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륭고성보
興隆古城堡
규모
둘레: 352m
입지
서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는 왕청(汪淸)에서 연길(延吉)에 이르는 도로가 산자락을 따라 굽이돌고, 산을 경계로 북쪽은 중안향(仲安鄕), 남쪽은 백초구향(百草沟鄕)이다.
유적개관
고성보의 성벽은 산꼭대기를 한 바퀴 감싸고 있고, 토석혼축의 타원형이다. 성벽의 기단부 너비는 대략 5m, 꼭대기의 너비는 대략 1m이며 남아있는 높이는 0.5-1m로 일정하지 않으나, 전체 둘레 길이는 352m이다. 성보 안의 산꼭대기와 기슭에는 몇 곳의 건축유지 흔적이 있다.
유물개관
수습된 유물은 陶器口沿이 4점, 무늬가 있는 도기편이 1점 있다. 口沿은 모두 물레로만든 泥質灰陶로, 卷沿이며, 口沿脣部에 음각된 선 무늬가 있어 重脣형태로 생각된다.도기편은 泥質灰陶로 3줄의 물결무늬 장식이 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백초구진(百草溝鎭) 흥륭촌(興隆村)에서 동남쪽으로 1.5㎞ 지점의 산꼭대기에 있다. 서쪽으로 500m 지점에는 왕청(汪淸)에서 연길(延吉)에 이르는 도로가 산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고, 산을 경계로 북쪽은 중안촌(仲安村), 남쪽은 백초구진이다.
고성보의 성벽은 산꼭대기를 한 바퀴 감싸고 있고,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하였으며 타원형이다. 성벽의 기단부는 대략 5m, 꼭대기는 대략 1m이며 남아 있는 높이는 0.5∼1m로 일정하지 않으나, 전체 둘레는 352m이다. 성보 안의 산꼭대기와 기슭에는 몇 곳의 건축유적 흔적이 있다. 고성보는 지세가 높고 넓은 산꼭대기에 축조되어 있어서, 남쪽을 바라보면 백초구(百草溝) 평원과 사방의 산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오고, 북쪽을 바라보면 중안(仲安)·서외자(西崴子)의 평천산맥(平川山脈)이 모두 눈 아래에 들어올 정도로 입지가 매우 좋은 곳이다. 흥륭(興隆) 고성보는 파수대라고 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그 특징과 지리적인 입지로 보면 봉화대이다. 고성보 안에서 수집된 토기 아가리와 무늬 있는 토기조각으로 보아 발해 시기의 유적이라고 생각된다.
수습된 유물은 토기 아가리가 4점, 무늬가 있는 토기조각이 1점 있다. 아가리는 모두 물레로만든 회색 뻘질토기로 말린 모양이며, 아가리 입술 부분에 음각된 선 무늬가 있어 겹입술 형태로 생각된다. 토기조각은 회색 뻘질토기로 3줄의 물결무늬 장식이 있다.
고성보의 성벽은 산꼭대기를 한 바퀴 감싸고 있고,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하였으며 타원형이다. 성벽의 기단부는 대략 5m, 꼭대기는 대략 1m이며 남아 있는 높이는 0.5∼1m로 일정하지 않으나, 전체 둘레는 352m이다. 성보 안의 산꼭대기와 기슭에는 몇 곳의 건축유적 흔적이 있다. 고성보는 지세가 높고 넓은 산꼭대기에 축조되어 있어서, 남쪽을 바라보면 백초구(百草溝) 평원과 사방의 산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오고, 북쪽을 바라보면 중안(仲安)·서외자(西崴子)의 평천산맥(平川山脈)이 모두 눈 아래에 들어올 정도로 입지가 매우 좋은 곳이다. 흥륭(興隆) 고성보는 파수대라고 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그 특징과 지리적인 입지로 보면 봉화대이다. 고성보 안에서 수집된 토기 아가리와 무늬 있는 토기조각으로 보아 발해 시기의 유적이라고 생각된다.
수습된 유물은 토기 아가리가 4점, 무늬가 있는 토기조각이 1점 있다. 아가리는 모두 물레로만든 회색 뻘질토기로 말린 모양이며, 아가리 입술 부분에 음각된 선 무늬가 있어 겹입술 형태로 생각된다. 토기조각은 회색 뻘질토기로 3줄의 물결무늬 장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