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일(曆日)과 존호(尊號)를 청하는 고려 군주의 표(表)
고려 진봉고주사(進奉告奏使)주 001 어사민관시랑(御事民官侍郎)주 002 곽원(郭元)주 003
각주 003)
과 동여진(東女眞)주 004 수령 하노태(何盧太)주 005가 와서 공물을 바쳤다. 고려 군주가 표를 올려 역일과 존호를 내려줄 것을 청하고 또한 거란(요)이 그 나라 서쪽 압록강 근방에 부교를 만들고, 강동에 목책을 쌓고 군대를 일으켜 태워 없애려 하니 적은 수로 많은 수를 대적하는 것이 걱정스럽고 변경의 백성이 특히 불안해하여 이에 서여진(西女眞)주 006으로 향도를 삼았다고 말했다. 곽원이 스스로 말하기를, “본국의 성은 울타리가 없고, 부는 개성으로서 6현을 관할하고 주민은 3~5천에서 내려가지 않습니다. 주마다 군사 100여명을 두고 10로(路)에 전운사(轉運司)주 007를 두어 그들을 통할하고 있습니다. 주마다 5~6현을 관할하는데 작은 것은 3~4현이고 현 마다 3~4백호가 있습니다. 국경은 남북 1,500리이고 동서가 2,000리입니다. 군사와 백성이 섞여 거주하고 군대에 편입된 자의 얼굴에 자자(刺字)하지는 않습니다. 시장은 한낮에 열고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베와 쌀로만 교역합니다. 땅은 메벼에 적합하고 풍속은 중국과 자못 유사합니다. 3년에 한 번 거인을 시험 보는데, 진사·제과·산학이 있고 매번 백여 명씩 시험 보는데 합격자는 10~20을 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곽원은 말과 용모가 공손하고 단정하며, 연회를 받을 때마다 반드시 스스로 감사의 표를 지어 올렸는데 거칠게나마 나름 문체가 있었으므로 조정에서도 후하게 대우했다. 다음해 하직하고 귀환할 때 그 군주에게 조서 7함, 의대, 기폐, 안마, 경사(經史), 『성혜방(聖惠方)』,주 008郭元 : ?∼1029. 고려의 관인. 본관은 淸州이다. 고려 성종 15年(996) 과거에 甲科로 급제하였다. 순종 6年(1015)에 民部侍郎으로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거란(요)이 해마다 침입함을 고하고 위태할 때 구원하여줄 것을 청하였다. 이듬해 돌아와서 刑部侍郎, 右諫議大夫가 되었다. 1017년 禮部侍郎, 翰林學士가 되었으며, 그 해 知貢擧가 되었다. 1022년 右散騎常侍가 되었으며, 그 해 尙書右丞 王諝와 함께 사신으로 거란(요)에 다녀왔다. 1023년 中樞院使가 되었고, 이듬해 형부상서가 되었으며 다시 같은 해 西北面行營副都統이 되었다. 1025년 推誠文理功臣, 上柱國이 되었고, 1027년 參知政事가 되었다. 1029년 왕에게 아뢰어 압록강 동쪽의 거란(요)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자 분사했다.
각주 008)
역일 등을 하사했다. 곽원이 또한 『국조등과기(國朝登科記)』주 009 및 내려준 어시(御詩)를 베껴 돌아가겠다고 청하니 그것을 허락했다.聖惠方 : 원래 명칭은 『太平聖惠方』이고 이를 줄여서 『聖惠方』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총 100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북송의 王懷隱과 王祐 등이 칙명을 받아 편찬했다. 편찬에는 太平興國 3年(978)부터 淳化 3年(992)까지 14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중국에 현존하고 있는 10세기 이전의 方書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다. 脈法, 의약 처방을 서두에 서술하고 이하에는 五臟의 병 증세, 傷寒, 열병, 骨傷 등 각종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다루었고 神仙, 丹藥, 針灸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송 태종이 평소에 醫學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편찬을 명했던 것이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郭元 : ?∼1029. 고려의 관인. 본관은 淸州이다. 고려 성종 15年(996) 과거에 甲科로 급제하였다. 순종 6年(1015)에 民部侍郎으로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거란(요)이 해마다 침입함을 고하고 위태할 때 구원하여줄 것을 청하였다. 이듬해 돌아와서 刑部侍郎, 右諫議大夫가 되었다. 1017년 禮部侍郎, 翰林學士가 되었으며, 그 해 知貢擧가 되었다. 1022년 右散騎常侍가 되었으며, 그 해 尙書右丞 王諝와 함께 사신으로 거란(요)에 다녀왔다. 1023년 中樞院使가 되었고, 이듬해 형부상서가 되었으며 다시 같은 해 西北面行營副都統이 되었다. 1025년 推誠文理功臣, 上柱國이 되었고, 1027년 參知政事가 되었다. 1029년 왕에게 아뢰어 압록강 동쪽의 거란(요)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자 분사했다.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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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8)
聖惠方 : 원래 명칭은 『太平聖惠方』이고 이를 줄여서 『聖惠方』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총 100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북송의 王懷隱과 王祐 등이 칙명을 받아 편찬했다. 편찬에는 太平興國 3年(978)부터 淳化 3年(992)까지 14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중국에 현존하고 있는 10세기 이전의 方書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다. 脈法, 의약 처방을 서두에 서술하고 이하에는 五臟의 병 증세, 傷寒, 열병, 骨傷 등 각종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다루었고 神仙, 丹藥, 針灸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송 태종이 평소에 醫學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편찬을 명했던 것이다.
- 각주 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