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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귤수(橘守; 다치바나노모리)

#신라(新羅)
귤수(橘守; 다치바나노모리)
 삼택련(三宅連; 미야케노무라지)과 조상이 같으며, 천일모명(天日桙命; 아메노히보코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주석】
1. 귤수(橘守)
귤수의 씨명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수인기(垂仁紀) 90년조에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천황이 전도간수(田道間守)로 하여금 상세국(常世國)에 가서 사시사철의 향과(香菓)를 구해 오라고 명하였는데, 전도간수가 고생 끝에 이를 구해 왔으나 그 전해에 이미 천황이 사망하여 묘소에 과일을 바치고 통곡하며 죽었다고 한다. 그 과일이 귤(橘)이었다. 상세국의 향과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며 『일본서기』 에 상세국을 신선의 비국(秘國)이라 하므로, 이 전승에서 신선사상의 영향이 보인다. 전도간수(田道間守; 다지마모리)가 가져온 귤수(橘守; 다치바나모리)를 씨명으로 하고 삼택련과 동일 조상으로 천일모명(天日桙命)의 후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귤수씨의 일족으로는 귤수금궁(橘守金弓, 『大日本古文書』 4-532)이 있는데, 근강국(近江國) 태상군(犬上郡) 사람이다(동 5-275).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7년(840) 11월 신사조에는 귤(橘)의 글자를 사용하는 6개 씨에게 귤조신(橘朝臣)과 통한다는 이유로 귤(橘) 대신에 춘(椿)으로 성을 바꿨다고 한다. 즉 귤수씨는 이해에 춘수(椿守)로 개성하였다.
귤조신(橘朝臣)은 현태양삼천대(縣犬養三千代; 아가타노이누카이노미치요)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천무조(天武朝)에서는 명부(命婦)로서 봉사하다가 문무천황(文武天皇)의 유모가 되어 후궁의 실력자가 되었다. 그 후 당대의 실력자 등원불비등(藤原不比等)의 부인이 되어 후에 성무천황(聖武天皇)의 비가 되는 광명황후 등을 낳았다. 그의 아들 귤제형(橘諸兄)은 참의를 거쳐 대납언, 우대신, 좌대신으로 승진하여 성무와 효겸(孝謙)양 조정에서 태정관의 수반이 되었고, 천평승보 2년(750)에는 숙녜에서 조신의 성을 받아 이후 귤제형은 귤조신(橘朝臣)으로 칭하였다. 귤제형의 시대는 귤씨의 역사에서 가장 권세가 높은 시기였다. 앞의 귤조신과 통한다는 이유로 귤 대신에 춘(椿)으로 바꿨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가리킨다.
2. 삼택련(三宅連)
삼택련은 우경(右京) 제번(하)의 「삼택련」 조(911)에 “신라국 왕자 천일모명(天日桙命)의 후손이다”라고 하고, 섭진국(攝津國) 제번의 「삼택련」 조(987)에 “신라국 왕자 천일모명(天日桙命)의 후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3. 천일모명(天日桙命)
천일모명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수인기 3년 3월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신라 왕자 천일창(天日槍)이 건너왔다. 가지고 온 물건은 우태옥(羽太玉) 1개, 족고옥(足高玉) 1개, 적석옥(赤石玉) 1개, 출석(出石)의 소도(小刀) 1구, 출석(出石)의 창 1자루, 일경(日鏡) 1면, 웅신리(熊神籬) 1구로 모두 7개의 물건이었다. 곧 단마국(但馬國)에 간직하고 항상 신물(神物)로 삼았다. [일서(一書)에서 말하기를 ……천일창은 토도하에서 거슬러 올라가 북쪽으로 가서 근강국의 오명읍(吾名邑)에 들어가 잠시 살았다. 다시 근강에서 약협국을 거쳐 서쪽의 단마국에 이르러 거처할 곳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근강국의 경촌곡(鏡村谷) 도인(陶人)은 천일창을 따라온 사람들이다. 천일창은 단마의 출도(出島) 사람 태이(太耳)의 딸인 마다오(麻多烏)에게 장가를 들어 단마제조를 낳았다. 제조는 단마일유저를 낳았고, 일유저는 청언을 낳았고, 청언은 전도간수(田道間守)를 낳았다고 한다].”
이어 『고사기』 응신천황단 9(天之日矛)에도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다.
 “옛날에 신라 국왕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천지일모라고 한다. 이 사람이 건너왔다. 건너온 이유는 이렇다. 신라에 한 늪이 있었는데 이름은 아구노마라고 한다. 이 늪 근처에서 천한 여인이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여기에 무지개와 같이 빛나는 햇빛이 그녀의 음부를 비췄다. 역시 신분이 천한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겨 계속 그녀의 행동을 엿보았다. 그랬더니 그 여인이 낮잠 자던 때로부터 임신하여 적옥(赤玉)을 낳았다. 이를 엿보고 있던 그 천한 남자는 그 구슬을 달라고 하여 받아 내어 항상 허리에 싸매고 다녔다. ……남자가 허리춤의 구슬을 꺼내 그 왕자에게 바쳤다. 이에 그 천한 남자를 용서하고 구슬을 갖고 와서 마루 곁에 두었다. 그랬더니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서 왕자는 그녀와 결혼하여 본부인으로 삼았다. 이에 그 부인은 항상 맛있는 다양한 음식을 남편에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왕자는 교만해져 부인을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그 여인이 ‘무릇 저는 당신의 부인이 될 여자가 아니다. 저의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고, 몰래 작은 배를 타고 돌아와 난파(難波)에 머물렀다.[이 사람이 난파의 비매기증사(比賣碁曾社)에 있는 아가류비매신(阿加流比賣神)이라는 신이 된다.]” 위의 두 설화는 천일창(天日槍)과 천일지모(天日之矛)라는 인물의 신라에서 일본으로의 이주 전승이다.
『삼국유사』 기이 「연오랑·세오녀」 조에도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157)에 동해의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닷가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물고기 한 마리라고도 한다.]가 연오를 태우고 일본으로 가 버렸다. 일본국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이는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하고 이에 옹립하여 왕으로 삼았다.[ 『일본제기(日本帝記)』 를 보건대, 전후 시기에 신라인을 왕으로 삼은 적이 없다. 이것은 변방 읍의 소왕이고 진짜 왕이 아닐 듯하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괴이 여겨 가서 찾다가 남편이 벗어 놓은 신이 있음을 보고 역시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가 다시 그 전처럼 세오를 태우고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면서 왕에게 나아가 아뢰니, 부부가 다시 서로 만나 귀비가 되었다. ……왕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가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입니다. 지금 어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의 비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그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서 아뢰자, 그 말대로 제사를 지낸 후에 해와 달이 그 전과 같이 되었다. 그 비단을 왕의 창고에 잘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다. 또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하였다.”
신라에서 일본열도로 이주한 연오랑과 세오녀 전승은 앞의 천일창·천일지모 전승 및 사건의 모티브, 전개 과정이 매우 유사하다. 동일한 사건이 양국의 전승으로 기록된 드문 사례이다. 우선 천일창이 가져온 물건을 보면, 옥, 거울, 창(칼)은 일본의 미생 시대 이래 지배층의 고분에 자주 출토되는 유물로서 왕자를 상징하는 이른바 3종의 신기에 속하는 유물이다. 이는 천일창이 신라 왕자라는 전승과 연오랑이 일본의 왕이 되었다는 전승에 부합하는 유물들이다. 『고사기』 의 전승에 신라의 천녀(賤女)가 적옥(赤玉)을 낳았다는 일광감응의 잉태 설화에도 나오듯이 옥은 생명을 상징하는 알과 유사하고 일광난생 설화와 통한다. 실제로 신라의 고분에서는 곡옥 등 옥 제품이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칼과 창 등의 철제 무구류는 왕권과 선진 문화의 상징으로서 신라 제철문화의 유입을 말해 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연오랑과 세오녀 집단의 출항지인 포항시 옥성리 일대에서 발굴된 철제 투구, 철도끼, 철창 등의 철기류는 천일창 전승과 일치하고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 전승에서 명주 혹은 비단류를 가리키는 직세초(織細綃)가 나오는데, 이를 보관한 창고를 ‘귀비고’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본서기』 수인기 2년조의 분주에는 도노아아라사등(都奴我阿羅斯等)의 귀국 시에 적직견(赤織絹)을 받아 자기 나라의 군부(郡府)에 보관했다고 한다. 『고사기』 응신천황단에 기술된 “파도를 내는 천, 파도를 잠재우는 천, 바람을 일으키는 천, 바람을 잠재우는 천”이라는 기능을 갖는 각종 ‘비례(比禮)’가 있다. 비례에 대해서는 『고사기』 「대국주명계보」 에 뱀, 지네, 벌 등을 흔들어 내쫓는 신력이 있는 물건으로 나오듯이, 천일창이 가져온 이 천은 풍랑을 일으키고 진정시켜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신물이다. 앞의 직세초, 적직견 등과도 통하는 비단의 귀중함, 신성성을 상징하고 있다.
『연희식』 신명상 대화국 성하군 17진좌 중 하나로 사정신사(絲井神社)가 보이는데,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기성군(磯城郡) 천서정(川西町)에 소재하는 신사로서 제사의 대상으로 기직의 신을 모시고 사정조(糸井造)가 관할하고 있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정조는 천일창의 후예씨족인 삼택련과 동족관계를 맺고 있다. 즉 천일창을 시조로 하는 의제적 관계라고 생각되는데, 천일창 전승에 보이는 비단 그리고 기직 등의 직무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앞의 귤수씨(橘守氏)의 일족으로 귤수금궁(橘守金弓)이 근강국 견상군 사람이라는 사실은 『일본서기』 에 근강국의 경촌곡 도인(陶人)은 천일창을 따라온 사람들이라는 전승과 부합한다. 이 전승은 『고사기』, 『일본서기』 뿐 아니라 각 지방 『풍토기』 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신라로부터의 도래인들이 남긴 전승이다. 아마도 신라계로 되어 있는 삼택련씨의 가전(家傳) 전승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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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수(橘守; 다치바나노모리)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20_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