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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약앵부조(若櫻部造; 와카사쿠라베노미야츠코)

약앵부조(若櫻部造; 와카사쿠라베노미야츠코)
 같은 신의 3세손 출운색남명(出雲色男命; 이즈모시코오노미코토)의 후손이다. 4세손 물부장진담련(物部長眞膽連; 모모노베노나가마이노무라지)이고, 처음에 거래수별천황(去來穗別天皇; 이자호와케노스메라미코토)[시호(謚)는 이중(履中; 리추)이다.]이 반여(磐余; 이하레)의 시기지(市磯池; 이치시노이케)에 양지선(兩枝船)을 띄우고 황비(皇妃)와 각각 다른 배에 올라 연회를 즐겼다. 이때 선신여기(膳臣余磯; 가시하데노오미아레시)가 술을 올렸는데, 벚꽃이 날아와 잔 속에 떠 있었다. 천황이 기이하게 여겨 물부장진담련(物部長眞膽連)에게 벚꽃을 찾아오라고 하자, 그는 액상(掖上; 와키가미)의 실산(室山; 무로노야마)에서 벚꽃을 찾아 바쳤다. 천황이 기뻐하면서 여기(余磯)에게 치앵부신(稚櫻部臣; 와카사쿠라베노미), 장진담련(長眞膽連)에게 치앵부조(稚櫻部造; 와카사쿠라베노미야츠코)를 사성(賜姓)하였다.
 
【주석】
1. 약앵부조(若櫻部造)
약앵부(若櫻部; 와카사쿠라베)는 치앵부(稚櫻部; 와카사쿠라베)로도 표기한다. 약앵부조라는 씨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이중(履中) 3년 동11월 병인삭 신미조에 보인다. 그 내용은 “천황이 반여(磐余; 이하레)의 시기지(市磯池; 이치시노이케)에 양지선(兩枝船)을 띄우고 황비(皇妃)와 각각 다른 배에 올라 연회를 즐겼다. 이때 선신여기(膳臣余磯; 가시하데노오미아레시)가 술을 올렸는데, 벚꽃이 잔에 떨어졌다. 천황이 기이하게 여겨 물부장진담련(物部長眞膽連)을 불러 “이 꽃은 때가 아닌데 왔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가서 구해 와라.”라고 명하였다. 장진담련이 혼자 꽃을 찾아다니다가 액상(掖上; 와키가미)의 실산(室山; 무로노야마)에서 찾아 바쳤다. 천황이 드문 일이 일어난 것을 기뻐하여 궁의 이름으로 삼았다. 반여치앵궁(磐余稚櫻宮; 이하레노와카사쿠라노미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연유다. 이날 장진담련(長眞膽連)의 본래 성(姓)을 고쳐 치앵부조(稚櫻部造; 와카사쿠라베노미야츠코)라고 불렀고, 선신여기(膳臣余磯)를 치앵부신(稚櫻部臣; 와카사쿠라베노오미)이라고 불렀다.
물부장진담련(物部長眞膽連)이 약앵부조씨의 시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약앵부조씨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2. 동신(同神)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신요속일명(神饒速日命)’이라고 적었을 것이다.
3. 출운색남명(出雲色男命)
『선대구사본기』 천손본기에서는 신요속일명(神饒速日命)의 3세손 대녜명(大禰命)의 동생 출운추대신명(出雲醜大臣命; 이즈모시코노오미노미코토)이라고 적고 있다. 그가 의덕천황(懿德天皇) 때에 대신(大臣)이 되었는데, 이로써 대신이라는 칭호가 처음 생긴 것이며, 그가 왜지기언(倭志紀彦)의 여동생 진조희(眞鳥姬)를 처로 삼아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어서 신요속일명의 4세손 대목식명(大木食命)이 삼하국조(三河國造)의 조상이며, 출운추대신명의 아들이라고 적고 있다.
4. 물부장진담련(物部長眞膽連)
『일본서기』 이중(履中) 동11월 병인삭 신미조에 보인다.
5. 거래수별천황(去來穗別天皇)
일본의 제17대 이중천황(履中天皇)을 가리킨다. 거래수별천황(去來穗別天皇; 이자호와케노스메라미코토)은 『일본서기』 에 보이는 일본식 시호이며, 이중천황은 8세기에 담해삼선(淡海三船)이 찬진한 중국식 시호이다. 제16대 인덕천황의 제1황자로, 『일본서기』 에는 대형거래수별존(大兄去來穗別尊; 오에노이자호와케노미코토), 『고사기』 에서는 대강지이사본화기명(大江之伊邪本和氣命; 오에노이자호와케노미코토)이라고 불리었다. 어머니는 갈성습진언(葛城襲津彦)의 딸 반지원(磐之媛)이다. 『일본서기』 에 의하면 인덕천황 31년에 태자로 책립되었고, 인덕천황 87년 1월에 인덕천황이 죽자 친동생 주길중황자(住吉仲皇子)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다른 친동생 서치별황자(瑞齒別皇子, 뒤의 반정천황)가 이를 진압하여, 이중천황 원년 2월에 즉위하였다. 이중천황 2년 1월에 동생 서치별황자를 저군(儲君)으로 삼고, 그해 10월에 반여(磐余)에 천도하여, 소아만지숙녜, 물부이거불, 평군목토, 원대사주 등을 국정에 참여시켰다. 이중천황 3년 11월에는 도읍을 반여치앵궁이라고 불렀다. 이중천황 4년에는 전국에 국사(國史; 후미히토)를 설치하여, 기록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중천황 6년에는 장직(藏職)과 장부를 두어 재정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6. 반여시기지(磐余市磯池)
『일본서기』 이중 천황 2년 11월조에 반여지(磐余池; 이하레노이케)를 만들었다고 적고 있으며 이중천황 3년 동11월 병인삭 신미조에서는 반여(磐余; 이하레)의 시기지(市磯池; 이치시노이케)에 배를 띄웠다고 적고 있으며, 『고사기』수인천황단(垂仁天皇段)에서는 ‘왜지시사지(倭之市師池; 야마토노이치시노이케)’라고 적고 있다. 이곳은 현재 나량현(奈良縣) 앵정시(櫻井市) 지지내(池之內)이다.
7. 양지선(兩枝船)
선미(船尾)가 둘로 갈라진 통나무배를 가리킨다. 『고사기』 수인천황단에 미장(尾張; 오와리)의 상진(相津) 위가 둘로 갈라진 삼나무로 만든 배를 왜(倭; 야마토)의 시사지(市師池; 이치시노이케)와 경지(輕池; 가루노이케)에 띄웠다고 적고 있다. 『일본서기』 인덕천황 62년 하5월조에서는 원강국(遠江國; 도츠아후미노쿠니)의 국사(國司; 구니노미코토모치)가 밑은 하나인데 위가 둘로 갈라진 큰 나무가 흘러왔다고 보고하자, 인덕천황 조정에서는 왜직오자롱(倭直吾子籠; 야마토노아타히아고코)을 파견하여 그 나무로 배를 만들어 난파진(難波津)에 가져와 천황의 배로 삼았다고 적고 있다.
8. 황비(皇妃)
『일본서기』 이중 원년 7월 임자조에서 위전숙녜(葦田宿禰; 아시타노스쿠네)의 딸 흑원(黑媛; 구로히메)을 황비로 삼았다고 적고 있다. 『고사기』 이중천황단에서는 갈성지증도비고(葛城之曾都毘古; 가츠라기노소츠히코)의 아들 위전숙녜의 딸이며, 이름은 흑비매명(黑比賣命; 구로히메노미코토)이라고 적고 있다.
9. 선신여기(膳臣余磯)
『일본서기』 이중 3년 동11월 병인삭 신미조에 보인다. 이중천황이 반여(磐余; 이하레)의 시기지(市磯池; 이치시노이케)에 양지선(兩枝船)을 띄우고 황비(皇妃)와 각각 다른 배에 올라 연회를 즐길 때 선신여기(膳臣余磯; 가시하데노오미아레시)가 술을 올렸는데, 벚꽃이 잔에 떨어졌다.
『선대구사본기』 국조본기(國造本紀) 약협국조(若狹國造)조에서 윤공천황 대에 선신(膳臣)의 조상 좌백미명(佐白米命; 사시로메노미코토)의 아들 황려명(荒礪命; 아레토노미코토)을 약협국조로 정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황려명과 여기가 동일인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0. 액상실산(掖上室山)
액상이라는 지명은 명치(明治) 22년(1889)에 나량현(奈良縣) 남갈성군(南葛城郡) 액상촌(掖上村)으로 후세까지 남아 있다. 현재 이곳은 나량현(奈良縣) 어소시(御所市) 동북부이다. 실산은 『화명유취초』 에 대화국(大和國) 갈상군(葛上郡) 모루향(牟婁鄕; 무로향)이 보인다. 이곳은 현재 나량현(奈良縣) 어소시(御所市) 실(室) 부근의 산으로 추정된다.
11. 치앵부신(稚櫻部臣)
『고사기』 이중천황단에서는 “이 천황 대에 약앵부신(若櫻部臣; 와카사쿠라베노미) 등에게 약앵부(若櫻部; 와카사쿠라베)라는 이름을 사여하였다고 적고 있다. 치앵부신씨(稚櫻部臣氏)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천무천황 원년(672) 6월 갑신조와 병술조에 치앵부신오백뢰(稚櫻部臣五百瀨; 와카사쿠라베노오미오세)가 보인다. 그는 임신의 난 때 대해인황자(천무천황)의 사인(舍人)으로 활약하여, 천무천황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서 조신(朝臣)을 사성받았다. 그후 지통천황 10년(696) 9월 갑인조에서는 직대이(直大貳)의 관위와 부물(賻物)을 사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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