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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양구 공수리 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1987
  • 시대
    청동기~철기
  • 위치
  • 원소장처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공수리 770번지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입지
1987년 파로호 퇴수지역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며 1987년 강원대학교 발굴단에서 이 중 3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유적개관
이 유적은 서천가에 형성된 충적지대로 공수리 지석묘가 원래 위치했던 지역이 포함된다. 공수리 지석묘는 파로호의 수위변동에 따라 계속 훼손되어 왔으며,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양구선사박물관으로 이전·복원을 목적으로 이전에 조사되지 않은 7기의 지석묘와 발굴조사과정에서 발견된 2기의 지석묘를 포함하여 9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은 지석묘가 추가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주변 일대에 매몰된 지석묘의 하부구조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지형상 강변 충적대지로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강원도·강원대학교박물관, 「상무용리」, 1989
양구군·강원대학교박물관, 「양구 고인돌」, 1992
해설
파로호는 강원 영서지방의 북부지역인 화천군의 동편과 양구군의 서편이 마주하는 경계에 위치한다. 파로호는 북쪽에는 일산과 지주봉, 남으로는 병풍산, 사명산, 동으로는 대암산과 도술산, 서쪽으로는 백적산과 용화산 등의 해발 600m에서 1300m에 달하는 높은 산맥들로 둘러싸여 있다. 고인돌군은 파로호로 유입되는 서천가의 넓은 충적대지 위에 분포하고 있다.
양구 고인돌의 주변에는 구석기시대 이래 많은 유적, 유물이 분포하고 있다. 파로호 퇴수지역에서 1987년 조사된 양구읍 상무룡리 구석기 유적에서는 주먹도끼, 찌르개, 긁개, 찍개, 밀개 등 100여점의 구석기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양구읍 고대리를 비롯하여 하리, 고대리 새말, 주막거리, 공수리, 함춘리 등지에 40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파로호 퇴수지역 유적 조사 과정에서 1987년 강원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어 여러 지점에서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1987년강원대학교박물관과 경희대학교발굴조사단에 의해 5기가 발굴조사 되었다. 이후 양구군은 1942년 화천댐 건설로 인해 생긴 파로호로 인한 공수리・고대리 일대 고인돌군의 지속적인 훼손을 막고 이전・복원하여 야외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계획하였다. 1987~1989년에 걸친 발굴 조사결과 고인돌 13기와 함께 덮개돌 채석장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상석과 하부구조는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훼손과 파괴가 심하여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공수리 고인돌은 넓은 대지위에 강의 흐름을 따라 12기가 열을 지어 분포한다. 상석 아래 고임돌을 세워서 구축한 탁자식 고인돌과 매장주체부인 무덤방을 지하에 구축한 개석식 고인돌로 구분할 수 있다.
상석은 정교하게 다듬은 것과 괴석 모양을 대강 다듬은 것이 혼재되어 있으며 화강암, 편마암, 유문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143~448㎝, 폭 119~228㎝, 두께 43~98㎝ 범위이며 무게는 1.3~13. 2톤 정도의 범위이다. 10호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공수리 일대 12기 중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고임돌의 크기는 길이 200~218㎝, 단축 126~134㎝, 두께 36~40 cm 크기이다. 6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평명 장방형으로 크기는 장축 160㎝, 단축 100~120cm이며 깊이는 50cm 내외이다. 벽석은 판돌과 강돌을 혼합하여 가로 쌓기 하여 축조하였다. 성석 아래 무덤방 주변에는 평면 타원형 또는 형의 돌무지시설이 확인되는데 4호 고인돌의 덮개돌 아래에는 600×600㎝ 크기의 돌무지시설이 확인된다.
한편 고대리 ㄴ지구 1호 고인돌은 덮개돌 375×370×78cm 크기로 무게는 19.4톤 정도이다. 덮개돌 아래 2개의 지석이 놓인 탁자식 구조이다. 상석 아래에는 250×250cm 크기의 돌무지 시설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간돌도끼, 간돌검, 간돌화살촉 등의 석기류가 소수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거대한 크기의 상석이 지상에 드러나 있고, 상석 아래 고임돌과 묘역시설, 뚜껑돌이 시설되며 지표면 아래에는 매장주체부가 구축되어 있다. 형태와 구조, 무덤방의 위치와 형식에 따라 탁자식, 기반식, 개석식, 위석식 등으로 분류되는데 양구를 포함한 강원지역에서는 탁자식과 개석식이 주를 이룬다. 전형적인 탁자식은 잘 다듬어진 판돌을 지상에 구축하여 무덤방을 마련하고 그 위에 판돌 모양의 상석을 덮는 형태이다. 주로 중국 동북지방과 북한지역, 그리고 한강 이북의 경기・강원지역에 분포한다. 개석식은 판돌이나 강돌, 깬돌 등을 이용하여 장방형의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거나 바로 상석을 얹는 형식이다. 무덤방은 석재의 종류나 쌓는 방식에 따라 돌덧널과 돌널로 구분되며 무덤방의 위치에 따라 지하식과 지상식으로 나뉜다. 돌무지시설은 평면 원형과 방형이 있으며 형식에 상관없이 발견된다. 남한지역에서 고인돌이 조영되기 시작한 시점은 출토유물과 방사성탄소연대를 고려하면 기원전 10세기 즈음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늦은 시기 고인돌에서 한국식동검과 점토대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초기철기시대까지 존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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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공수리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10_009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