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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대구 신서혁신도시 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2005~2006·2008~2011
  • 시대
    청동기~조선
  • 위치
  • 원소장처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각산동 일원
  • 시대
    상고사
  • 유형
    복합
유적개관
청동기시대 주거지, 지석묘, 석관묘, 석곽묘, 구상유구, 원삼국시대 목관묘, 옹관묘 수혈유구, 삼국시대 이후의 도로유구, 수레바퀴흔, 고려~조선시대 수혈유구, 구상유구, 시대미상의 목탄요, 야외노지, 주혈군 등 다양한 시대에 걸쳐 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되었음.
출토유물
* 주머니호, 칠초철검, 판상철부,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단경호, 철검, 철모, 철촉, 세형동검 옹, 검파두식 등
참고문헌
「대구 신서혁신도시 A구역유적 발굴조사 -略報告書」
「대구 신서혁신도시(택지) 개발사업 B구역 문화유적 1차 발굴조사 약보고서」
해설
대구시는 한반도 동남부 영남내륙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경산시, 서쪽으로는 성주군과 고령군, 남쪽으로는 청도군, 창녕군, 북쪽으로는 칠곡군, 군위군과 연접하고 있다. 신서동 일원은 팔공산의 지봉 가운데 하나인 초례봉을 중심으로 남쪽편에 위치하는 금호강을 향해 뻗어 내린 여러 가닥의 능선들이 위치하고 있다. 능선 자락들 사이에는 계곡이 깊이 형성되어 있으며, 계곡을 따라 개천들이 금호강을 향해 흐른다. 유적은 평지부인 초례봉에서 금호강을 향해 형성된 선상지와 낮은 구릉지 상에 위치한다.
금호강의 북쪽과 인근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이 조사된바 있다. 특히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동내동유적, 괴전동유적, 각산동유적, 동내동 고인돌군, 율암동 고인돌군 등이 분포하고 있다.
대구 신서혁신도시 택지개발지구에 해당하여 2005~2006년에 걸쳐 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어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건설부지의 중앙을 기준으로 서쪽을 A구역(각산동), 동쪽을 B구역(신서동)으로 구분하고 전자는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후자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2008~2011년에 걸쳐 시・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어 2007년 동 기관에 의해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어 2008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무덤, 구덩유구를 비롯하여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의 분묘유구와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가마, 구덩유구, 도로유구, 도랑유구 등 수많은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A구역에서 1기, B구역에서 66기로 총 67기가 조사되었다. 구릉 정상의 평탄면에서부터 사면에 걸쳐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조성되었다. 집자리는 방형계와 원형계로 구분되며 방형계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세분할 수 있다. 바닥은 굴착한 생토면 위에 진흙을 다져 생활면으로 활용한 것과 별다른 시설 없이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구분된다. 집자리 내부에는 화덕자리, 주혈, 벽도랑, 저장공, 내부구덩 등의 시설이 확인된다. 화덕자리는 바닥면 중앙부에 1~2기가 시설되어 있는데 평면 원형의 토광식 화덕자리와 방형의 위석식 화덕자리로 구분할 수 있으며 양자가 동일 집자리에 시설된 것도 확인된다. 기둥구멍은 2×3의 6주식, 2×4의 8주식, 2×6의 12주식과 함께 장벽 가까이 기둥구멍열이 시설되는 등 다양한 구조를 보인다다. 장벽과 단벽에는 단면 U자형의 벽도랑이 시설되어 있는데 내부에는 벽체를 세우기 위한 기둥구멍이 열을 지어 시설되어 있다. 모서리 벽면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공이 확인된다. 일부 집자리는 바닥에 다량의 목탄과 집석된 것으로 보아 화재 폐기된 후 집석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바닥면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구멍이 설치된 이른바 송국리식 집자리는 방형계와 원형계 모두 확인되는데 원형계 집자리 중 일부는 타원형 구덩이 없이 벽도랑과 기둥구멍만이 시설된 것도 발견된다.
B구역에서는 고인돌과 돌널무덤 88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상석 아래 지석을 둘러 놓은 위석식과 할석을 이용하여 무덤방을 구축한 개석식으로 구분된다. 돌널무덤의 무덤방은 판석제를 이용하여 세로 쌓기하거나 가로 쌓기하여 구축하였다. 무덤방 안에서는 붉은간토기, 민무늬토기, 곡옥, 간돌검, 간돌화살촉 등이 부장되었다. 이 외에도 A구역과 B구역에서는 구덩유구와 구상유구, 적석유구, 야외 화덕자리 등이 함께 조사되었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 단사선토기, 골아가리, 겹아가리토기, 흔암리식토기, 손잡이 달린 토기, 민무늬토기, 항아리형토기, 민무늬토기, 깊은바리형토기, 그물추 등의 토기류와 원판형석기, 간돌도끼, 대팻날도끼, 갈돌, 갈판, 숫돌, 갈돌, 반달돌칼, 삼각형돌칼, 부리형석기, 돌창, 가락바퀴, 간돌화살촉, 간돌검, 홈자귀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신서동유적은 청동기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 집자리 구조나 토기 형식, 무덤군 등으로 보아 오랜 기간 존속된 것으로 보이며 절대연대로 기원전 12세기~7세기(2500±130 BP~3060±40 BP) 정도로 판단된다. 특히 주목을 끄는 유구는 B-1구역에서 조사된 대규모 무덤군이다. 25×25m 정도의 범위 내 52기의 무덤이 중복되지 않은 채 동-서, 남-북 방향으로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어 묘역 조성에 대한 공간 구획을 엿볼 수 있으며 다양한 무덤 형식과 구조가 밝혀져 청동기시대 무덤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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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서혁신도시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6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