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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울산 중산동 취락 유적

  • 저필자
    최재도(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 날짜
    2002
  • 시대
    원삼국~삼국
  • 위치
  • 원소장처
    울산광역시 북구 중산동 656-1 일대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입지
2002년 발굴기관의 시굴조사가 이루어진 후 복토됨.
유적개관
집단거주지였던 곳으로 중산리 이화마을과 갓안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지역에 위치하며, 태화강 북쪽 지역을 대표하는 삼한후기∼삼국후기시대 취락유적으로 전국적으로 매우 희귀함. 주거지, 작업장, 방어시설 등이 확인되어 당시 취락의 구성, 범위, 배치 및 주변지역과의 교류, 변천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나, 현재 마을 사람들이 경작지로 사용하고 있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음.
참고문헌
문화재청
해설
울산광역시 북구 중산동 656-1 일대에 있는 원삼국~삼국시대의 취락유적으로 울산광역시기념물 제41호이다. 중산리 이화마을과 갓안마을이 있는 지역에 위치한다. 2002년 분포지역 중 이화중학교 설립을 위해 부지에 대한 울산발전연구원의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주거지, 작업장, 방어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며, 삼국시대 후기에는 인접한 이화초등학교 부지까지 취락범위가 확대되었다. 인접한 중산동 고분군(울산광역시기념물 제9호)을 축조한 이들과도 관련이 있는 유적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거주민들은 산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죽은 이들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였으며, 달천철장(울산광역시기념물 제40호)의 철로 제작한 철기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산동 취락유적은 사로국(斯盧國)에서 신라로 성장해 가는 시기에 신라와 연계성을 보이는 대규모 유적으로 당시 취락의 구조, 범위, 배치 및 주변지역과의 교류, 변천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2002년 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복토(覆土)되었는데, 전체 중산동 취락유적 1만7000여㎡ 가운데 1만㎡ 이상의 부지가 인근 주민들의 경작지로 활용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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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중산동 취락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10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