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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임원재

안하면 죽인다고 하는 걸 뭐
임원재 | 1942년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로 강제동원
임원재 씨는 충청남도 서산군 인지면 화수리 출신으로 1922년에 태어났습니다. 23세인 1942년 4월에 징용되어 나가사키 현 소재 미쓰비시 조선소에 동원되었습니다. 조선소에서는 주로 잔심부름을 했습니다. 일본어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가사키에 폭격이 잦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임원재 씨도 눈과 허리를 다쳤습니다.
 
『똑딱선 타고 오다가 바다귀신 될 뻔했네』,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2006, 49~72쪽
 
 
임원재(任元宰)_남. 85세
 
  • 일자
  • 내용
  • 1922. 6. 20
  • 충남 서산군瑞山郡 인지면仁旨面 화수리花樹里 출생
  • 1942. 4
  •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소재 미쓰비시(三菱) 조선소에 동원
    각주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소재. 1857년에 도쿠가와막부 나가사키용철소(鎔所)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여러 이름으로 바뀌었다 1934년 미쓰비시중공업주식회사 나가사키조선소가 되었다. 1942년에 전함 무사시(武. 6만9천 톤) 등을 만드는 등 군수공장으로서 전쟁에 적극 참여, 일본인을 비롯한 많은 조선인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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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세)
  • 1945. 9
  • 귀국



할아버지 생년월일生年月日이 어떻게 되세요?


9월 9일. 섣달 수요일이거든. 내 생일이. 닭띠. 신유생辛酉生. 여든 다섯이거든. 나는. 세월이 빨러. 얼마 안 간 거 같은데 이렇게 빨러. 나 원 참. 아무리 생각 해 봐도 빨라.


몇 살 때 징용徵用을 가셨어요?


나? 장가들고서 갔지. 23살. 젊어서 갔지. 아주. 내가 살아서 이런 얘기하지, 죽고선 못해 이제.


그래서 할아버지 말씀 들어보려고 온 거예요


고맙네.


장가는 몇 살 때 가셨어요?


장가는 22살. 징용은 장가가고 한 살 더 먹고서 갔지. 일하러 가라고 해서 갔지.


그때 아들이나 딸은 없었어요?


세월이 빨러. 뭐 안 태어났지. 갔다 오고서 3년 뒤에 해방解放이 되고선.


해방되고 오신 거예요?


그렇지. 그래가지고선 연락선連絡船 타고 갔는데. 연락선 그때 당시에 야미배(밀배) 타고 왔어. 다 죽었어. 징용 간 사람들.


징용은 어떻게 해서 가시게 된 거예요?


그때? 가라고 해서 갔지. 뭐. 부락에. 이장里長이. 그때는 구장區長
각주 )
일제시기 각 마을을 하나의 구역區域으로 하여 그 구의 장을 구장이라 불렀다. 지금의 통장, 이장里長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제시기에 구장은 최말단 행정원으로 조선총독부→ 도청 → 군청 → 읍면사무소 → 구장으로 업무가 진행되었다. 구장은 마을의 사정을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나 회사직원들과 동행하여 직접 마을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강제동원 대상자는 구장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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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했지. 가라고 기별寄別했지. 부락으로.


징용장徵用狀이 나왔어요?


그렇지. 언제까지 가라고 해서 갔거든.


어디에 모였어요?


거기 꼭대기 있잖아? 지금도 있잖아? 동洞은 자세히 모르겠어.


이쪽 인지면仁旨面이요?


응. 꼭대기 서산瑞山.


거기에 몇 명이나 모였던가요?


많았지. 몰라. 전부 다 도라꾸(트럭)로 실어 나르고.


트럭으로 실어 날라요?


그래. 홍성洪城까지 굉장했었지. 우리 면面에도 전부 다 일본 사람이었어. 일본 사람이대. 조선 사람 있었간. 일본인이 찾아와서 전부 그랬지. 그래서 와가지고, (*징용) 갔다 오고선 전부 그 사람(일본 사람) 쫓을려고 했어. 그때 한국 사람이 없었어. 옛날에도 아주 전부 일본 사람들이었어.


그 당시에 부모님은 계셨어요?


아. 당연히 계셨지. 형제는 5형제. 4형제인데. 군인軍人가서 죽었어. 부모님 살았을 적에.


할아버지는 몇 째세요?


제일 맏이. 그렇지. 내가. 둘째 동생은 군인 나가서 죽었거든. 내가 첫 번에 나갔거든 또. 어머니 아버지께서…. 내가 농사짓다가 애들이(동생들이) 커서 농사지었지.


서산서 모여서 트럭으로 홍성까지 실어 날랐어요?


그렇지. 많이 갔어요. 한두 사람이 갔나. 그때 많이 갔지. 사람이. 몇 명이라고 따질 수가 없지.


동네에서 같이 가신 분 있으세요?


아. 동네에서 다 같이 갔는데, 다 죽었다니까.


누구 기억나는 사람 있어요?


기억나는 사람이 누구 아나? 다 잊어버렸지. 동○이. 최동○. 최장○이. 다 죽었지. 우리 동갑내기들 다 죽었어. 이승○. 이근○. 가서 다 죽었어. 인천으로 가서 죽었지. 여기서 살다가. 그 사람이랑 같이 가려니까 그 사람 각시(아내)가 뒤로 차더라고. 날 먼저 넣으려고. 지서支署에서 구장 데리고 얘기 하는 거야. ‘야! 너 가기 틀렸다. 난 못 가겠다.’ 이런 사람들이 많았어. 그래서 부모들이 난리인겨. 각시도 그렇고. 그러니까 갈 사람들이 ‘이제 난 못 가겠다.’이러고 마음대로 혀. 일본 놈들.
각주 )
동원 과정에서 동원대상자 선정 등에서 원칙이 없이 운영되었음을 표현한 구술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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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는 또 어디로 갔어요?


어디로 가? 연락선 타고 가는 거지. 일본으로 가는 거지.


연락선 타기 전에 홍성에서 어디로 가셨어요?


홍성서? 부산釜山으로 갔지. 그냥 부산으로 가지. 그래서 부산 서 배 타가지고 일본 건너갔지. 나가사키長崎.


나가사키까지 어떻게 가셨어요?


배로 갔지. 그때 배로 가가지고. 나가사키 가가지고 거기 사람이. 미스보시(三菱. 미쓰비시)로. 그 공장工場에. 그래서 거기서 비행기飛行機가 폭격爆擊해 가지고 폭탄이 떨어져서 다 죽었어. 그래서 이렇게 허리도 아프고 눈도 어둡고.


부산에서 배 타고 나가사키 가실 때 배를 며칠이나 탔어요?


며칠은 뭘. 가가지고 밤늦게 도착到着했지 뭐. 그래가지고 어디다 내린지 알어?


누가 데리고 갔어요?


여기서 가는 사람이 있나? 거기 사람이 끌고 가는 거지. 일본 사람이.


부산에서 일본까지는 일본 사람이 데리고 갔어요?


그렇지. 여기서 가는 사람 있나? 일본 사람이 데려 갔지. 가기야.


일본까지 몇 명이 같이 갔어요?


많았지. 나중에 간 사람도 있고. 먼저 간 사람도 있고. 우리랑 같이 간 사람도 있고. 한꺼번에 다 갔간? 몇 차례 갔지. 그럼. 여기 면에서랑 지서에서랑 일본 사람이 있었지요.


할아버지, 학교學校는 다니셨어요?


학교 안 다녔어요. 그 어머니 아버지께서 학교를 안 보내시고 한문漢文공부를 시켰어. 한문. 한문 서당書堂을 다녔지. 젊어서 학교를 안 다녔어.


일본말은 하실 줄 아셨어요?


몰랐죠. 일본말. 한국말만 하고.


일본 이름이 있으세요?


일본 이름? 도로까와
각주 )
앞의 글자는 알 수 없으나 뒤의 글자는 카와라는 발음으로 보아 川이나 河로 추측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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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던가. 어. 도로까와. 안 쓰니까 다 잊어버리지. 한국말도 안 쓰면 다 잊어버려. 일본말 누가 쓰나. 그거.


서산에 모였을 때 신체검사身體檢査같은 건 안했나요?


했지. 미리 했지.


어디서 했어요?


거기 가서 했지. 여기서 했어요. 그게 어디서 했더라. 한 번 한 거 같은데.


신체검사는 어떻게 했어요?


허리 재고. 키 재고.


신체검사도 하고 잘 다녀오라고 박수拍手도 쳐주고 그러던가요?


그야. 그렇지. 부모도 막 따라오고. 아, 전부 따라갔지. 부모들이 가만히 있나. 나 같아도 자식이라면 가만히 있겠어?


부산까지는 기차로 가셨어요?


그렇지. 그렇지. 그리고 배 타고 일본 도착했지.


나가사키 도착하셔서는 어디로 가셨어요?


미스비시(三菱)합동合同공장으로 갔지.


이 공장은 뭐하는 곳이에요?


배 짓는 심부름 했지. 뭐.
1929년의 미쓰비시조선소 제3도크의 모습


배 만드는 공장이에요?


그렇지. 말하자면 일본 사람들이 하는 곳이지. 조선 사람 데리고. 그래서 사람이 널러가(날아가). 바람이 불고. 여기서 바람을 이겨내니까는 허리가 어찌나 아픈지. 아파죽겠어. 나 원.


거기서 무슨 일 하셨어요?


거기서 심부름 했다니까요. 허허. 물건 가져다 달라고 하면 갖다 주고.


잔심부름이요?


그렇지. 잔심부름 했지. 뭐를 아나. 그때 만해도. 한국말로 하는 사람 있으니까. 그 사람들 이야기 듣고서 심부름 해준다고. 그런 일 다 했다니까요. 한국 사람이, 일본말 잘하는 한국 사람이 거기 가서 심부름 해주지. 그 사람 이야기 듣고서 심부름 해주는 거지. 그렇지. 한국 사람이 일본말 잘 하는 사람이.


일본말 잘하는 사람이 통역通譯을 해줘요?


걔네들이 알아듣고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한국 사람이 그걸 듣고서 한국말로 뭐 뭐 가져오라고 하면 갖다 주고. 그래서 일했다니까요. 안하면 죽인다고 하는 걸 뭐. 죽기 싫으니까 하고.


동네에서 같이 가신 분들이 전부 그 공장에서 같이 일을 했어요?


우리 공장에서 다 같이 있는데 다 세상 떴어. 같이 일 한 사람도 있고. 각각 헤어져서 어디서 일한지 모르지. 그리고 그렇게 됐지. 젊었을 때 갔는데, 다 죽고.


그 공장에 가서 무슨 교육敎育같은 건 안 받으셨어요?


교육? 교육은 무슨. 시키는 대로 하면은 잘한다고 칭찬해주지. 걔들이. “야! 너 잘 한다.” 이것도 훈련訓練이라고 혀. 그것들이. 그래도 그거 알면서도. 뭐 있냐? 안 하면 죽인다는 것을 뭐.


누가 죽인다고 그래요?


갸들이 하는 소리지. 말하자면. 일본 놈들이.


막 때리고 그랬어요?


때리는 사람도 있지. 없는 게 아니여. 그런데 맞다가 나오면은 그 놈도 맞고 나도 맞지만은 싸우질 안 혀. 서로. “야! 그만 하자. 너나 나나 마찬가지여. 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여. 왜 이렇게 손찌검 하려고 해. 야! 고만 하자.” 이러는 사람도 있고. 또 말로 다 지랄하는 놈도 있어. 거기다 뺨 때리고. 발로 차고 이러는놈도 있거든. 그러면 “이놈의 새끼 너 마침 잘 걸렸다.” 허허 이거 맛을 보여준다고. 대번에 또 차요. 그래 쓰러지고 마는 겨. 그 싸울 수가 있나? 못 하지.


미쓰비시 공장에 일본 사람이 많았어요?


많이 있지. 대부분 일본 놈들이지 뭐. 그때.


할아버지는 그 공장에서 어디에 소속所屬되어 있었어요?


부서部署가? 뭐. 무슨 부? 만드는 데 심부름. 뭐 가지고 오라고 하면 이것 좀 가져와. 쇠 조각 좀 가져오라고 하면 갖다 주고. 이랬지. 거기서 그냥.
바다 쪽에서 본 나가사키항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 전경(조사1과 이병희 조사관 촬영)


일 시키는 사람들은 다 일본 사람이었어요?


그렇지. 다 일본 사람들이지. 그래가지고. 한국 사람이 통역해 주는 사람이 있거든.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한국 사람이 “야 이렇게 해라. 뭐 뭐 갖다 줘.” “알았어.” “뭐 뭐 갖다 줘라.” 그러지.


몇 명이서 같이 일을 했어요?


몇 명이나? 한 50명 같이 일했지. 많았었지. 들락날락하고. 그리고 교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어. 교대로. 하루 종일 일하는 게 아니여. 교대로 일했지.


얼마마다 교대를 했어요?


하루 이틀 하고 교대하고. 밤일도 했어. 밤일.


밤일이요?


그렇지. 밤일 교대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 종일 하는거지. 종일. 이틀 사흘 하다가 교대를 하는 겨. 이틀 사흘씩 이렇게 교대를 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을 하는데요?


그때는 이제 시계時計들이 없었어. 시계 있었간? “지금 몇 시냐?” “아홉 시다.” 그래서 일러줘서 알았지. 그때 거기 가서 있다가 누가 시계를 판다고 하대. 그럼 그 시계 돈 주고 팔라고. 그냥 주는 사람도 있고. 안 주는 사람도 있고 했어. 그때.


몇 시부터 일 하셨냐구요?


아. 아침 몇 시부터 일했냐고. 7시부터 시작하지. 해지면 끝나는 겨. 밤일 하는 사람도 있고. 야간. 밤낮 2교대.


식사食事는 어떻게 하셨어요?


밥은 식당食堂에서. 밥 하는 데가 있지.


공장 안에요?


그렇지. 그래가지고. 일하러 가서 먹고. 거기서 오면 목욕沐浴하고 집에 와서 자고. 잠자는 데. 밥 먹고 목욕하면 밥 먹으나 마나여. 목욕부터 하고 밥 먹어야 해. 그래야 밥 먹은 거 같지. (*이미 소화가 다 되어서) 언제 먹었는가 그래. 그래서 목욕부터 하고서 밥 먹었지. 밥도 뭐 많이 먹었나? 그 사람들 주는 대로 먹었지. 세 숟갈 주면 세 숟갈 먹고. 더 달라고 하면 더 주나?


밥을 더 안줘요?


그럼. 한 사람이 더 달라고 하면 더 줘요? 안 줘요. 그러면. 일본 놈들이 얼마나 독했다고.


밥은 어떻게 나왔어요?


쌀밥은 고사하고. 보리. 그 사람들 보리 왜 안 있나. 보리로 반죽 나올 때도 있고. 하얗게 덩이로 나올 때도 있고 그랬어. 반찬은 간단해. 두 가지씩 줘. 병원밥 반찬 나오듯 해. 반찬을 그렇게 준단 말씀이여.


반찬은 뭐가 나오는데요?


그 사람이 고추면 고추. 산에다가 개간開墾을 해가지고. 고추를 줘. 된장도 주고. 고추가 매웁다지만 일본 놈들 잘 먹어. 고추. 그 산에 올라가면 전부 단감나무여. 지금 올라가면. 단감, 단감나무 그게 있어. 단감나무 한 20그루 되는데, 전부 단감나무여. 단감. 넘어가서 그걸 단감 따먹지. 그럼 전부 단감이지. 그래서 그때는 자기들이 농사를 지으면은 한국인 수십 명 내 가지고서(동원해서). 배를 이렇게 한 번씩 묶어가지고. 갈라서. 그럼 말려서. 전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거야. 집집마다. 여기서 일본 놈들이 하여간 독재자獨裁者여. 말귀를 알아들어야지. 일본 놈 소리. (*우리가) 한국말을 하니까. 갸들이 말귀 알아듣고 잘혀. 한국말 잘 알아듣고 잘혀. 한국 사람들이 그때 말귀 알아들어야지. 아는가? 각방 쓰고. 못 알아들어. (*일본은) 논도 조그마하고 없어. 산에 논이 있지. 한국처럼 큰 논 있간? 다래다래 조그만 씩 하지.


공장 주변에 산山이 있었어요?


공장 옆이 아니라 산에 한 번씩 놀러 가면. 거기서 해준다는 거지. 해봤다는 거지.


놀러 갔을 때 보셨단 말씀이세요?


그렇지. 뭐 그 근처에 있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놀러 나가셨어요?


구경은 이제 산, 산 같은데. 주로 산으로 가지. 감도 따먹어 봤지. 단감나무라고. 자기 집 근처가 산이니까 주위가 전부 단감나무라고.


쉬는 날이 많이 있었어요?


많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논 것이 아니라. 정 답답하면. 한 번 놀게 해달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 그러면 그때 한 번 시켜주겠다고. 일본 놈이 이야기 하는 겨. 그러면 우리를 부리거든. 농사지으니까. 그런갑다(그런가보다) 하는데 우리가. 같은 사람인데 말이야. 이거 안 도와주면 안돼. 일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한 번 구경하고 오라고. 이렇게 해서 가는 겨. 거기로 그래서 산 구경 한다고 산으로 가면. 가서 보면 단감이라니까. 전부.


일요일日曜日마다 전부 쉬는 게 아니구요?


쉬는 거 없어요. 일요일 날 쉬간? 일을 시킬 때가 많았지. 쉬는 날도 있지만은 일하는 날이 많어. 한국 사람들이.


잠은 어디서 주무셨어요?


잠은 사람 자는 데서 자지 뭐.


어떻게 생겼어요?


숙소宿所라고 있는데. 그런데. 거기서도 군대軍隊라고 있지마는. 난 군대도 안 갔어. 군대 안 갔어도 얘기 들어보면 군대 자듯해. 옆에다가 하나씩 담요 같은 거 주고. 그럼 그거 놓고 자는 겨.


몇 명이나 같이 자는데요?


자는 거야 다 잤지. 한 열아홉 명이 이렇게 자면. 큰 방이면 이렇게 마루 같은 데가 있거든. 그러면 그냥 들어와서 자는 거야. 낮에 일하고 잠들면 때려 죽여도 일어나? 사람이 흔들어 깨우고 소피(소변)나 보면 깨어날까? 깰 새가 없지.


다다미(疊)방
각주 )
다다미. 마루방에 까는 일본식 돗자리. 속에 짚을 5cm 가량의 두께로 넣고 위에 돗자리를 씌워 꿰맨 것으로, 보통 너비 석 자에 길이 여섯 자 정도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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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데서 자요?


그렇지. 안 그러면 마루 같은 데서 자고.
다다미가 깔린 방의 모습


방이 얼만해요?


방이 크지. 여기에 마루 있지. 그렇지. 그래서 그 마루에서 자고. 방에서 자고 그렇지. 겨울에 방이 추우면은 마루에서 자는 사람도 있고. 담요가 있어. 한국처럼 이불이 아녀. 담요지. 담요로 덮었어. 그거. 그래서 깔고 덮고 자고 그런다고. 그 사람들이 이불을 주간? 전부 담요지. 전부 담요 깔고 자고.


공장 안에 숙소가 있었어요?


떨어졌지.


공장 외부外部에 숙소가 있었어요?


그럼 밖에 있지. 사람들 자는 데도 떨어져 있고. 떨어져 있는 게 아랫집 같이 가깝고.


거기서 주무시고 공장으로 출근出勤하신 거네요. 출근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시간 얼마 안 걸렸지. 걸어서 갔지. 가까우니까. 가깝지.


그럼 아침 7시 정도에 아침밥을 먹고?


그렇지. 바로 일하고. 해지면서 들어오면 밥 먹는 거지.


월급月給은 받으셨어요?


금전金錢주는 것이. 노임勞賃주나? 노임. 돈 몇 푼 주는 거. 그럭저럭 댐배 사면 뭐 있가니? 담배 끊고 술 끊어야 하는데. 술은 끊는데 영 담배는 끊을 수가 있어야지. 담배 피는 거야.


일당日當을 얼마씩 줘요?


일당 얼마씩 주는 게 아니여. 뭐 몇 푼 씩 주는 거 담배 사 피우고.


그 돈을 얼마마다 한 번씩 받았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얼마씩 줬가니? 그때 1전錢씩 줄 때인데. 지금 1전 돈 같지도 않어. 지금 만 원씩이 천 원씩이여. 지금은. 그때 만 원짜리는 구경을 못 했어. 일본서.


받은 돈은 어디에다가 쓰셨어요?


돈 받아서 내라고, 내라고. 내면 뭐 있어. 그럼. 담배 사 피우고. 담배 그때만 해도 젊었으니까 담배 피우지. 담배 끊지 못하고 나눠 폈지. 없어서. ‘야 이거 피워라.’ ‘고맙다’하고 피우는 거야.


할아버지 일한 돈은 저축貯蓄한다고 그러던가요?


그 사람들이 저축하는가? 우리들이 저축하는 거지. 그 사람들이 저축하라고 일러 주간? 우리들이 하고 싶어서 하고. 안할 사람은 집으로 부쳐라.


할아버지는 집으로 부쳐 줬어요?


부쳐 줬지. 담배 끊고부터. 편지便紙가 왔어. 편지도 왔다 갔다 했지.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으셨겠어요?


할머니는 몇 살 때 시집 오셨어요? 17살 먹었을 때.


할머니가 보고 싶으실 때 뭐하셨어요?


뭐하긴. 일 밖에 더 했지 뭐. 술도 소주나 담배 피웠지.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여기 술 먹고 담배 피면 난리잖아.


공장에 폭격도 있었어요?


아이! 폭격. 비행기가 달락말락 했어. 폭격 왜 안 해? 드문드문 했지. 미군美軍들도 왔다 갔다 했어. 달락말락 폭격한다고. 굴(방공호)에 들어가면 덜 죽어. 그래가지고 폭격 맞아 죽는데 뭘.


어디로 숨었어요?


굴로. 그렇지. 들어가다 죽는 사람도 있는데? 폭격해가지고.


들어가다가 죽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폭격 맞아서. 발(足) 저리 날라 가서 죽는 사람도 있고.


죽는 사람들은 조선 사람이에요? 일본 사람이에요?


일본인도 있고. 조선 사람도 많이 죽었지.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해요?


그 사람들 전부 화장火葬해서 재(가루) 보냈지. 뿌리고. 그러지.


조선 사람은요?


조선 사람은 모르지. 조선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있고. (*재를) 여기 뿌리는 사람은 그냥 뿌리고 그러지. 죽으면 바다로 뿌려.


조선으로 안 보내고요?


보내는 사람도 있지. 보내는 사람도 있고. 안 보내고 그냥 뿌리고 마는겨.


거기서 탈출脫出한 사람도 있었어요?


도망逃亡은 못 갔죠. 붙잡히면 다 죽어. 무서워서 도망도 못해. 그럼. 붙잡히면 다 죽어.


미쓰비시 공장이 바닷가 옆이에요?


그렇지. 그럼.


나가사키 시내市內에 나가보셨어요?


안 나가봤지. 그 근처에 산에 갔다고 말씀드리잖아요. 시내에 나가서 다닐 수가 있나.


공장 들어갈 때 출퇴근카드 찍고 그랬어요?


카드 있나? 없어요.


그럼 할아버지가 공장에 왔는지 안 왔는지 어떻게 알아요?


거기 있는 사람한테 나가면 나간다고 이야기 하고 나가는데. 일하면 거기 안 들어 왔는지 들어왔는지 기재記載하는 사람도 있어.


적어두는 것이 있었나 봐요?


그렇지. 나 안나왔나 나왔나 기재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하도 오래 돼서 가막가막 해(기억이 잘 안나). 지금. 내가 팔십 다섯인데. 지금 말씀드리는 건데 오락가락 혀. 하도 오래돼서. 그때 23살이면 지금 얼마야? 지금.


공장에서 수첩手帖같은 것 받으셨어요?


수첩 있어도 그런 게 있나? 지금. 그때 호주머니에 넣고 가다 잊어버렸지. 받긴 받았지.


그 공장에서 몇 년 계셨어요?


몇 년? 한 3년 있다가 왔지. 해방되고 나왔지. 내가 여기 왜 왔나. 하는 수없이 그놈들이 보내서 내가 왔지. 어떻게 해서 왔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니까. 허리는 아프지.


해방된 건 어떻게 아셨어요?


해방 됐다는 거, 공장에서 알았지. 일본 천황天皇이 손들었다는 거를, 방송放送까지 나와서.


방송에 나왔어요?


그럼. 방송까지 틀어줘서 알았지.


해방되고 나서는 일 안하셨어요?


안했지. 그냥 해방 돼서 내가 왔다니까요.


누가 보내줬어요?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자기 권한權限으로. 그럼. 그렇지. 가는 거지 뭐.


해방되고 밥은 줬어요?


밥은 먹었지. 우리도 사람인데 지들은 밥 먹고 우리는 밥 안주나? 아무리 고약하더라도. 한 번씩 거기서 싸우는 게 그거야. 밥 굶기나. 그놈의 새끼들이.


해방되고 조선에 어떻게 나오셨어요?


해방 되고 그리 나갔지 뭐. 배타고 나왔지. 그 연락선. 야미배(밀선. 闇舟) 탔지. 야미배. 그때 돈으로 200원이여. 200원 주고. 200원 큰돈이었어. 100원짜리 구경도 못 했어. 내가.


할아버지가 돈이 조금 있으셨네요?


있었지.


공장에서 나가라고 돈을 주던가요?


나가라고 주나?


그러면 모아놓은 돈이었어요?


그럼. 우리가 긁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야미배 타고.


집에 오실 때 돈을 좀 가져오셨어요?


돈은 뭔 돈이여? 몸땡이만 살아 돌아오지. 여기다 돈 좀 보내. 붙여 주고. 입으라고 뭐 써서 붙여주고. 내가 소포로 보내 주기도 하고. 거기서도 보내고 그랬지.


공장에서 작업복作業服은 줬어요?


옷이야 주지. 떨어지면 우리 옷 없다고 달라고 하면 주고. 떨어지면 누가 꼬매 입나? 그래가지고 주는 거야. 작업복 입고서 돌아다니는 거지. 옷 살 돈이 있나. 몇 푼 되도 그게. 신발은 그 집가다
각주 )
지카타비(地下足袋)를 의미. 노동자용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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줘. 그때. 모자 그런 모자 쓰지. 떨어지면. 내가 사서 신고. 공장에서 달라고 해서 신고. 그랬지. 이랬어. 신발도.
석탄박물관에 보관중인 지카타비. 2차대전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 나올 때 그 작업복 입고 나오셨어요?


작업복 입고 나왔지. 뭐 돈 있나? 신사복 사 입나?


귀국歸國하실 때는 어디로 오셨어요?


부산으로 왔지. 엄청히도(엄청나게) 사람들 많았었지.


같이 갔던 동네 분들도 같이 돌아오셨어요?


같이 온 사람도 있고. 나중에 온 사람도 있고. 우리가 먼저 왔어요.


나눠서 왔군요?


그렇지. 한꺼번에 다 보내간? 한꺼번에 싹 보내질 않았어. ‘니네들 가거라. 일본에서 가거라.’ 이래서 쫓아보냈지요.


부산에서 고향故鄕은 어떻게 오셨어요?


부산에서 차타고 와서 홍성 왔는데 버스타고 이렇게 왔지. 부산에 오니까. 홍성까지 전부 안 오고. 조선 사람들도. ‘난 아들 보고 싶어서 나왔어.’ ‘고마운 일이여. 갑시다. 가요.’ ‘내일 모레나 갑니다.’ ‘그럴까. 그럴까.’
각주 )
부산역에서 헤어지던 상황을 표현한 구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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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홍성으로 오셨네요?


그렇지. 홍성에서 버스 타고. 서산까지 왔지.


홍성까지는요?


홍성까지? 홍성까지 뭐. 열차列車타고 왔지.


가족들이 마중을 나왔던가요?


서산으로 나온다고 그랬는데. 동네 사람들이. ‘형이 죽었어.’ 그래. 그 사람이. 그런데 다 죽었어. 나하고 같이 간 사람도 죽고. 저의 형도 5형제 다 죽었어. (*그 사람은) 서산에 어머니 아버지 다 사는데 나를 만났어. ‘야! 아무개 온다. 우리 동생은 안 오는데 틀렸어.’ 나하고 같이 갔는데. 그럼 그럴 거여.
각주 )
홍성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묻는 장면을 표현한 구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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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계시던 공장에 큰 배도 있었어요?


배 만드는 것만 봤지. 바다에 뜨는 거는 못 봤지.


공장에서 만드는 것만 보셨군요?


그렇지. 가서 본 사람도 있지만. 밤에 가서 보이지도 않았지.


일본에서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눈을 잘 못 봐. 떴다 감았다. 오른쪽.


어떻게 다치신 거예요?


그때 폭격 떨어져서. 허리도 그러고. 안보이지. 캄캄해.


시력검사視力檢査를 해보셨어요?


해봐도 소용없어. 보이질 않어.


허리가 아프신데 농사는 지으셨네요?


그때 아버지가 지었지.


눈과 허리는 치료治療받으셨어요?


받기야 받았지. 병원에서도 받고.


그 공장에서도 받으셨어요?


공장에서 받았지. 받기야. 병원에 다니면서. 눈도 받았지. 받기야. 일본에서 약 줘서 약 먹고. 고치려다 여기도 못 고쳤어. 그때.


병원病院은 어디에 있었어요?


병원은 나가사키에 있지. 병원은 혼자 갔지. 일러줘서 혼자 갔지.


병원비는 누가 줘요?


돈을 누가 주간디? 공장에서 누가 주간. 안 줘. 나중에 조금 줬지.


그럼 할아버지 돈으로 병원을 다니신 거네요?


그럼. 처음에만 조금 주지.


눈 치료할 때 장애진단障碍診斷같은 거 받으신 거 없으세요?


없어. 공장에서도 그냥 집에 가라고.


공장에서 심부름 하는 사람이 50명이 있었잖아요?


네. 50명씩 조組짜서 일했어.


50명 중에 조선 사람이 몇 명이었어요?


50명이면 반반 있지. 통역 하는 사람이 조선 사람이 있지.


통역하던 조선 사람 이름 생각나세요?


잘 모르는데요. 적어서 있으면 모를까. 맨날 생각을 하나? 적기를 했나. 그 사람 이름을 어떻게 알어? 다 잊어버렸지.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친 사람들도 있었어요?


혹간 있었지. 다리 다치고 어깨도 다치고 팔 다친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지.


다친 사람들은 병원에 가나요?


병원에 가는 사람들도 있고. 지가 재주 있으면 지가 고치는 사람도 있고. 돈 준다고 하지만 돈 누가 주간?


회사에서 병원에 안 보내줘요?


가라고 하지. 가라고 하기야.


할아버지 눈 다쳐서 병원 다닐 때 며칠 정도 다니셨어요?


한 달포 다니다 말았지. 한 달 정도.


허리는요?


허리도 했지. 두 간데 봤지. 한 군데만 보는 게 아니라. 돈 달라고 해서 돈 있는 거 다 없어졌어. 거기 가서.


일을 하면서 병원엔 낮에 가나요?


저녁에 갔지. 저녁에 일찍 가야하지. 늦게 가면 되나. 문 닫아 버리고. 회사에 얘기 하지. 내가. 그럼 조금 일찍 보내주지.


병원에 갈 때는 무슨 허가증을 받고 나가나요?


말만 하면 가는 거지.


처음에 구장이 징용 가야 된다고 할 때 징용장徵用狀을 주던가요?


말로 하고. 그 구장이. 구장이 요만한 책冊가지고 다녀. 며칟날 어디로 모이라고. 거기에 적어 놔.


구장 이름이 뭐예요?


죽었어. 그 사람도. 김○○. 그냥 살았지. 세상 떴어. 그 분도.


구장은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얼마나 더 많아요?


더 먹었지. 나보다도, 나보다도 네댓 살 더 먹었지. 옛날에 죽었어요. 워낙 원성怨聲이 높아서. 원성이 크니까.
면담·검독 _ 고봉훈 조사관
1차 녹취문 작성 _ 조민정
편집 _ 윤문 _ 주석 _ 정혜경 과장, 이병희·권미현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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