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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신찬성씨록』 서문

『신찬성씨록』 서문

이것은 제1권의 서문이고, 관서(官書)의 목록에는 실려 있지 않다. 그러나 이 권(卷)에 싣는다. 또 성씨록의 문을 발췌해서 이 권에 주기한다. 이것은 모두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내가 한 것이다.
 
무릇 듣건대 천손이 일향국 습(襲)에 강림하여 서쪽을 교화하였을 때, 신세(神世)가 이에 열렸으나 기록이 전하지 않습니다. 신무천황이 동정에 나서던 해에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효수(梟首)가 간간히 일어났습니다. 신검을 내려받고 신령스러운 새가 날기에 이르러 귀순하는 괴수들이 무리를 이루었고, 흉악한 무리들이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밝은 천명을 받아 중주(中州)에 터를 잡자, 모든 것이 태평스럽고 나라 안이 맑고 고요해졌습니다. 드디어 행위를 삼가도록 하고 공을 평가하고 땅을 내려 주고 씨명을 정해 주니 국조와 현주라는 호칭이 이에 시작되었습니다.
수인(垂仁) 때 좋은 기운에 응하니 혜택이 더욱 새롭고 조치가 적절하므로 성씨가 제법 나누어졌습니다. 하물며 또한 임나가 교화에 응하고 신라가 귀순한 이후, 모든 나라들이 덕을 우러러 오지 않으려는 자가 없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여 성을 내리니 이때 모든 것이 밝아졌습니다.
윤공(允恭)이 천하를 다스릴 때 만 가지 성이 혼란해져서, 이때 맹신탐탕의 조칙을 내리니 사실을 말한 자는 온전하고 거짓을 꾀한 자는 해를 입었습니다. 이로부터 씨성이 저절로 정해져서 다시 속이는 사람이 없으니 경수와 위수가 따로 흐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황극(皇極)이 즉위하고, 국기(國記)가 모두 불타 버리니 어리고 약한 자는 그 근원을 잃어버리고, 교활하고 강한 자는 가짜 주장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천지천황(天智天皇)이 동궁이었을 때 선사혜척(船史惠尺)이 타다 남은 책을 바쳤고, 경오년에 이르러 호적을 편찬하여 만드니 인민의 씨성[氏骨]이 각각 그 마땅함을 얻었습니다. 이후 역대 제왕이 수시로 개정하여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승보(勝寶) 연간에 특별히 은혜로운 명령을 내려 제번 출신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내려 주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전에 있던 성과 뒤에 받은 성을 나타내는 문자가 같아지고, 외국과 일본의 씨족이 서로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각지의 서민들이 고귀한 신분의 후손이라고 내세우고, 삼한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일본 신의 후손이라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니 알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보자(寶字) 말에 그 다툼이 더욱 빈번해져서, 이에 이름 있는 학자들을 모아 씨족지(氏族志)를 편찬하였으나, 초안이 만들어지는 중에 어려움이 있는 때를 만나서 여러 학자들은 흩어지고 편찬은 중단되었습니다.
환무천황[皇統彌照聖明]은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스스로 어진 성품을 갖추어 위엄이 해가 뜨는 언덕에 미치고, 덕이 달이 뜨는 곳에 비추었습니다. 봉화를 멈추고 관문을 없애니 문화가 하나가 되고 모든 사물에 배려가 미쳤습니다. 정명(正名)을 간절히 생각하여 이에 명령을 내려 본계(本系)를 편찬하고 조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이 완성되기 전에 천황이 등하하셨습니다.
천조(天朝)가 지극히 밝아서 이전의 사업을 이어받았고, 지극한 성스러움으로 성스러움을 이어 후대를 위하고자 하여, 이에 중무경 4품 신(臣) 만다친왕(萬多親王), 우대신 종2위 겸 행황태제부 신 등원조신원인(藤原朝臣園人), 참의 정4위하 행좌위문독 겸 근강수 신 등원조신서사(藤原朝臣緒嗣), 정5위하 행음양두 신 아부조신진승(阿部朝臣眞勝), 종5위상 행미장수 삼원조신제평(三原朝臣弟平), 종5위상 행대외기 겸 인번개 신 상모야조신영인(上毛野朝臣穎人) 등에 명하여, 이전의 뜻을 기리고 이 문화를 널리 펼 수 있도록 비밀 문서고를 열고, 여러 씨족의 근원을 찾도록 하였습니다.
신들은 고기(古記)를 두루 찾고 옛 역사를 널리 보았는데, 내용은 어긋나고 표현은 어색하고, 음과 훈도 조잡하였습니다. 한 가지 일을 풀어 보면 도리어 모순이 생기고 두 가지 주장을 합해 보면 곧 어긋남이 있었습니다.
새로 바친 본계(本系)가 고실과 다른 경우가 많아서 두 씨를 섞고 합하여 함부로 한 조상으로 만들기도 하고, 원류를 알지 못하여 조상의 순서를 거꾸로 뒤바꾸거나, 자기 조상을 잃어버리고 잘못 다른 씨에 들어가거나, 다른 씨에 교묘하게 들어가 자기 조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새로운 씨족과 오래된 씨족이 어지러워져 정리하기 어렵고, 이 씨족과 저 씨족이 잘못 뒤섞인 것인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하루빨리 이루고자 하였으나, 이미 10년의 세월이 지나 버렸고 경기(京畿)의 본계 중 바치지 않은 것은 반이 넘습니다. 이제 바친 것에 의거하여 부류로써 헤아려 보았습니다. 원래 생겨난 바를 근본으로 하면 곧 ‘삼체(三體)’가 있고, 그 무리로 나누어진 것을 구별하면 곧 ‘삼례(三例)’가 있습니다.
천신과 지기의 혈통을 신별(神別)이라고 하고, 천황과 황자의 갈래는 황별(皇別)이라고 하고, 대한(大漢)과 삼한(三韓)의 종족을 제번(諸蕃)이라고 합니다. 같고 다름을 구별하고 앞뒤의 순서를 매기는 수단입니다. 이를 ‘삼체’라고 합니다.
본종에서 갈라져 특별히 가문을 세운 선조는 ‘출자(出自)’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고기와 본계에 모두 기록되어 실려 있거나, 혹은 고기에는 실려 있으나 본계에 빠졌거나, 본계에 실려 있으나 고기에 빠진 경우는 ‘동조지후(同祖之後)’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본종의 씨족과의 관계는 고기에는 누락되어 있지만, 선조를 세운 것에 잘못이 없고 단지 본지(本枝)의 관계가 의심스러우면 ‘지후(之後)’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멀고 가까움을 분별하고, 가깝고 소원함을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이를 ‘삼례’라고 합니다.
무릇 작은 옥과 한 자 되는 나무에도 오히려 흠과 마디가 있는데, 하물며 후세에 전세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조상의 순서가 서로 바뀌고 세대수가 크게 틀리더라도 곧 큰 잘못으로 여기지 않고, 공동으로 논의하여 판단하였습니다.
진인(眞人)은 황별 중에서도 상위 씨족이므로, 경기를 모두 모아 1권으로 만들어 황별의 첫머리에 붙였습니다. 미정(未定)은 여러 씨족 중에서 분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아서 1권으로 만들어 제번의 뒤에 붙였습니다. 또한 여러 성이 본계에 빠졌으나 고기에 실려 있는 경우는 고기의 내용을 뽑아서 붙였습니다. 본계가 고기와 다르면 고기에 의거하여 다듬어 정리하였습니다.
이제 살펴보건대, 고기를 중거로 인용하였지만 비록 문장이 어긋나더라고 반드시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그 문장을 그대로 두어 내용이 통하는 것을 중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경기의 씨족은 대체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지방의 씨족은 반드시 경기에 넣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신들을 칙을 받들어 삼가 자세히 연구하고 여러 주장을 모아 옳고 그른 것을 골랐으며, 옛 기록의 번잡함을 잘라내고, 새로운 요점만을 뽑아 모았습니다. 새로운 계보의 덧붙인 내용은 없애고, 과거와 통하도록 절충하였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여 이해하기 쉽고,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분명하고, 나침판처럼 밝게 하고자 생각하였습니다. 신무(神武)에서부터 홍인(弘仁)에 이르기까지 과거를 살펴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여, 맡은 일을 대충 마쳤습니다. 무릇 1,182씨를 30권으로 모아 3부로 완성하고 이름을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책은 즐거움을 좇는 뜻도 아니고 옥판에 써서 즐기는 내용도 아니지만, 또한 인륜의 중요한 기준이고 국가를 운영하는 요령입니다. 다만 경기에서 본계를 아직 제출하지 않은 것과 지방에서 바치는 것을 일시에 다 거두어들이기 어려우므로 빠진 대로 두었습니다. 여러 씨성의 목록은 별권에 나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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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서문 자료번호 : ss.k_0001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