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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소성자유지

小城子遺址
  • 저필자
    정동준(충남대학교)
  • 시대
    발해/요금
  • 원소장처
    吉林省 梨樹縣 小城子鎭 小城子街
  • 시대
    발해
  • 유형
    생활
규모
남북: 200m, 동서: 300m
입지
유지는 소성자향(小城子鄕) 주지(駐地)인 소성자(小城子)가 서반부에 있으며, 길 남쪽의 소성자향(小城子鄕)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양쪽은 청나라 시기의 사찰지이고, 서북쪽은 약간 돌기된 산등성이이며, 남쪽과 동쪽은 주택지, 양식창고가 있다(복개(復盖)). 이곳에서 동쪽으로 동요하(東遼河)까지는 7km 떨어져 있고, 동북쪽으로 길림성(吉林省) 회덕현(懷德縣) 진가둔(秦家屯) 고성지와는 약 15km 떨어져 있으며, 서남쪽으로 금산향남요고성지(金山鄕南窯古城址)와는 약 10km 떨어져 있다.
유물개관
유물은 북서부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문화층의 퇴적이 매우 두꺼워서50-100cm에 달한다. 지표에는 대량의 회색 베 무늬 기와, 회색 벽돌 잔편, 베 무늬 기와, 치미 잔편, 막새기와 등 건축 재료. 泥質 도기 잔편, 缸胎陶器 잔편과 자기편 등생활용기 잔편들이 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길림성(吉林省) 이수현(梨樹縣) 소성자진(小城子鎭) 소성자가(小城子街) 서반부에 있다. 길 남쪽의 소성자진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양쪽은 청(淸) 시기(1616∼1912)의 폐사지이고, 서북쪽은 약간 돌기된 산등성이이며, 남쪽과 동쪽은 주택지, 양식창고가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7km 지점에 동요하(東遼河), 동북쪽으로 약 15km 지점에 회덕현(懷德縣) 진가둔(秦家屯) 고성, 서남쪽으로 약 10km 지점에 금산향(金山鄕) 남요(南窯) 고성이 있다.
드물게 남아 있는 벽돌조각, 기와조각, 도자기조각에 근거하여 유적의 범위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동서 약 300m, 남북 약 200m이다. 지세는 주위 지표보다 약간 높으며, 주변의 사방은 넓게 펼쳐진 요하(遼河) 평원이다. 이 유적은 유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문화층도 두꺼워서 연속된 시간이 매우 오래되었다. 벽돌·기와·막새기와와 기타 재료로 보면 모두 요대(遼代 : 907∼1125) 건축재료의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토기와 자기류의 생활용구는 비교적 금대(金代 : 1115∼1234) 도자공예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또한 이곳에서 발견된 홍색 베무늬 암키와는 발해 기와의 특징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문화의 연대로 보면, 발해 시기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드러난 모습으로 관찰하면, 유적 서북쪽에 일찍이 벽돌과 기와로 지은 건축물이, 치미 형태의 장식품이 처마와 지붕마루가 있는 전당 형태의 커다란 건축물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건축물은 어쩌면 관청·관사(館舍) 또는 종교시설로 일반 백성들이 살던 곳이 아니다. 몇십 년 전에 양식창고 서북쪽 모서리에서 판축한 성벽의 일부가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소성자(小城子) 유적은 곽의생(郭毅生)의 고증이 일리가 있다. 이곳은 『송막기문(松漠紀聞)』에 기록된 목아포(木阿鋪)이고, 요대에 건축된 성이다.
유물은 북서부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문화층의 퇴적이 매우 두꺼워서 0.5∼1m에 달한다. 지표에는 대량의 회색 베무늬 기와, 회색 벽돌조각, 베무늬 기와, 치미 조각, 막새기와 등 건축 재료. 뻘질 토기조각, 항아리용 태토의 토기조각과 자기조각 등 생활용기 조각들이 있다. 현지인에 의하면, 이곳에서 일찍이 숫돌, 쇠솥, 청동불상, 토기병 등의 유물이 출토된 적이 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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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자유지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30_002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