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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노변장관애

老邊墻關隘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양수향 해관촌(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凉水鄕 海關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170m
입지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서 서남쪽으로 55km 떨어진 양수향 해관촌 북쪽 만구(灣溝) 골짜기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는 압록강이 흐른다. 유적 동쪽 2km 거리에는 집안-환인 도로가 양수향 소재지를 통과하며, 남쪽 300m 거리에 해관8대(隊)가 있다. 한편, 유적의 서쪽 13km 떨어진 곳에는 칠개정자 관애가 있다.
유적개관
1982년 조사 당시 총 길이 170m, 높이 1-2m, 기저부 폭 8m가량의 토석혼축 차단벽으로, 동쪽으로는 산 절벽이, 서쪽으로는 개울이 접해있다. 주변에 고분군이 존재한다.
참고문헌
「集安縣文物志」
해설
집안시에서 서남쪽 55km 떨어져 있는 해관촌 북쪽 통천령(通天嶺)의 동쪽 골짜기에 위치한다. 남쪽 300m 거리에 해관 8대(隊)가 있고, 4km 거리에는 압록강이 있다. 집안-환인 도로가 동쪽 2km 거리에 위치한 양수향을 통과하고 있다. 1932년 간행된 지리지에 따르면, 상류부터 순조롭게 흐르던 압록강은 태평향(太平鄕) 강구촌(江口村)을 지나고부터 양안에 험준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나고, 물살이 거세지며 물결도 크게 일기 시작한다고 한다. 강물이 협곡 사이를 좌충우돌하면서 굽이쳐 흐르기 때문에 심한 소용돌이, 급한 물굽이, 암초 등을 만들다가, 유림하(楡林河)와 양수천자하(凉水泉子河) 하구부터 하류 쪽으로 강의 수면이 점차 넓어지고 강물의 흐름도 완만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들은 대부분 외차구하(外岔溝河)나 양수천자하 일대에 정박한 다음 육로를 이용하여 집안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노변장관애는 바로 이러한 상륙로를 봉쇄하기에 적합한 전략적 유충지로서 압록강을 거슬러 국내성으로 나아가는 수상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었던 곳이다.
골짜기는 길이 3km 정도로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데, 양안은 가파른 절벽이다. 서쪽 산 기슭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골짜기 가운데로 흐르다가 해관촌 부근에서 양수천자하에 유입되어 남류하여 압록강으로 흘러든다.
관애(關隘)에 대해서는 1982년과 1983년 두 차례에 걸쳐서 집안현문물보관소에서 조사하였다.
관애는 골짜기 입구에서 북쪽으로 200m 거리에 있다. 성벽은 시냇가 동쪽 언덕 대지와 산기슭에 다듬은 산돌로 축조되어 있다. 심하게 파괴되어 야트막한 돌담을 연상케 한다.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8m, 상부 너비는 1~2m이고, 현재 높이는 1~2m이다. 시냇가 동쪽 언덕에서 대지까지 약 40m는 수평으로 축조하였고, 산기슭 130m 정도는 자연지세를 따라 쌓았으며 산중턱 수직 암벽과 만나는 곳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벽 전체 길이는 보래 200m 전후로 추정된다. 관애를 축조하는데 사용된 돌은 규격이 거의 비슷하다. 조금 가공한 거친 산돌로 외벽을 축조하였는데, 성돌의 크기는 길이 30cm, 두께 10~20cm이고, 벽면을 가지런하게 쌓지는 않았다. 내부는 잔돌과 자갈로 메우고 진흙을 섞었는데, 층층이 다져 쌓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노변장관애 남쪽 300m 거리에 고구려 고분군이 있었는데, 1983년 조사 당시에는 3기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고구려 적석묘군의 존재에 비추어, 이 유적은 고구려의 군사 시설로 추정되며 이곳에서 서쪽 13km 지점에 위치하는 칠개정자관애(七個頂子關隘)는 이 유적과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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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변장관애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