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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남회·조민이 무릉도에서 돌아와 포획한 남녀 66명과 각종 산물을 바치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438년 7월 15일(음)
  • 출전
사료해설
호군(護軍) 남회(南薈)와 사직(司直) 조민(曹敏)이 무릉도(茂陵島; 울릉도)에서 남녀 66명을 쇄환하고, 사철(沙鐵)·석종유(石鍾乳)·생전복(生鮑)·큰 대나무 등을 바쳤다. 그들은 출발한지 1박 2일 만에 울릉도에 도착하였으며, 섬은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있고, 잡목과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서쪽 한 곳에 선박이 정박할 만하였고, 동서는 하루의 노정(路程)이고 남북은 하루 반의 노정이었다고 울릉도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원문
○護軍南薈、司直曹敏回自茂陵島復命, 進所捕男婦共六十六及産出沙鐵石鍾乳生鮑大竹等物, 仍啓曰: “發船一日一夜乃至。 日未明, 掩襲人家, 無有拒者, 皆本國人也。 自言聞此地沃饒, 年前春潛逃而來。 其島四面皆石, 雜木與竹成林, 西面一處, 可泊舟楫。 東西一日程, 南北一日半程。”
번역문
호군(護軍) 남회(南薈)와 사직(司直) 조민(曹敏)이 무릉도(茂陵島)로부터 돌아와 복명하고, 포획한 남녀 모두 66명과 거기서 산출되는 사철(沙鐵)·석종유(石鍾乳)·생포(生鮑)·대죽(大竹) 등의 산물을 바치고, 인하여 아뢰기를,
“발선(發船)한 지 하루 낮과 하루 밤 만에 비로소 도착하여 날이 밝기 전에 인가를 엄습(掩襲)하온즉, 항거하는 자가 없었고, 모두가 본군 사람이였으며, 스스로 말하기를, ‘이곳 토지가 비옥 풍요하다는 말을 듣고 몇 년 전 봄에 몰래 도망해 왔다. ’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섬은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있고, 잡목과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서쪽 한 곳에 선박이 정박할 만하였고, 동서는 하루의 노정(路程)이고 남북은 하루 반의 노정이었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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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회·조민이 무릉도에서 돌아와 포획한 남녀 66명과 각종 산물을 바치다 자료번호 : sd.d_0149_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