자
    김진광(한국학중앙연구원)
  • 시대
    발해/요금
  • 원소장처
    吉林省 樺甸市 紅石鎭 高興村 河西屯 南1.5km 色洛河 右岸(길림성 화전시 홍석진 고흥촌 하서둔 남1.5km 색락하 우안)
  • 시대
    발해
  • 유형
    생활
입지
유지는 마안석(馬鞍石) 서부의 색락하(色洛河) 북안 2급대지 위에 있고, 북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은 높은 산이며, 남쪽으로 약 70m 떨어진 곳은 색락하(色洛河)로, 화전(樺甸)에서 백산진(白山鎭)에 이르는 도로가 그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을 지나가며, 서쪽은 산곡평지이다.
유적개관
거주지 평면은 불규칙한 장방형이며 방향은 325도로 현재는 겨우 4벽의 벽 기단만이 남아있다. 벽은 불규칙한 돌로 쌓아서 만든 것으로, 돌은 어떠한 가공도 거치지 않았다. 벽 모서리에는 바깥쪽으로 약간 돌출되게 쌓아서 비교적 두꺼우며, 원형을 이루는데 형태가 마면같다. 거주지 중간의 거주면은 이후의 파괴로 인하여 아궁이 유적 또한 분명하지 않다.
유물개관
주거지 안에서 많은 夾砂黑褐陶의 도관 구연 혹은 잔편이 출토되었는데, 그 형식은 雙脣筒形罐이다. 또한 泥質黑褐陶束頸高腹罐의 잔편과 口沿아래에 이빨모양의 무늬가있는 陶罐 口沿 등이 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마안석유지(馬鞍石遺址)는 홍립석자진(紅砬石子鎭) 고흥촌(高興村) 하서둔(河西屯) 색락하(色洛河) 북안 대지 위에 있다. 북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 높은 산이 있고, 남쪽으로 약 70m 떨어진 곳에는 색락하가 있다. 화전(樺甸)~백산진(白山鎭) 도로가 그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을 지나간다. 서쪽은 산곡평지이다.
이 유지는 3개의 서로 다른 시기의 문화유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원시시기 유적이고, 다른 하나는 발해 전기의 주거유지이며, 나머지 하나는 비교적 늦은 발해시기의 무덤이다. 여기에서는 발해 전기 주거지에 대해서만 기술한다.
이 유지는 홍석저수지[紅石水庫] 수몰지역으로 문물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1984년 5월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가 홍석수력발전소 공사에 맞춰 조사ㆍ발굴하였다. 주거지 평면은 불규칙한 장방형이며, 방향은 325°이다. 현재는 벽 기단만이 남아 있다. 벽은 다듬지 않은 울퉁불퉁한 돌을 쌓아 만든 것이며, 그중 일부는 강자갈이다. 안팎의 벽은 비교적 반듯하며, 벽과 벽 사이는 작은 돌을 채워 넣었다. 벽의 두께는 70cm이다. 벽 모서리는 바깥쪽으로 약간 튀어나오게 쌓아 비교적 두텁다. 원형으로 모양은 치[馬面]같다. 벽 기단의 높이는 35~40cm 정도이며, 땅속에 묻힌 깊이는 25~30cm이다. 주거지 문의 너비는 1.04m이다. 문밖에는 길이 2.1m, 너비 2.5m의 둥근 모양으로 돌[圈大石塊]을 깔았고, 중간에는 약간 작은 돌들이 섞여 있다. 이렇게 만든 둥근 모양의 석권(石圈)은 문밖 만든 문길이다.
거주지 중간의 주거면은 훼손되었고, 아궁이 유적도 분명하지 않다. 단지 주거지 서쪽 한가운데서 붉은색 그을린 흙과 불에 그을린 돌 약간이 발견되었다. 아마도 아궁이터로 생각되나 흔적이 확실하지는 않다. 주거지 안팎에서는 기둥자리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집 지붕은 네 벽 위에 축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주거지 안에서는 모래가 섞인 흑갈색 도기 항아리[夾砂黑褐陶] 구연 혹은 잔편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그 형식은 주둥이 가장자리가 두 겹인 통형태의 항아리[雙脣筒形罐]이다. 또한 진흙으로 빚은 흑갈색을 띤 목이 오무라져 있고 배부분이 불룩한 도기 항아리[泥質黑褐陶束頸高腹罐] 잔편과 구연 아래에 이빨모양의 무늬가 있는 도기 항아리[陶罐] 구연 등이 있다. 이러한 몇 종류의 도기 항아리는 유수현(楡樹) 대파(大坡) 노하심유지(老河深遺址) 상층 무덤ㆍ영길(永吉) 양둔대해맹유지(楊屯大海猛遺址)에 있는 3기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과 같다. 또한 후자는 대체로 발해 전기 말갈족들의 유존으로 인정된다. 대해맹 3기 무덤의 연대는 C14 측정결과 B.P.1505±70년으로, 마안석유지의 연대도 이와 가깝다.
이렇게 돌과 강자갈을 사용하여 축조한 장방형의 발해 주거지는 길림성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흑룡강성 동녕현(東寧縣) 단결유지(團結遺址)의 발해건축지보다 원시적이므로 발해 건국 이전의 속말말갈 유적으로 생각된다.
참고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 1986, 「樺甸縣文物志」, 27~28쪽.
김진광, 2012,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589~5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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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안석유지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10_008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