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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팔청수련(八淸水連; 야키요미즈노무라지)

팔청수련(八淸水連; 야키요미즈노무라지)
 당(唐)의 좌위랑장(左衛郞將) 왕문도(王文度)로부터 나왔다.
 
【주석】
1. 팔청수련(八淸水連)
팔청수(八淸水)의 씨명은 팔정수(八淨水)(『大日本古文書』 16-467)라고도 쓴다.
팔청수의 옛 성은 왕(王)이다. 팔청수련의 일족으로는 천평보자(天平寶字) 7년(763)4월 13일부 정창원 사경소문서(동 5-434)에 팔청수련성수(八淸水連城守)의 이름이 나온다.
2. 좌위랑장왕문도(左衛郞將王文度)
좌위랑장은 당의 무관으로 정5품상에 해당한다. 왕문도에 대해서는 『구당서』 백제전에 “우위랑장 왕문도를 웅진도독으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진무하게 하였다”라고 하고, 『신당서』 백제전에도 “낭장 유인원으로 하여금 백제성을 지키게 하고, 좌위랑장 왕문도를 웅진도독으로 삼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무열왕 7년 9월조에는 “당 황제가 좌위중랑장 왕문도를 보내 웅진도독으로 삼았다”라고 하여 백제 멸망 후 백제를 통치하기 위해 파견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부임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사망한다. 앞의 『삼국사기』 해당 조에 “(왕문도가) 삼년산성에 이르러서 조서를 전달하였는데, 문도(文度)는 동쪽을 향하고 대왕은 서쪽을 향하여 섰다. 칙명을 전한 후에 문도가 당 황제의 예물을 주려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사망하자 종자가 대신 일을 마쳤다”라고 한다. 이러한 왕문도의 후예라는 주장은 사서에 보이는 역사 지식에 기초한 가상의 계보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왕문도의 후손이 있었다면 당시 왜국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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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청수련(八淸水連; 야키요미즈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30_0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