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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용두산고분군

龍頭山墓群
  • 저필자
    김진광(한국학중앙연구원)
  • 시대
    발해
  • 위치
  • 원소장처
    吉林省 和龍市 龍水鎭 龍海村 西山(길림성 화룡시 용수진 룡해촌 서산)
  • 시대
    발해
  • 유형
    무덤
입지
정효공주묘(貞孝公主墓) 동쪽의 산꼭대기에서 산기슭에 이르는 약 200여 미터 구간에 군데군데 평평한 작은 대지가 있다. 각각의 작은 평평한 대지에는 2-3기의 무덤이 있는데, 무덤으로 완전히 생각되는 것은 모두 10기이다. 이 무덤구는 대부분이 돌과 커다란 판석으로 무덤칸을 축조하고, 그 윗부분은 봉토하여 무덤을 만들었다. 현재 봉토가 보존된 고분 1기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무덤은 모두 돌이 지표면에 드러나 있다. 각각의 무덤 규모는 비교적 크며, 대다수의 무덤 돌무더기의 범위는 모두 4×5m 정도이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화룡시 용수진 용두산 위에 있으며, 이곳은 석국(石國)ㆍ용해(龍海)ㆍ용호(龍湖) 3개 마을이 속해 있다. 무덤떼는 서쪽으로 발해 중경현덕부 고지인 서고성(西古城)과 약 5km 떨어져 있고, 서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는 북대(北大)무덤이 있으며, 서남쪽으로 화룡시와는 약 30km 떨어져 있다. 1988년 국무원에 의해 제3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전체 무덤떼는 용해(龍海)ㆍ용호(龍湖)ㆍ석국(石國) 세 고분구역으로 나뉘며, 총 2km정도 이어진다. 용두산(龍頭山)무덤떼는 1978년 발해 문왕의 딸 정효공주묘가 발견되면서 유명해졌다. 1998년 무덤떼 보호계획편성사업에 맞춰, 연변주문물관리위원회판공실(延边州文物管理委员会办公室)과 연변박물관(延边博物馆)이 석국(石國)무덤구역에 위치한 훼손된 무덤 1기를 조사하여 3혈동봉석실무덤[三穴同封石室墓]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의 동서 양쪽에 있던 도굴되지 않은 무덤칸에서 여자 삼채용[三彩女俑]ㆍ교태자기 베개[绞胎瓷枕]ㆍ도금한 권운무늬가 있는 관고리[鎏金卷云纹棺环] 등의 귀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2004~2005년 무덤떼 보호사업에 맞춰,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ㆍ연변주문관판(延邊州文管办)ㆍ연변박물관(延边博物馆)ㆍ화룡시문물관리소(和龍市文物管理所) 등 기관에서 다시 용해(龍海)무덤구역을 발굴하여 발해시기 대형ㆍ중형무덤 14기를 조사하였으며, 수백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토된 2점의 석질 묘지로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
정효공주무덤은 용해(龍海)무덤떼 산꼭대기의 가장 높은 평평한 대지에 위치한다. 남북향이며 방향은 170°이다. 벽돌과 판석으로 쌓았다. 무덤길[墓道]ㆍ무덤문[墓门]ㆍ무덤안길[鬲道]ㆍ무덤칸[墓室]과 탑(塔) 5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탑은 이미 무너져나 남아있지 않으며 단지 탑기단만 남아있다. 무덤 바깥쪽 테두리는 남북 약 15m, 동서 너비는 약 7m이다. 일찍이 도굴되어 구조가 약간 훼손되었으나, 무덤칸의 구조는 대체로 완전하다. 무덤칸 벽은 벽돌로 쌓았으며, 천정은 커다란 판석으로 덮었다. 무덤벽에는 출행하는 인물상 12개가 그려져 있는데, 색채가 밝고 화려하며, 모습이 생동적이다. 분위기는 중원의 당대 벽화와 전혀 차이가 없다. 부장품은 거의 없으며 단지 묘지 1점만 출토되었다. 묘지는 해서로 음각한 것으로 정효공주 일생의 일을 기록하였다. 묘지기록에 근거하여 이 무덤이 발해 제3대 문왕 대흠무의 네 번째 딸 정효공주의 무덤임을 알 수 있다.
2004~2005년의 중요 발견 가운데 하나는 용해(龍海)무덤구역 산자락 아래에서 발견된 무덤위에 커다란 건축물을 지은 M13ㆍM14이다. 무덤은 동서 길이 42m, 남북 너비 36m의 흙을 다져 만든 기단 위에 만들었다. 기단 위에는 커다란 초석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바깥쪽에는 회랑 건축이 있다. 기단 사방에는 많은 양의 연화문와당(蓮花紋瓦當)과 짐승머리[獸頭] 등의 건축재료가 흩어져 있어 이곳이 등급이 매우 높은 건축물임을 알 수 있따. 두 기의 무덤은 동서로 건축지 중앙에 배열되어 있으며, 무덤칸은 모두 푸른색 벽돌로 어긋나 쌓았고, 얇은 판석으로 위를 덮었으며, 목관은 이미 썩었다. M13에서는 칠을 바른 상자[漆奩]ㆍ해수포도문 거울[海兽葡萄紋鏡] 등이 출토되었고, M14에서는 금관(金冠)ㆍ가죽모자장식[皮革帽飾]ㆍ테두리가 금으로 된 옥대[金框玉帶]등이 출토되었다. M10은 탑이 있는 무덤[塔墓]으로 지면위에 전탑과 지하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돌로 쌓은 탑은 이미 무너져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며, 단지 탑기단만 남아있다. 형식과 크기는 대체로 정효공주무덤의 탑기단과 서로 같다. 이 무덤은 비록 도굴되었으나 무덤안의 교란토층에서 거의 20여점의 남자 삼채용[三彩男]과 여자 삼채용[女俑]이 출토되었다. 발해인물의 모습ㆍ복식ㆍ머리장식 및 발해와 중원문화교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용두산(龍頭山)무덤은 지금까지의 고고사업에서 확인된 등급이 가장 높은 발해 무덤으로 무덤의 등급이 높고 무덤의 유형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부장품도 풍부하고 아름다워 발해 무덤건축의 최고수준을 보여준다. 무덤지역 산자락 아래에서 발견된 대형무덤 위의 건축이 있는 전곽무덤[磚椁墓]은 발해의 총상작옥[冢上作屋]의 장례풍속을 한층 더 증명하였다. 무덤에서 출토된 3점의 묘지는 많지 않은 발해 문자자료로 발해 매장제도[埋葬制度]ㆍ장례풍속[喪葬禮俗] 연구의 실물자료이며, 또한 발해의 역사와 문화 및 발해와 당과의 문화관계 등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하는데 중요한 학술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참고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 1984, 「和龍文物志」, 20~27쪽.
김진광, 2012,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508~518쪽.
길림성문물국 : http://www.jlww.org/article_articleMess?id=1312231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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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두산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50_0080_0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