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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요양 신성자 유적

遼陽 新城子 遺蹟
  • 저필자
    이후석(숭실대학교)
  • 작성자
    遼陽市文物管理所/遼寧省 文化廳/遼寧省博物館
  • 날짜
    1982
  • 시대
    초기철기시대
  • 위치
  • 원소장처
    요령성 요양시 태자하구 동경릉향 신성촌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유적개관
* 유적은 요녕성(遼寧省) 요양시(遼陽市) 태자하구(太子河区) 동경장향(東京障鄕) 신성촌(新城村)에 위치함.
* 요양시 동쪽 태자하 동해안 언덕지상에 있음.
* 1982년 6월 하순, 신성촌 벽돌공장 장인이 취토하다 봉토는 없어진 외곽이 목판으로 노출된 두좌를 발견함.
* 1982년 6월 29일 요양시 문물관리소가 현장 조사하고, 7월 4일부터 13일까지 서쪽의 분묘 이전발굴을 시작함.
* 발굴작업은 8월 30일부터 9월 20일까지이며, 발굴과정 중 요녕성문화청 문물과와, 요양시 부처가 합류하여 발굴작업을 완성함.
* 전국시대 고분 두기가 동서로 나란히 있으며, 구조는 같으며 목곽에 관을 사용함.
* 이 유적은 초기철기시대 유적임.
유구개관
* 목곽묘 2기
유물개관
* 호(壺), 동정(銅鼎), 등대(燈臺), 옥(玉) 등 70여 개의 부장품이 발견되었음.
참고문헌
穆啓文, 「遼陽新城戰國墓發現與硏究」, 『遼寧省博物館館刊』, 2009
해설
유적은 태자하(太子河)가 요양시를 지나면서 북쪽으로 휘돌아 나가는 구간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신성촌의 구릉 평탄면에 위치한다. 유적 서남쪽으로 약 400 떨어진 지점에는 일명 신성(新城)이라 하는 청나라때의 동경성(東京城)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으로 약 2.5㎞ 떨어진 강 건너에는 요양고성(遼陽古城)이 자리하고 있다. 1982년 마을의 벽돌공장 공인이 토사 채취 과정에서 나무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 2기가 발견하여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요양시문물관리소와 요령성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무덤은 장방형으로 주축을 남북방향으로 하여 동서방향으로 265㎝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무덤구덩이 2개가 하나의 봉토에 들어가는 것이어서 동분이혈(同墳二穴)의 부부합장묘라 할 수 있다. 조사 전에 이미 봉토는 유실되었고, 서쪽의 무덤구덩이는 1호묘로 동쪽의 무덤구덩이는 2호묘로 명명되었다. 1호묘는 요양시문물관리소에 의해, 2호묘는 요령성박물관에 의해 차례로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요령성 박물관과 요양시 박물관에 분리 수장되어 있다. 현재 유적에는 벽돌공장이 들어서 있다.
1호묘는 여성묘로 무덤 구조는 자세하지 않고 출토유물만이 일부 보고되어 있다. 단지[단경호(短頸壺)], 항아리[도호(陶壺)] 등의 토기류와 세발솥[동정(銅鼎)], 굽접시[동두(銅豆)], 국자[동작(銅勺), 촛대[銅臺], 거울[동경(銅鏡)], 청동허리띠고리[청동대구(靑銅帶鉤)] 등의 청동기류, 나무수레[목거(木車)], 목마(木馬), 나무인형[목용(木俑)], 나무북 등의 목기류, 채색그릇[칠합(漆盒)] 등의 칠기류, 옥벽(玉璧) 등의 옥기류가 출토되었다.
2호묘는 남성묘로 나무널은 1개, 나무덧널은 2개로 1관2곽 구조이다. 무덤구덩이의 규모는 길이 400㎝, 너비 330㎝이고, 깊이 360㎝이며, 무덤구덩이와 나무덧널 사이에는 자갈, 황토, 점토 등이 채워져 있었다. 외곽은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판자를 잇대어 만들었고, 내곽은 판재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외곽의 규모는 길이 480㎝, 너비 224㎝, 높이 147㎝이고 내곽의 규모는 길이 260㎝, 너비 110㎝, 높이 130㎝이다.
부장유물은 주로 나무널와 나무덧널(내곽) 사이에서 출토되었다. 나무널은 판재로 만들었고, 그 안에는 두개골이 남아 있어 머리 방향이 북쪽임을 알 수 있다. 나무널의 규모는 길이 204㎝, 너비 81㎝, 높이 83㎝이다. 바리[도발(陶鉢)], 항아리[도호(陶壺)], 세발솥[도정(陶鼎)] 등의 토기류와 세발솥[동정(銅鼎)], 동이[동분(銅盆)], 대야[동감(銅鑑)], 촛대[銅臺], 거울[동경(銅鏡)] 등의 청동기류, 채색그릇[칠합(漆盒)], 채색접시[칠시(漆皿)], 채색부채자루[칠선(漆扇)], 채색귀고리[칠환(漆環)], 채색지팡이[漆杖] 등의 칠기류, 나무수레[木車], 목마(木馬), 나무인형[목용(木俑)], 나무현악기, 나무북, 죽침 등의 목기류, 옥식 등의 옥기류가 출토되었다.
연대는 출토유물이 전국시대 연나라 계통의 토기류와 청동기류가 보이지만 무늬없는 단지와 항아리는 한나라 때에도 사용되는 것인데다 초나라 계통의 목기류가 확인되고 있어 전국말~전한초 또는 기원전 3세기 말엽 전후로 볼 수 있다. 무덤의 주인공도 토착민이 아닌 연계 유이민(流移民)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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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 신성자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10_0080_005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