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용강 고분군
1) 조사 경과와 내용
원래 세키노 조사단은 용강에 갈 계획이 없었다. 강동의 한왕묘로 가려고 하였으나, 비로 인해 도로사정이 나빠져 진남포로 가 주변의 유적을 답사하였다. 29일 기차로 진남포에 도착하여 도기(陶器) 공장을 견학한 후 용강(龍岡)의 숙사(宿舍)에서 용강 군수 전덕용(田德龍)과 서기(書記)로부터 용강 서쪽에 있는 황산 주변에 고분이 산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곳을 답사하였다. 이 황산 고분군에 대한 조사 내용은 『조선고적도보』Ⅱ에 약간의 사진이 게재되었을 뿐(圖10~16), 그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된 보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키노의 고구려에 관한 강연과 논문에서도 황산 고분의 조사 내용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세키노 컬렉션에 있는 야장에 조사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조선고적도보』Ⅱ의 사진과 야장을 통해 황산 남록에 넓게 산재하는 고분군의 전경을 알 수 있고, 일부 석재가 노출된 고분군 사이에서 헌병을 대동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조사원들의 모습에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용강군 해운면에 위치한 황산 남록에서 확인된 고분들은 대개 소형이며 다곽묘이다.주 001황룡산 서남록의 고분군을 조사하고 용강읍 부근에서 촬영한 고구려 고분 사진도 있는데, 천장돌이 약하거나 파괴된 고분을 골라서 내부로 들어가 도면을 작성한 것이다. 9월 30일에 작성된 야장에는 ‘용강 고분(龍岡古墳)’이라고 적은 고분 약측도가 있는데, 이는 용강의 고구려 고분 중 천장석 일부가 노출된 고분의 상부를 봉토 바깥에서 그린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삼각고임천장의 아래로 3단의 평행고임이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석실 내부에서 보이는 부분이 아니면 석재 가공에 공을 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圖22). 야장의 뒷면에는 “용강에서 북방으로 약 7~8점 떨어진 황룡산성과 높은 구릉 사이에 다수의 고분이 존재한다. 이들 고분은 상부가 파괴되어 개석의 아래가 보이기도 하는데 내부는 토석으로 충전되어 있다. 그 구조는 거의 대성산성 아래에 있는 고분과 내부 구조와 석재면에서 비교된다”라고 적혀 있다.
9월 30일 작성된 야장에는 석실의 평면 플랜과 석벽, 천장 구조가 확인되는 고분이 있는데 ‘용강 고분’이라 적혀 있다. 이 고분은 연도가 중앙에 달린 단실묘로 벽은 상하가 곧게 축조되었으며 최소 3단의 고임석으로 평면을 줄인 것이 확인되나 천장 마무리 돌은 야장에 그려지지 않다(圖23). 벽돌처럼 가공된 석재를 이용하여 석실을 축조하였다. 석실 벽면이 석회로 마감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약측도의 뒷면에는 연도가 남쪽 중앙으로 뻗었고 석곽의 바깥은 흙으로 봉토를 만들었다는 정도의 기록이 남아있는데 갈겨 쓴 글씨라 정확히 읽을 수 없다.
황산 고분군은 평안남도 해운면과 용월면에 걸쳐서 자리한 황산의 남사면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고분군임에 틀림없으나, 정식 보고가 없고 현장에서 작성된 야장을 통해서도 그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황산 일대에서 소형의 다곽식 고구려 고분이 이미 1911년에 조사되었다는 점, 중앙 연도를 가진 단실구조의 고구려 고분이 혼재한다는 점은 중요한 사실이다.
용강군 해운면에 위치한 황산 남록에서 확인된 고분들은 대개 소형이며 다곽묘이다.주 001황룡산 서남록의 고분군을 조사하고 용강읍 부근에서 촬영한 고구려 고분 사진도 있는데, 천장돌이 약하거나 파괴된 고분을 골라서 내부로 들어가 도면을 작성한 것이다. 9월 30일에 작성된 야장에는 ‘용강 고분(龍岡古墳)’이라고 적은 고분 약측도가 있는데, 이는 용강의 고구려 고분 중 천장석 일부가 노출된 고분의 상부를 봉토 바깥에서 그린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삼각고임천장의 아래로 3단의 평행고임이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석실 내부에서 보이는 부분이 아니면 석재 가공에 공을 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圖22). 야장의 뒷면에는 “용강에서 북방으로 약 7~8점 떨어진 황룡산성과 높은 구릉 사이에 다수의 고분이 존재한다. 이들 고분은 상부가 파괴되어 개석의 아래가 보이기도 하는데 내부는 토석으로 충전되어 있다. 그 구조는 거의 대성산성 아래에 있는 고분과 내부 구조와 석재면에서 비교된다”라고 적혀 있다.
9월 30일 작성된 야장에는 석실의 평면 플랜과 석벽, 천장 구조가 확인되는 고분이 있는데 ‘용강 고분’이라 적혀 있다. 이 고분은 연도가 중앙에 달린 단실묘로 벽은 상하가 곧게 축조되었으며 최소 3단의 고임석으로 평면을 줄인 것이 확인되나 천장 마무리 돌은 야장에 그려지지 않다(圖23). 벽돌처럼 가공된 석재를 이용하여 석실을 축조하였다. 석실 벽면이 석회로 마감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약측도의 뒷면에는 연도가 남쪽 중앙으로 뻗었고 석곽의 바깥은 흙으로 봉토를 만들었다는 정도의 기록이 남아있는데 갈겨 쓴 글씨라 정확히 읽을 수 없다.
황산 고분군은 평안남도 해운면과 용월면에 걸쳐서 자리한 황산의 남사면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고분군임에 틀림없으나, 정식 보고가 없고 현장에서 작성된 야장을 통해서도 그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황산 일대에서 소형의 다곽식 고구려 고분이 이미 1911년에 조사되었다는 점, 중앙 연도를 가진 단실구조의 고구려 고분이 혼재한다는 점은 중요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