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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혼지(東本願寺) 여관에서 삼사(三使)와 시(詩) 창화(唱和) 및 필담(筆談)

一. 엔쿄(延享) 5 진년(辰年)주 001
각주 001)
17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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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준신인(惇信院)님주 002
각주 002)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德川家重)의 시호(諡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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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시대에 조선인이 내빙했을 때,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여관에서 시창화와 필담[을 나누다]
  도카칸(滕嘉奐),주 003
각주 003)
등가환·정세익·궁유한이라는 이름은 조선인과 필담창화를 한 일본인들이 조선 풍의 이름을 함께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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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이모쿠(夷目), 호는 간후(雁阜), 에도(東都)사람, 시라사키 나오에몬(白崎直右衛門)
  세이세이요쿠(井世翼), 자는 시우(子羽), [호는] 류타쿠(笠澤), 이와이 야스에몬(岩井安右衛門)
  규이칸(宮維翰), 자는 분요쿠(文翼), [호는] 류몬(龍門), 헤이안(平安)사람, 미야세 산에몬(宮瀨三右衛門)
  학사(學士) 박경행(朴敬行), 자는 인칙(仁則), 호는 구헌(矩軒), 제술관(製述官)
  태사(泰事) 이봉환(李鳳煥), 자는 성장(聖章), 호는 제암(濟菴), 정사서기(正使書記)
  진사(進士) 이명계(李命啓), 자는 자문(子文), 호는 해부(海阜),주 004
각주 004)
이명계의 호는 해고(海皐)이며 뒤의 창수 부분에서도 海皐로 나오고 있는데 이 원문에는 해부(海阜)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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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서기(從事書記)
 시라사키(白崎) 씨가 구헌(矩軒, 박경행)에게 물었다.
메이레키(明曆)·텐나(天和)에서 쇼토쿠(正德)·쿄호(享保)에 이르기까지,주 005
각주 005)
1655년 통신사에서 1682년·1711년·1719년 통신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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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빙사(聘使)들의 시를 모두 모아 세상에 간행했습니다. 나는 매번 그것을 읽고, 제술관 청천(靑泉) 공(公) 신유한(申維翰)주 006
각주 006)
신유한은 1719년 정사 홍치중(洪致中)·부사 황선(黃璿)·종사관 이명언(李明彦) 등 통신사 일행이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사행 중 신유한의 시를 받기 위해 수많은 일본 문사들이 모여들었고, 일본문사들로부터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 각각 주고받은 시와 필담이 『남도창화집(藍島唱和集)』·『상한창수집(桑韓唱酬集)』·『상한훈지(桑韓塤篪)』·『객관최찬집(客館璀粲集)』·『봉도유주(蓬島遺珠)』·『삼림한객창화집(三林韓客唱和集)』 등 수많은 필담창화집에 수록되어 있다. 신유한은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특히 시에 걸작이 많고 사(詞)에도 능했다. 사행일기로 『해유록(海遊錄)』이 있고, 그 밖에도 『청천집(靑泉集)』과 『충서난록(奮忠難錄)』 등이 있다. (대일외교 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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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시가 뛰어나다고 여겼습니다. 나 혼자 그렇게 칭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시에 숙달된 자 또한 ‘동쪽[일본]으로 온 자들 중 최고’라고 합니다. 그 시의 격조가 빼어나고 풍채와 태도가 사모할 만합니다. 신유한 공이 무탈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경모하는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구헌이 답하다.
청천 [신유한]의 시는 과연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기운이 씩씩하고 말도 훌륭합니다. 그대는 그것을 아시는군요.
지금은 연일주 007
각주 007)
현재 경상남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지역의 옛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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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延日大守)이시며, 예전과 같이 정정하십니다.
 이와이(岩井) 씨가 구헌에게 고했다.
우리나라는 상고시기에 군현을 전국에 두어 하나같이 한당(漢唐)의 제도를 본받았고, 우리의 춘궁학사(春宮學士) 시게노노 사다누시(滋野貞主)주 008
각주 008)
생몰기간(785년~852년). 헤이안 시대 전기의 공경(公卿)이자 한시인(漢詩人). 칙선(勅撰) 한시집 『文華秀麗集』 『経國集』, 고금의 문서를 편찬한 『秘府略』 1000권의 편수에도 참여했다. 『凌雲集』 이하의 칙선 한시집에 34수(首)가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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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편찬한 『경국집(經國集)』에 그 책문(策問)주 009
각주 009)
문과(文科) 시문(詩文)의 하나. 정치에 관한 계책(計策)을 물어 적게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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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대책문(對策文)주 010
각주 010)
책문(策問)에 답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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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상세히 실었습니다. 우리 신조(神祖)는 천명을 받아 난을 평정하여 올바름을 돌이켰으며, 국내를 통일하고 제후를 세워 사민(四民)을 나누었으니, 삼대(三代)주 011
각주 011)
하, 은, 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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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주 012
각주 012)
천자가 나라의 토지를 나누어 주고 제후를 봉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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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제도와 크게 유사합니다. 다만 그 제도에 다시 오등(五等),주 013
각주 013)
공(公)ㆍ후(侯)ㆍ백(伯)ㆍ자(子)ㆍ남(男) 등 다섯 등급의 작위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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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三登)의 구분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한 바 공들께서 쓰시마부터 에도까지 거쳐 온 이곳저곳이 제후의 봉읍입니다. 우리나라는
천황이 역대로 야마시로노쿠니(山城國)주 014
각주 014)
현재 교토후(京都府)의 남쪽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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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도읍했고, 제후는 모두 습봉(襲封)하며 대부는 모두 세록(世祿)하니, 무사의 자식은 항상 무사, 농민의 자식은 항상 농민, 공상(工商) 또한 그러합니다. 이것은 과거(科擧) 합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 그것을 아시는지요. 저 세이요쿠(世翼)의 경우 제후 가문에서 대대로 녹을 받는데, 다만 보잘것없는 무인으로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 외고 글을 읽으며 남몰래 유학(儒學)의 도의(道義)를 즐기고 끝내 뜻을 품고 가니, 지금은 비루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도 낙제의 부끄러움이 없으니 이것이 다행일 따름입니다. 아아, 공들은 과거시험에서 제일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습니까. 공경하며 부럽습니다.
 도카이(東海)가 제암(濟菴) 이봉환에게 물었다.
공들이 오늘 쓴 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의포(衣袍) 또한 이름이 있습니까. 또 이번 달 초하루에 삼사가 쓴 관과 의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6일 쓰시마 번주 소씨의 초대에 응했을 때의 의관과 앞서 본 것은 달랐습니다. 상세하게 알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제암이 답했다.
구헌은 와룡관(臥龍冠), 저는 동파관(東坡冠), 해고는 고후팔괘관(高後八卦冠)입니다. 삼사 대인은 금관(金冠), 조복(朝服), 옥패(玉佩)를 착용했고, 한가로이 거처할 때 착용한 것은 윤건(綸巾)·심의(深衣)였습니다. 쓰시마 소씨를 만났을 때는 비단두건[紗幅]과 단령(團領)이었습니다.
 류몬(龍門)이 해고(海皐) 이명계에게 물었다.
말 탄 사람이 연주할 때 사용한 현악기를, 귀국에서는 뭐라고 부르십니까.
 해고가 답했다.
말 탄 사람이 연주한 현악기는, 해금(嵆琴)이라고 합니다.
 다시 물었다.
말 탄 사람이 연주한, 갈대피리 같은 작은 관은 무엇입니까.
 해고가 답했다.
갈대피리 같은 작은 관은 태평소(太平簫)입니다.
 박구헌(박경행)에게 삼가 올림.  류몬(龍門)
아노라, 그대가 사명을 받듦에 휘광 있음을. 사신의 수레가 당당하게 화려한 궁전을 나오는구나.
문헌(文獻)은 한결같이 옛 덕을 전하고, 걸출한 자들은 만 리(里)에 선명(先鳴)을 겨룬다.
술 빚기를 친히 여긴 주랑(周郞)주 015
각주 015)
주랑(周郞)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명장 주유(周瑜).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의 「주유전(周瑜傳)」에 따르면, 주유는 젊었을 때부터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래서 술에 취해서도 악사들이 연주를 잘못하면 반드시 곧 알아차리고 악사 쪽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그 무렵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주가 틀리면 주랑이 돌아본다(曲有誤, 周郞顧)”는 속요가 유행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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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름다움이여. 풍류를 이끌던 순령(荀令)주 016
각주 016)
순욱(荀彧, 163~212년)은 중국 후한 말 조조 휘하의 정치가로 자는 문약(文若). 지금의 허난성 쉬창시 사람. 순욱은 용모가 단정하고 수려하며, 위장부(偉丈夫)이기도 하여 젊을 적부터 하옹(何顒)으로부터 왕을 보좌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고 칭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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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향이여.
어찌 이 시편(詩篇)이 선물로 적당하겠는가.주 017
각주 017)
증저(贈紵)는 모시옷을 준다는 뜻인데 정이 두터워져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정(鄭)나라 자산(子産)에게 흰 명주 띠를 선사하자 자산이 그 답례로 모시옷을 보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襄公29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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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토록 일곱 번을 옮기어 앉아도 아직도 문장을 이루지 못하였네.
 규류몬(宮龍門)에게 삼가 화답함.  구헌
사신으로 나서는 의관(衣冠)이 만 리에 빛나고, 풍류의 문장이 선당(禪堂)을 휘감는다.
하늘 저편의 아득히 큰 붕새를 따라가고자 하나, 누군가 금하여 바람 앞 말 울음으로 대신할 따름이다.
해안에 가득 찬 아름다운 빛은 도리어 꿈속이고,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옥 같은 마름풀이 향을 나누어주는구나.
화진(華津)주 018
각주 018)
경상북도 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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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복(三伏)을 맞이하는데,주 019
각주 019)
이 필담창화를 나눈 시기가 사절단이 에도의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에 머물던 5월 21일이므로, 귀국길에 올라 조선에 도착했을 즈음엔 삼복 여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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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과 저습지에서 쓸쓸하게 읊조리는 사모장(四牡章).주 020
각주 020)
사신의 노고를 위로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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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암(이봉환)에게 삼가 올림.  시라사키 간후(白崎雁阜)
구름은 창연하고 외교사절의 내방을 알리는 소리(鴻臚)주 021
각주 021)
‘홍로(鴻臚)’란 ‘외교사절의 내방을 알리는 소리’라는 뜻. 홍로관(鴻臚館)은 헤이안 시대에 설치된 외교 및 해외교역 시설이며, 홍로관의 전신으로 筑紫館, 難波館이 나라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 ‘鴻’은 커다란 새라는 의미에 유래하여 ‘크다’는 뜻이고, ‘臚’는 배(腹)라는 의미에 유래하여 ‘전하여 고하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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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사신의 글월이 굽이쳐 흐른다. 하늘 남쪽에는 어젯밤 사성(使星)주 022
각주 022)
사성(使星)은 한나라 화제(漢和帝) 때 이합(李郃)이 천문(天文)의 사성(使星)을 보고 두 사신이 파견될 것을 미리 알았던 고사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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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떴네.
한나라의 악부(樂府)는 도위(都尉)를 천거했으니,주 023
각주 023)
악부는 본래 중국 한대(漢代) 무제(武帝) 때에 세워진 음악을 관장하는 관청의 이름. 무제는 음악가 이연년(李延年)을 협률도위(協律都尉)에 임명하여 음악을 관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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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친구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시를 지었다네.주 024
각주 024)
하량은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 친한 친구를 전송할 때 이별하고 싶지 않은 기분. 중국 전한(前漢) 시대에 이민족인 흉노에 붙잡힌 이릉(李陵)이 함께 붙잡힌 소무(蘇武)가 한나라로 돌아갈 때 보낸 시에서 비롯된 말. 이릉과 소무의 이별도 앞 구절과 같이 무제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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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간후(滕雁阜)에게 삼가 화답함.  제암
무창(武昌) 성곽에 자줏빛 물결이 굽이쳐 흐르고, 선객(仙客)이 서로 만나 벼루를 연다.
걸출한 인물은 땅이 영험하고 풍토가 특별한 곳에서 나니, 후지산 겹겹마다 기이한 재능을 잉태하네.
 이해고(이명계)에게 삼가 올림.  류타쿠(笠澤)
만리 뗏목을 타고 창해를 가르고, 휘어진 칼(吳鉤)의 자줏빛 기운이 별자리를 침범하네.
깃대가 멀리 조선 한양의 색을 가리키고, 배는 더욱이 한(韓)의 구름과 이어지네.
하찮은 이야기나 졸렬한 문장(驢鳴犬吠)에 응하여 웃으니 비로소 군계일학을 바라보네.
벼슬한 것은 알았는데주 025
각주 025)
攀桂樹는 ‘벼슬을 하다’라는 뜻. (고전번역원DB 갈암집 등) 계수(桂樹)는 과거 급제를 비유하는 시어(詩語). 현량 대책(賢良對策)에서 장원을 한 극선(郤詵)에게 진 무제(晉武帝)가 소감을 묻자, 극선이 “계수나무 숲의 가지 하나를 꺾고, 곤륜산(崑崙山)의 옥돌 한 조각을 쥐었다”라고 답변했는데, 월궁(月宮)에 계수나무가 있다는 전설을 여기에 덧붙여서 과거 급제를 ‘월궁절계(月宮折桂)’로 비유하기도 한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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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빨리 잘 지어내는 명성이 당신과 같은 이 누구이겠는가.
 류타쿠(笠澤)에게 삼가 화답함.  해고
실의한 사람이 이별할 때에 임하여, 비단 상어 강에 지은 시는 화려하게 염색된 비단 같네.
세월의 아득함은 흘러가는 물에 비기고 예나 지금이나 구름은 산수로 돌아가네.
사람을 붙드는 신기루(蜃市)는 진실로 기이한 듯하고, 칼에 의지한 낮의 기운은 비할 바 없이 뛰어나다.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니 이별하는 한스러움에 이끌리지만, 꽃이 질 때 다시 그대를 생각하겠노라.
 박구헌에게 삼가 올림.  간후
그대의 학문이 일시(一時)에 전해짐을 알았는데, 명을 받든 사신의 수레는 아득히 먼 곳으로 향하네.
스스로 명월(明月)의 색을 손에 쥐고 있어, 가지고 온 찬란함이 화려한 이 자리를 채우는구나.
 도간후에게 삼가 화답함.  구헌
봉래산의 춘색(春色)은 시가 있어 전하고, 꿈은 층층 파도 아득한 데로 들어가네.
힘찬 문장과 풍류(風流)가 모이니 다만 만남의 장이 이것으로 이별함이 한스럽다.
 제공(諸公)에게 고하는 필어(筆語)
공들과 번갈아 창수하며 그 뜻에 감동하였으나 저희들이 10여 일 동안 응대에 지쳐 침식(寢食)을 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의지가 느슨해지고 정신이 상하여 다시 응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헤아려 주십시오.
 정사 홍계희(洪啓禧)가 여행하며 읊으니 후지산이라는 제목이다.
홀로 우뚝 선 백옥 같은 산이여. 하늘 한복판에 눈이 쌓여 여름에도 춥구나.
오색 구름의 아름다운 기운이 금궐(禁闕)주 026
각주 026)
황거(皇居)의 문. 禁門, 皇居, 御所, 禁中, 禁裏, 金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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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닿아 있으니 훌륭한 다스림으로 만세가 편안하도다.

  • 각주 001)
    1748년. 바로가기
  • 각주 002)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德川家重)의 시호(諡號). 바로가기
  • 각주 003)
    등가환·정세익·궁유한이라는 이름은 조선인과 필담창화를 한 일본인들이 조선 풍의 이름을 함께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이명계의 호는 해고(海皐)이며 뒤의 창수 부분에서도 海皐로 나오고 있는데 이 원문에는 해부(海阜)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1655년 통신사에서 1682년·1711년·1719년 통신사까지. 바로가기
  • 각주 006)
    신유한은 1719년 정사 홍치중(洪致中)·부사 황선(黃璿)·종사관 이명언(李明彦) 등 통신사 일행이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사행 중 신유한의 시를 받기 위해 수많은 일본 문사들이 모여들었고, 일본문사들로부터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 각각 주고받은 시와 필담이 『남도창화집(藍島唱和集)』·『상한창수집(桑韓唱酬集)』·『상한훈지(桑韓塤篪)』·『객관최찬집(客館璀粲集)』·『봉도유주(蓬島遺珠)』·『삼림한객창화집(三林韓客唱和集)』 등 수많은 필담창화집에 수록되어 있다. 신유한은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특히 시에 걸작이 많고 사(詞)에도 능했다. 사행일기로 『해유록(海遊錄)』이 있고, 그 밖에도 『청천집(靑泉集)』과 『충서난록(奮忠難錄)』 등이 있다. (대일외교 용어사전) 바로가기
  • 각주 007)
    현재 경상남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지역의 옛 지명. 바로가기
  • 각주 008)
    생몰기간(785년~852년). 헤이안 시대 전기의 공경(公卿)이자 한시인(漢詩人). 칙선(勅撰) 한시집 『文華秀麗集』 『経國集』, 고금의 문서를 편찬한 『秘府略』 1000권의 편수에도 참여했다. 『凌雲集』 이하의 칙선 한시집에 34수(首)가 실림. 바로가기
  • 각주 009)
    문과(文科) 시문(詩文)의 하나. 정치에 관한 계책(計策)을 물어 적게 한 것. 바로가기
  • 각주 010)
    책문(策問)에 답하는 글. 바로가기
  • 각주 011)
    하, 은, 주의 시대. 바로가기
  • 각주 012)
    천자가 나라의 토지를 나누어 주고 제후를 봉했던 것. 바로가기
  • 각주 013)
    공(公)ㆍ후(侯)ㆍ백(伯)ㆍ자(子)ㆍ남(男) 등 다섯 등급의 작위를 이른다. 바로가기
  • 각주 014)
    현재 교토후(京都府)의 남쪽 지역. 바로가기
  • 각주 015)
    주랑(周郞)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명장 주유(周瑜).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의 「주유전(周瑜傳)」에 따르면, 주유는 젊었을 때부터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래서 술에 취해서도 악사들이 연주를 잘못하면 반드시 곧 알아차리고 악사 쪽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그 무렵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주가 틀리면 주랑이 돌아본다(曲有誤, 周郞顧)”는 속요가 유행했을 정도였다. 바로가기
  • 각주 016)
    순욱(荀彧, 163~212년)은 중국 후한 말 조조 휘하의 정치가로 자는 문약(文若). 지금의 허난성 쉬창시 사람. 순욱은 용모가 단정하고 수려하며, 위장부(偉丈夫)이기도 하여 젊을 적부터 하옹(何顒)으로부터 왕을 보좌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고 칭찬을 받았다. 바로가기
  • 각주 017)
    증저(贈紵)는 모시옷을 준다는 뜻인데 정이 두터워져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정(鄭)나라 자산(子産)에게 흰 명주 띠를 선사하자 자산이 그 답례로 모시옷을 보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襄公29年』 바로가기
  • 각주 018)
    경상북도 화진. 바로가기
  • 각주 019)
    이 필담창화를 나눈 시기가 사절단이 에도의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에 머물던 5월 21일이므로, 귀국길에 올라 조선에 도착했을 즈음엔 삼복 여름이 된다. 바로가기
  • 각주 020)
    사신의 노고를 위로하는 노래. 바로가기
  • 각주 021)
    ‘홍로(鴻臚)’란 ‘외교사절의 내방을 알리는 소리’라는 뜻. 홍로관(鴻臚館)은 헤이안 시대에 설치된 외교 및 해외교역 시설이며, 홍로관의 전신으로 筑紫館, 難波館이 나라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 ‘鴻’은 커다란 새라는 의미에 유래하여 ‘크다’는 뜻이고, ‘臚’는 배(腹)라는 의미에 유래하여 ‘전하여 고하다’라는 뜻이다. 바로가기
  • 각주 022)
    사성(使星)은 한나라 화제(漢和帝) 때 이합(李郃)이 천문(天文)의 사성(使星)을 보고 두 사신이 파견될 것을 미리 알았던 고사와 관련된다. 바로가기
  • 각주 023)
    악부는 본래 중국 한대(漢代) 무제(武帝) 때에 세워진 음악을 관장하는 관청의 이름. 무제는 음악가 이연년(李延年)을 협률도위(協律都尉)에 임명하여 음악을 관장하게 했다. 바로가기
  • 각주 024)
    하량은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 친한 친구를 전송할 때 이별하고 싶지 않은 기분. 중국 전한(前漢) 시대에 이민족인 흉노에 붙잡힌 이릉(李陵)이 함께 붙잡힌 소무(蘇武)가 한나라로 돌아갈 때 보낸 시에서 비롯된 말. 이릉과 소무의 이별도 앞 구절과 같이 무제 때의 일이다. 바로가기
  • 각주 025)
    攀桂樹는 ‘벼슬을 하다’라는 뜻. (고전번역원DB 갈암집 등) 계수(桂樹)는 과거 급제를 비유하는 시어(詩語). 현량 대책(賢良對策)에서 장원을 한 극선(郤詵)에게 진 무제(晉武帝)가 소감을 묻자, 극선이 “계수나무 숲의 가지 하나를 꺾고, 곤륜산(崑崙山)의 옥돌 한 조각을 쥐었다”라고 답변했는데, 월궁(月宮)에 계수나무가 있다는 전설을 여기에 덧붙여서 과거 급제를 ‘월궁절계(月宮折桂)’로 비유하기도 한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바로가기
  • 각주 026)
    황거(皇居)의 문. 禁門, 皇居, 御所, 禁中, 禁裏, 金闕.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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