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액전부(額田部; 누카타베)

액전부(額田部; 누카타베)
 같은 명(命; 미코토)의 손자 의부이아도명(意富伊我都命; 오호이가츠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주석】
1. 액전부(額田部)
액전부에 대해서는 전부(田部)의 일종으로 보는 설과, 응신천황의 아들 액전대중언황자(額田大中彦皇子)의 이름을 따서 설치한 액전부(額田部) 또는 그 후손을 가리킨다고 보는 설이 있다. 그러나 액전대중언황자의 이름을 따서 액전부를 설치하였다는 것도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액전이라는 이름은 가진 사람은 액전대중언황자 외에도 있었다. 즉 추고천황의 원래 이름이 액전부황녀(額田部皇女)였고, 천무천황의 부인(夫人) 중 한 명으로 액전희명(額田姬命)이 있다.
액전부씨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신공황후 47년 하4월조의 분주(分註)에서 “천웅장언(千熊長彦)은 그 성(姓)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무장국인(武藏國人)으로, 지금 액전부(額田部), 규본수(槻本首) 등의 시조(始祖)다.”라고 적고 있다. 즉 백제가 왜국과 교류하는 것을 방해한 신라에 항의하기 위해 파견한 사신 천웅장언이 액전부 등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액전부씨 일족 중에서 『고사기』 와 육국사에 이름이 보이는 사람은 액전부광마려(額田部廣麻呂)와 액전부소제매(額田部蘇提賣) 두 사람뿐이다. 즉 『속일본기』천평(天平)13년(741) 윤3월 을묘조에서 액전부광마려(額田部廣麻呂)가 외정8위상에서 일약 외종5위하로 승서되었다.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慶雲) 2년(768) 2월 계미조에서는 석견국(石見國) 미농군(美濃郡)의 액전부소제매(額田部蘇提賣)가 과부로서 수절하면서 재산을 늘려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었으므로 그녀의 전조(田租)를 종신 면제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상이 사서에 보이는 액전부씨로, 유력한 씨족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문서에서 액전부씨가 미장국(尾張國), 상총국(上總國), 상야국(上野國), 출운국(出雲國), 파마국(播磨國), 장문국(長門國), 축전국(筑前國), 비후국(肥後國)에 거주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어, 액전부씨가 일본열도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액전부씨의 반조씨족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액전부련씨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추고 16년(608) 추8월 신축삭 계묘조에서 보이는 액전부련비라부(額田部連比羅夫)가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당(실제는 수)의 사신을 영접하였다고 하는데, 그 후 추고 18년에는 신라 사신을 영접하였고, 추고천황 19년에는 약렵(藥獵)에서 지휘를 맡고 있다. 그후 효덕 대인 대화 원년 8월에 법두(法頭)로 임명된 액전부련생(額田部連甥)이 있다. 액전부련씨는 천무천황 13년 12월에 숙녜를 사성받았다. 그러나 그 후 사서에서 액전부숙녜씨는 별로 활약상이 보이지 않아, 『속일본기』 에 보이는 액전부숙녜삼부(額田部宿禰三富)가 유일한데, 그는 천평보자(天平寶字) 2년(758) 7월에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서되었다.
2. 동명손(同命孫)
앞에서 언급한 『신찬성씨록』 좌경 신별(하) 「액전부탕좌련」 조에 보이는 천진언근명(天津彦根命; 아마츠히코네노미코토)의 아들 명립천어영명(明立天御影命; 아케타츠미카게노미코토)을 가리킨다.
3. 의부이아도명(意富伊我都命)
『신찬성씨록』 대화국 신별 「액전부하전련(額田部河田連)」 조(562)에서는 “같은 신의 3세손 의부이아도명(意富伊我都命; 오호이가츠노미코토)의 후손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여기서 같은 신은 「액전부하전련」 조 앞의 「삼지부련」 조에 보이는 천진언근명(天津彦根命)을 가리킨다. 즉 의부이아도명은 천진언근명의 3세손이고, 명립천어영명(明立天御影命)의 손자가 된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액전부(額田部; 누카타베)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10_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