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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환인 풍가보자 유적

桓仁 馮家堡子 遺蹟
  • 저필자
    이후석(숭실대학교)
  • 작성자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 날짜
    2006~2007
  • 시대
    전한대
  • 위치
  • 원소장처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화래진 풍가보자촌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유적개관
* 삼도하(三道河)의 남쪽으로 약 5㎞ 정도 떨어진 풍가보자촌에서 마을 하천이 합수되는 지점 부근의 하상 위에 위치함.
* 2006~2007년 요령성문물고고연구소에 의해 조사되었고, 3개 구역으로 분산되어 있는 다수의 분묘들이 확인됨.
* Ⅰ구역은 마을 동쪽의 밭으로 옛 하상 위에 10기가 분포하며, 이 가운데 3기(M2, M7~M8)가 조사되었음.
* Ⅱ구역은 마을 서쪽의 논으로 역시 옛 하상 위에 15기가 분포하며, 이 가운데 10기(M1, M3~M6, M9~M13)가 조사됨.
* Ⅲ구역은 마을 마을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산고개로 여러 기가 분포하며, 1기(M14)가 조사되었음.
* 이외에도 10여기의 분묘가 마을에 산재되어 확인됨. 분묘 중에 일부는 석곽적석묘(M4, M14, M2) 또는 석실적석총(M1, M9)에 속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이 대석개적석묘 또는 적석식 대석개묘라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서한 초기로 편년되며, 고구려 초기 적석묘의 시원형으로 추정되고 있음.
유구개관
* 약 50기의 무덤이 확인됨.
* 분묘 중에 일부는 석곽적석묘(M4, M14, M2) 또는 석실적석총(M1, M9)에 속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이 대석개적석묘 또는 적석식 대석개묘로 추정됨.
유물개관
* 토기, 석기, 청동기, 철기를 비롯한 각종 유물이 출토됨.
참고문헌
李新全, 「五女山 山城과 주변의 고구려 초기 유적」, 『고구려문화의 역사적 의의』, 2005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桓仁 馮家堡子」, 『遼海記憶-遼寧考古六十年重要發現』, 2014
해설
유적은 동류하여 혼강(渾江)으로 유입되는 삼도하(三道河)가 화래진 소재지를 지나가는 구간에서 남쪽으로 약 5㎞ 정도 떨어진 풍가보자촌의 구릉 평탄면과 천변 대지에 위치한다. 2006~2007년 요령성문물고고연구소에 의해 조사되었고, 3개 구역으로 분산되어 있는 다수의 무덤들이 확인되었다.
Ⅰ구역은 마을 동쪽의 밭으로 옛 하상 위에 10기가 분포하며, 이 가운데 3기(2호묘, 7호묘, 8호묘)가 조사되었다. Ⅱ구역은 마을 서쪽의 논으로 역시 옛 하상 위에 15기가 분포하며, 이 가운데 10기(1호묘, 3~6호묘, 9~13호묘)가 조사되었다. Ⅲ구역은 마을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산고개로 여러 기가 분포하며, 1기(14호묘)가 조사되었다. 이외에도 무덤 10여기가 마을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다.
무덤 중에 2호묘, 4호묘, 14호묘는 돌덧널돌무지무덤[석곽적석총(石槨積石塚)]이고, 1호묘와 9호묘는 돌방돌무지무덤[석실적석총(石室積石塚)에 속하는 것이지만, 3호묘, 5호묘, 7호묘, 8호묘 등의 대부분은 적석식 대개석묘(大蓋石墓)라 할 수 있는 묘제이다. 적석식 대개석묘는 중국학계에서 대개석적석묘(大蓋石積石墓) 또는 적석석광석개묘(積石石壙石蓋墓)라 부르기도 하며, 국내학계의 경우에는 고구려 초기 돌무지무덤의 시원형으로 보는 견해들도 있다. 덧띠토기바리[점토대토기발(粘土帶土器鉢), 굽바리[대부발(臺附鉢)], 긴목항아리[장경호(長頸壺)] 등이 출토되었다.
적석식 대개석묘는 구릉 위의 평탄면과 천변 대지에 주로 입지하며, 기본적으로는 단인장(單人葬)에 화장묘(火葬墓)가 많다. 매장주체부가 크지 않아 묘곽 주축이 2.0~2.5m이며, 지상식에 가깝거나 완전 지상식인 묘곽 주변으로 전체 5~6m의 범위만큼 적석부가 마련되어 있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매장주체부가 얕은 반지하식이며, 적석부의 정형성이 떨어지는 것이 이른 형식이며, 매장주체부가 완전 지상식이면서 적석부가 방형으로 정형화된 것이 늦은 형식으로 추정된다. 풍가보자의 적석식 대개석묘는 대부분이 늦은 형식이다.
적석식 대개석묘의 연대는 출토된 덧띠토기바리가 신빈 용두산 대개석묘(2호묘) 출토품과 같은 기형이고, 이른 형식에 해당되는 무순 산룡촌 대개석묘(4호묘, 5호묘)가 전국 후기 또는 기원전 3세기대로 편년되는 점을 고려하면 전한 전기 또는 기원전 2세기대로 볼 수 있다. 고구려 초기 돌무지무덤의 발생 과정을 규명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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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 풍가보자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10_0040_006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