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상모야판본조신(上毛野坂本朝臣; 가미츠케노사카모토노아소미)

상모야판본조신(上毛野坂本朝臣; 가미츠케노사카모토노아소미)
 상모야(上毛野; 가미츠케노)와 조상이 같으며,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도요키이리히코노미코토)의 10세손 좌태공(佐太公; 사타노키미)의 후손이다. 『속일본기』와 합치된다.
 
【주석】
1. 상모야판본조신(上毛野坂本朝臣)
상모야판본(上毛野坂本; 가미츠케노사카모토)이라는 씨명은 율령제 상야국(上野國; 가미츠케노쿠니) 대빙군(碓冰郡) 판본(坂本; 사카모토)이라는 지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은 현재 군마현(群馬縣) 대빙군(碓冰郡) 송전정(松田町) 판본 일대이다.
『속일본기』 천평승보(天平勝寶) 5년(753) 7월 무오조에는 “좌경인(左京人) 정8위상 석상부군남도(石上部君男島) 등 7인이 말하기를 ‘저희들의 친부 등여(登與)가 대보(大寳) 원년에 상모야판본군(上毛野坂本君)이라는 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손들은 호적과 계장에 여전히 석상부군(石上部君)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청컨대 아버지의 성에 따라 바꾸어 바로 잡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조하여 허락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또 신호경운(神護景雲) 원년(767) 3월 을묘조에는 “좌경인 정6위상 상모야판본공남도(上毛野坂本公男島), 상야국(上野國) 대방군(碓冰郡) 사람 외종8위하 상모야판본공흑익(上毛野坂本公黑益)에게 상모야판본조신(上毛野坂本朝臣)이라는 성을 주었다.”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상모야판본조신은 석상부군, 상모야판본공(군), 상모야판본조신이라는 개성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석상부군 일족으로는 위에 기재한 석상부군등여와 석상부군남도가 있다. 이 외에 『속일본기』 천평승보 원년(749) 5월 임인조의 상야국(上野國) 대빙군(碓冰郡) 사람 외종7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석상부군제제(石上部君諸弟)가 있다.
상모야판본군(공) 일족으로는 위에 기술한 등여와 남도 부자 외에 상야국 대빙군 외종8위하(극위) 상모야판본공흑익이 있다.
2. 상모야동조(上毛野同祖)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상모야(上毛野)’ 다음에 ‘조신(朝臣)’이라는 2글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상모야조신에 대해서는 좌경 황별(상)의 「상모야조신」 조(098)와 우경 제번(상)의 「상모야조신」 조(136) 참조.
3.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풍성입언명은 숭신천황의 아들로 『고사기』 숭신천황단과 『일본서기』 숭신천황 48년 4월무신삭 병인조에서 상모야군(上毛野君)과 하모야군(下毛野君)의 시조라고 기술되어 있다. 풍성입언명에 관해서는 좌경 황별(하)의 「하모야조신」 조(136) 풍성입언명 참조.
4. 좌태공(佐太公)
좌경 황별(하)의 「지전조신」 조에도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10세손(世孫) 좌태공(佐太公)의 후손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5. 속일본기합(續日本紀合)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景雲) 원년(767) 3월 을묘조에 “좌경인(左京人) 정6위상 상모야판본공남도(上毛野坂本公男島), 상야국(上野國) 대빙군(碓冰郡) 사람 외종8위하 상모야판본공흑익(上毛野坂本公黑益)에게 상모야판본조신(上毛野坂本朝臣)이라는 성을 주었다.”라고 적혀 있는 사성 기사와 내용이 합치된다는 의미이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상모야판본조신(上毛野坂本朝臣; 가미츠케노사카모토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70_0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