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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명군(明軍)의 철군 때 화기(火器) 운반 문제와 운송 인력 동원 문제의 어려움에 대한 조선국왕의 회자(回咨)

40. 回咨
  • 발신자
    조선국왕
  • 발송일
    1594년 3월 18일(음)(만력 22년 3월 18일)
발신: 조선국왕
사유: 보내온 자문을 받으니, 「성지를 준행하여 부신(部臣)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맡겨 왜환을 경략하게 하십시오. 운운」 했습니다.
 
[조선국왕] 이를 받고 의정부로 문서를 보냈고 다음의 장계를 받았습니다.
[의정부] 군기시에 즉시 명하여 자문에서 언급한 각각의 화기에 대해서 이전과 같이 간수하고 있는지 다시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덧붙여 개성부유수노직(盧稷)과 평안도관찰사 이원익(李元翼)에게 문서를 보내어 적당한 인역을 차임해 각처에 남겨진 화기들을 명백히 조사해서 하나하나 격문으로 회보토록 했습니다. 따라서 신들이 생각하기에는 이전에 해당 화기들이 도착했을 때 각각의 화기에 대해 (명에서) 위관(委官)을 보냈는데 많은 경우 40여 원(員)에 이르렀으나 더러는 먼저 도착하고 더러는 나중에 도착하고 도착하지 않기도 하여 날짜가 같지 않았으며, 더러는 많이 가져오기도 하고 더러는 적게 가져오기도 해서 교부한 화기의 수량과 품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기에 아마도 (조선에서) 넘겨주고 (명이) 다시 가져갈 때 증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땅히 화기를 관리하는 곳들로부터 회답이 도착하면 조사하여 특별한 조치를 의논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생각해 보건대, 본국은 도성에서 개성(開城)까지 그리고 개성에서 평양(平壤)까지 연로의 주현 역참이 모두 공허하게 비어 풀만 무성하니 눈을 부릅떠 보아도 실로 번갈아 잇대어 운반할 수 있는 인원과 우마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사해 보건대, 대병이 철수했더라도 유총병(劉總兵)의 오천 군마가 남원의 주둔지에서 머무르고 또한 흉적이 더욱 불같은 기세로 군사를 훈련시키고 배를 건조하여 군사를 일으킬 계획이 현저합니다. 마땅히 도사(요동도사)에 회자하셔서 전항의 각양 화기를 도성 등지에 그대로 남겨 두어 적을 방어하는 데 사용하도록 요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선국왕] 갖추어 온 장계를 받아 살펴보니, 앞서 올해 2월 23일 총독군문의 패문을 받았는데 대략 다음의 내용입니다.
[고양겸] 원래 조선에서 보관 중인 일체의 화기와 기계는 그대로 조선에 남겨 방어용으로 쓰도록 하고 요양(遼陽)까지 운반할 필요가 없습니다. 별도로 공문에 따라 시행하십시오.
[조선국왕] 이를 받고 시행하는 동안 지금 위의 자문을 받아 살펴보니, 귀사의 자문이 발송된 날짜는 2월 초8일이고 총독의 패문이 파발마를 통해서 신속하게 당직에게 송부한 날짜는 2월 23일입니다. 순차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마도 경략은 대병(명군)이 철군할 때 (화기를) 되돌려 운반하기를 독려했지만 총독은 흉적이 해변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파발마를 보내어 남겨 두라고 한 것 같습니다. 현재 (일본군이 다시 침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기에 아마도 방비를 서두르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니 어찌 공문을 기다리지 않고 가벼이 송환을 논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지방은 잔파됐고 백성들은 거의 다 죽었으니 비록 운송을 위해 더욱 동원하고자 해도 쉽게 운반을 완료할 것 같지 않습니다. 해당 부서 등에 다시 문서를 보내 조사해서 일일이 격문으로 회보할 것을 기다린 후에 해당 관할 배신으로 하여금 현재의 수목에 의거해서 추가적으로 삼가 정리해 살펴보도록 하는 것 외에도, 이에 마땅히 회자하니 청컨대 잘 살펴 전보하시길 바랍니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요동도지휘사사에게 보냅니다.
 
만력 22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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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明軍)의 철군 때 화기(火器) 운반 문제와 운송 인력 동원 문제의 어려움에 대한 조선국왕의 회자(回咨) 자료번호 : sdmg.k_0002_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