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도 고적 조사의 개요
1913년도에 이루어진 고적 조사의 중심 조사 대상은 고구려 고분이었다. 이 해의 고적 조사는 9월 중순에서 12월 4일까지 이루어졌는데, 9월 23일에서 25일까지는 매산리 고분군, 화산리의 대연화총과 성총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9월 26일에서 29일까지 안성동 대총, 쌍영총을 조사하였다. 그 후 집안으로 건너가 11일간 체재하면서 통구성, 산성자성, 장군총, 후방석총, 태왕릉 등을 조사하였으나 이 때 집안에서 세키노가 작성한 고구려 고분의 도면과 조사 일지 등은 돌아오는 기차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1913년의 조사에서도 ‘세키노 조사단’의 세키노, 야쓰이, 구리야마가 주축이 되었지만, 1912년과 마찬가지로 조선총독부 영선과 소속의 이와이, 이왕가박물관의 촉탁 신분인 오타와 오바 쓰네키치도 참가하였다. 그리고 1913년의 조사에는 조선총독부 내무부 학무국 편집과의 ‘교과서 편찬을 위한 역사자료 수집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조사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진남포 방면을 조사할 때는 조선총독부 기수인 아이자와(相澤啓治)가 수행하였다.
한편 1913년 7월 10일에는 조선총독부 훈령 제43호가 발령되어 고분을 발굴하는 경우 경찰을 경유하여 조선총독부에 신청해야만 했다(內田2001).주 001세키노 조사단이 조사 전에 이러한 절차를 밟았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1913년의 조사에서도 ‘세키노 조사단’의 세키노, 야쓰이, 구리야마가 주축이 되었지만, 1912년과 마찬가지로 조선총독부 영선과 소속의 이와이, 이왕가박물관의 촉탁 신분인 오타와 오바 쓰네키치도 참가하였다. 그리고 1913년의 조사에는 조선총독부 내무부 학무국 편집과의 ‘교과서 편찬을 위한 역사자료 수집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조사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진남포 방면을 조사할 때는 조선총독부 기수인 아이자와(相澤啓治)가 수행하였다.
한편 1913년 7월 10일에는 조선총독부 훈령 제43호가 발령되어 고분을 발굴하는 경우 경찰을 경유하여 조선총독부에 신청해야만 했다(內田2001).주 001세키노 조사단이 조사 전에 이러한 절차를 밟았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