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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왜적의 항표(降表)도 믿을 수 없으므로 조선의 위박한 사정을 통찰하여 속히 구제를 요청하는 조선국왕의 자문(咨文)

1. 緊急倭情咨
  • 발신자
    조선국왕
  • 발송일
    1594년 2월 1일(음)(만력 22년 2월 초1일)
발신: 조선국왕
사유: 긴급한 왜정(倭情)에 관한 일입니다.
 
[조선국왕] 지난 정월 29일에 당직(當職)은 근일의 변보를 전차배신(專差陪臣) 이정형(李廷馨)으로 하여금 서둘러 가서 고급(告急)하도록 했습니다. 이어서 정월 30일에 제도도순찰사(諸道都巡察使) 권율(權慄), 공조판서(工曹判書) 김명원(金命元), 부총부(副總府) 유정(劉綎)주 001
각주 001)
유정(劉綎, 1558~1619)은 1593년 2월 평양성 수복 이후 5,500여 명의 남병(南兵)을 이끌고 조선으로 파견됐다. 약 1년 반 만에 군대를 거두어 철병했고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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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후배신(伺候陪臣) 김찬(金瓚), 호조참의 정광적(鄭光績)이 함께 치계했습니다.
[권율 등] 본월 초7일에 참장(參將) 심(유경)주 002
각주 002)
심유경(沈惟敬, ?~1597)이다. 『宣祖實錄』 卷48, 宣祖 27年 2月 丁巳(8日), “兵曹判書李德馨 臣往見沈參將惟敬 沈往戚將處”(1594년 2월 병조판서 이덕형이 심유경을 방문); 『宣祖實錄』 卷49, 宣祖 27年 3月 丙申(18日), “上命承文院 以近日賊情 書示周遊擊弘謀 其略曰 …… 有天將沈參將 出來平壤 向倭將平行長懇說 生于一天之下 如是交爭 甚是不宜 多賂銀兩請和 以此退兵京城 參將又請成故捲兵 今者參將 又入行長營裏”(1594년 3월 선조가 유격 주홍모에게 전달한 정세 중 심유경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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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가정(家丁)주 003
각주 003)
명 장수 휘하의 병사 가운데 지휘관의 사병(私兵)으로 기능한 사람들을 이른다. ‘친병(親兵)’이라고도 불렸으며, 많은 경우 수천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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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왜적 6명을 대동하고 적중으로부터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총병[劉綎]이 불러 “무슨 할 이야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왜적이 “군량을 실은 선박 40여 척이 표풍(漂風)으로 전라도 지방에 닿게 되어 나아가 그곳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총병이 다시 “전일 유키나가(行長)주 004
각주 004)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6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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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이 때문에 서신을 보내와서 전라도·경상도 연해지방에 알려 찾아가보도록 했으나 이런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대들의 선박이 과연 표류했다면 우리가 마땅히 돌려주라 요구할 것이나 지금 진실로 이런 일이 없습니다. 어느 쪽으로 나아가려 했는지 모르겠으나 유키나가의 저번 서신에는 15척이라 했다가 다시 보낸 서신에는 16척이라 하고 지금 또다시 40척이라 하니, 그대들의 말이 바뀌면서 정확하지 않습니다. 천조(天朝)에서 이미 봉공(封貢)을 허락하였으니 이러한 작은 일로 찾아와 다투지 마십시오. 내가 헤아려 관원 수백 명을 차견하여 전라도에 다녀오도록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적이 “노야(老爺)가 사람을 보내 찾으려 한다면 우리도 마땅히 함께 따라다녀 보고자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총병이 다시 “전라도 사람들은 그대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면 아무리 선박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깊이 숨길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적이 “네네.”라고 했습니다. 총병이 또한 “그대 나라의 사은표문(謝恩表文)은 언제 도착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왜적이 “관백이 국도(國都)로 돌아가는 중이며 길이 다소 멀기에 본월 20일 후주 005
각주 005)
원문의 ‘念後’는 20일 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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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 도착할 것으로 헤아려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총병은 전항(前項)의 왜적들을 초9일에 본처(本處)로 돌려보낸 듯합니다. 이에 (이 일을) 염두에 두어 통사 유의빈(柳依檳)주 006
각주 006)
이호민의 『오봉집(五峯集)』에서는 ‘柳依 ’으로 표기되어 있고(李好閔, 『五峯集』 卷12, 奏文, 陳奏奏文甲午二月), 『선조실록(宣祖實錄)』에서는 ‘柳依擯’으로 표기되었다(『宣祖實錄』 卷48, 宣祖 27年 2月 乙卯(6日); 『宣祖實錄』 卷54, 宣祖 27年 8月 辛酉(16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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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전라도의 방수를 제때 신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키나가(行長)가 처음에는 표류한 배가 15척이라고 했다가 다시 16척이라고 했고 지금 다시 40척이라고 하면서 사람을 보내 찾을 것을 핑계로 삼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전라도의 형세와 위치를 상세히 알아 멋대로 흉계를 펴려는 것입니다. 그대 나라는 병마를 조련하고 군량을 비축하고, 또한 보유한 미곡을 험고한 성지(城池)로 옮겨 저장하여 후회를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조선국왕] 갖추어 온 장계를 받고 당직이 살펴보건대, 저 적은 흉악하고 교활하여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작년에 심 참장이 부산(釜山)을 막 떠나자마자 곧바로 진주(晉州)를 함락하여 크게 도륙을 저질렀으니, 그 화의를 가장하여 방비를 늦추고 이면에서 흉역을 꾸미는 것은 곧 늘 그러한 모습입니다. 지금 심 참장이 또한 적중에 들어가 가령 항표(降表)를 받아 돌아온다고 해도 족히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당직은 늘 항표가 이르자마자 적이 또한 불우(不虞)의 때를 타고 무리를 모아 차례대로 침략할 것이라 염려해 왔는데, 이내 각 배신의 치보를 받았으니 저 적이 으르렁거리며 우리를 삼키려는 정상은 이미 환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길게 달려 북상하면 유수(留守) 중인 천병(川兵)주 007
각주 007)
중국 사천(泗川)의 군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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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군사도 또한 (적을) 차단하여 승부를 걸기가 어렵게 될 것이니 소방은 어디에 의지하여 난리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번거롭겠지만 귀부(貴部, 총독병부), 귀원(貴院, 순무요동도찰원), 귀원(貴院, 순안요동도찰원), 귀사(貴司, 요동도지휘사사)에서는 위박한 사정을 통찰하시어 실상에 근거하여 제주(題奏)하고 요동(아문)에서는 정문(呈文)을 전달하여 속히 구제를 도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마땅히 이자(移咨)하니 청컨대 검토해 주십시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순무요동도찰원·순안요동도찰원·총독병부·요동도지휘사사에게 보냅니다.
 
만력 22년 2월 초1일.

  • 각주 001)
    유정(劉綎, 1558~1619)은 1593년 2월 평양성 수복 이후 5,500여 명의 남병(南兵)을 이끌고 조선으로 파견됐다. 약 1년 반 만에 군대를 거두어 철병했고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참전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심유경(沈惟敬, ?~1597)이다. 『宣祖實錄』 卷48, 宣祖 27年 2月 丁巳(8日), “兵曹判書李德馨 臣往見沈參將惟敬 沈往戚將處”(1594년 2월 병조판서 이덕형이 심유경을 방문); 『宣祖實錄』 卷49, 宣祖 27年 3月 丙申(18日), “上命承文院 以近日賊情 書示周遊擊弘謀 其略曰 …… 有天將沈參將 出來平壤 向倭將平行長懇說 生于一天之下 如是交爭 甚是不宜 多賂銀兩請和 以此退兵京城 參將又請成故捲兵 今者參將 又入行長營裏”(1594년 3월 선조가 유격 주홍모에게 전달한 정세 중 심유경의 활동). 바로가기
  • 각주 003)
    명 장수 휘하의 병사 가운데 지휘관의 사병(私兵)으로 기능한 사람들을 이른다. ‘친병(親兵)’이라고도 불렸으며, 많은 경우 수천 명에 달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600)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원문의 ‘念後’는 20일 후를 말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이호민의 『오봉집(五峯集)』에서는 ‘柳依 ’으로 표기되어 있고(李好閔, 『五峯集』 卷12, 奏文, 陳奏奏文甲午二月), 『선조실록(宣祖實錄)』에서는 ‘柳依擯’으로 표기되었다(『宣祖實錄』 卷48, 宣祖 27年 2月 乙卯(6日); 『宣祖實錄』 卷54, 宣祖 27年 8月 辛酉(16日) 등). 바로가기
  • 각주 007)
    중국 사천(泗川)의 군사를 말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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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의 항표(降表)도 믿을 수 없으므로 조선의 위박한 사정을 통찰하여 속히 구제를 요청하는 조선국왕의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2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