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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회원숙녜(檜原宿禰; 히하라노수쿠네)

회원숙녜(檜原宿禰; 히하라노수쿠네)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 사카노우헤노오스쿠네)와 조상이 같으며, 도하직(都賀直; 츠카노아타이)의 손인 하제직(賀提直; 가테노아타이)의 후손이다.
 
【주석】
1. 회원숙녜(檜原宿禰)
회원(檜原)의 씨명은 대화국(大和國) 식상군(式上郡) 회원촌(檜原村)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기성군(磯城郡) 대삼륜정(大三輪町) 일대이다. 『속일본기』 연력(延曆) 4년(785) 6월 계유조에 판상씨(坂上氏) 등 11성 16인의 동족이 기촌(忌寸) 성에서 숙녜(宿禰) 성으로 개성하였다고 한다.
회원숙녜씨의 일족으로는 『속일본기』 연력 23년(804) 8월 경오조에 회원숙녜구작(檜原宿禰鑺作)이 있다. 회원숙녜총통(檜原宿禰聰通)은 『속일본기』 승화(承和) 6년(839) 7월계미조에 우경인 내장숙녜영자(內藏宿禰影子) 일족과 함께 내장조신(內藏朝臣)의 씨성을 받았고, 이들 중 내장숙녜고수(內藏宿禰高守)의 원조(遠祖)는 후한 영제의 후예라고 기록하고 있다.
2.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
판상대숙녜에 대해서는 앞의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 조(812) 참조.
3. 도하직(都賀直)
『일본서기』 에는 도가사주(都加使主), 동한국직(東漢掬直)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서기』 응신기 20년 9월조에 왜한직(倭漢直)의 조상 아지사주(阿知使主), 그의 아들 도가사주(都加使主)가 백성 17현을 이끌고 내귀하였다고 하고, 동 응신기 37년 2월조에는 “아지사주와 도가사주를 오(吳)에 보내어 봉공녀(縫工女)를 구하게 하였다. 이에 아지사주 등이 고구려로 건너가 오나라로 가려고 고구려에 도착하였지만 가는 길을 알 수 없었다. 이에 고구려에서 길을 아는 사람을 구하니, 고구려 왕이 구례파(久禮波)와 구례지(久禮志) 두 사람을 딸려 보내 안내자로 삼게 하였다. 그래서 오나라에 이를 수 있었다. 이에 오왕은 공녀(工女) 형원(兄媛), 제원(弟媛), 오직(吳織), 혈직(穴織) 등 4명의여자를 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동 웅략기 7년(463)조에는 “천황이 대반대련실옥에게 명하여, 동한직국(東漢直掬)으로 하여금 신한도부고귀(新漢陶部高貴), 안부견귀(鞍部堅貴), 화부인사라아(畫部因斯羅我), 금부정안나금(錦部定安那錦), 역어묘안나(譯語卯安那) 등을 상도원(上桃原), 하도원(下桃原), 진신원(眞神原) 3곳에 옮겨 살게 하였다[어떤 책에서는 길비신제군이 백제로부터 돌아와서 한수인부(漢手人部), 의봉부(衣縫部), 육인부(宍人部)를 바쳤다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동 웅략기 23년 8월조에는 동한국직(東漢掬直)이 나오는데 이 인물은 도가사주와 동일 인물이다. 양인의 이름인 ‘츠카’를 도가(都加)와 국(掬)으로 각기 달리 표기하였다. 이들 기록에서 응신기 37년에 아지사주와 도가사주를 오에 파견하여 봉공녀를 구했다는 기사는 웅략기에 신협촌주청 등을 오에 보내 모말재기 등을 데리고 왔다는 내용과 동일 전승인데, 웅략기의 기사에 사실성이 있다.
4. 하제직(賀提直)
이 인명은 기타의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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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숙녜(檜原宿禰; 히하라노수쿠네)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