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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視羆)가 전쟁을 준비하자 많은 무리가 귀부함

  • 국가
    토욕혼(吐谷渾)
시비(視羆)는 성정이 영명하며 과단성이 있고 뛰어난 지략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박사(博士)인 금성(金城) 주 001
각주 001)
金城:縣名이며, 前漢 때 설치되었고 金城郡에 속해 있다. 治所는 현재 甘肅省 蘭州市 西北 西固城에 위치해 있다. 『漢書』 「地理志」 金城郡注에 應劭曰, “初築城得金, 故曰金城”이라 하였고, 臣瓚曰, “稱金, 取其堅固也, 故墨子曰 ‘雖金城湯池’”라 하였다. 顔師古曰, “瓚說是也. 一云, 以郡在京師之西, 故謂金城. 金, 西方之行”이라고 하였다. 五胡十六國시대 前涼이 金城의 郡治로 삼았고 西秦은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北魏시대에 폐해졌다가 隋 大業 초에 다시 子城縣으로 명칭을 바꾸어 설치되었고 金城郡治가 되었다. 隋末에 다시 五泉縣으로 개칭되었다가 唐 咸亨 2년(671)에 다시 金城縣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고 난주의 치소가 되었다. 天寶 원년(742) 또다시 五泉縣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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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건포(騫苞)에게 넌지시 말하기를, “『역(易)』에 ‘동정(動靜)에 일정함이 있으니 강유(剛柔)의 구분이 정해진다’고 하였다.주 002
각주 002)
『周易』 「繫辭」上의 구절이다. 「繫辭傳」의 설명에는 “動者, 陽之常, 靜者, 陰之常, 剛柔者, 易中卦爻陰陽之稱也”라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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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께서는 인(仁)으로 천하를 다스리고 위엄과 형벌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때문에 강유(剛柔)가 나뉘지 않아 이웃한 적들에게 경시를 받았다. 당인(當仁)은 불양(不讓)이라 하였으니, 주 003
각주 003)
‘當仁不讓’:『論語』 「衛靈公」篇에 “當仁不讓於師”, 『朱熹集注』에 “當仁, 以仁爲己任也;雖師亦無所遜. 言當勇往而必爲也.” 여기에서 유래되어 응당 해야 할 일을 주동적으로 행하며 절대 위축되지 않는 일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되었다. 이처럼 유교 경전 구절을 이용하여 자유자재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중원의 어느 사대부 못지 않은 학문적 소양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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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뒷짐을 진 채 묵묵히 있어야겠는가? 지금부터 말에 꼴을 먹이고 군사를 단련시켜 중국과 한번 겨뤄보고자 하는데, 선생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라고 하였다. 건포(騫苞)가 말하기를, “대왕(大王)주 004
각주 004)
大王:五胡十六國시대 군주의 칭호는 皇帝, 大王, 王, 公, 大單于 등 매우 다양하다. 皇帝를 칭한 나라는 成漢, 前趙, 冉魏, 前燕, 前涼, 前秦, 西燕, 後燕, 南燕, 後秦, 夏, 北魏 13개국이고 이들도 처음에는 王 혹은 天王을 칭한 뒤에 황제의 위에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天王이라는 칭호를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天王은 원래 周왕조의 왕을 나타내는 말로, 『史記』나 『三國志』에서는 皇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五胡十六國시대에는 天王은 皇帝에 준하는 지위와 칭호로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後趙의 石虎는 신하의 皇帝 칭호 권유에도 불구하고 天王을 칭했고, 前秦의 苻堅도 五胡十六國시대 華北을 평정하여 최대 세력을 자랑했지만 天王에 자처하였다. 여기에서의 大王은 이러한 天王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三岐良章,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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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말씀은 세속을 뛰어넘는 방략이십니다. 진(秦)농(隴)주 005
각주 005)
秦隴:秦嶺과 隴山을 병칭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陝西省과 甘肅省 일대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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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영웅 호걸들이 모두들 바라던 바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시비가] 허심탄회하게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받아들이니 많은 무리가 그에게 귀부하기를 마치 고향으로 돌아오듯 하였다.

  • 각주 001)
    金城:縣名이며, 前漢 때 설치되었고 金城郡에 속해 있다. 治所는 현재 甘肅省 蘭州市 西北 西固城에 위치해 있다. 『漢書』 「地理志」 金城郡注에 應劭曰, “初築城得金, 故曰金城”이라 하였고, 臣瓚曰, “稱金, 取其堅固也, 故墨子曰 ‘雖金城湯池’”라 하였다. 顔師古曰, “瓚說是也. 一云, 以郡在京師之西, 故謂金城. 金, 西方之行”이라고 하였다. 五胡十六國시대 前涼이 金城의 郡治로 삼았고 西秦은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北魏시대에 폐해졌다가 隋 大業 초에 다시 子城縣으로 명칭을 바꾸어 설치되었고 金城郡治가 되었다. 隋末에 다시 五泉縣으로 개칭되었다가 唐 咸亨 2년(671)에 다시 金城縣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고 난주의 치소가 되었다. 天寶 원년(742) 또다시 五泉縣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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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周易』 「繫辭」上의 구절이다. 「繫辭傳」의 설명에는 “動者, 陽之常, 靜者, 陰之常, 剛柔者, 易中卦爻陰陽之稱也”라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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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當仁不讓’:『論語』 「衛靈公」篇에 “當仁不讓於師”, 『朱熹集注』에 “當仁, 以仁爲己任也;雖師亦無所遜. 言當勇往而必爲也.” 여기에서 유래되어 응당 해야 할 일을 주동적으로 행하며 절대 위축되지 않는 일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되었다. 이처럼 유교 경전 구절을 이용하여 자유자재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중원의 어느 사대부 못지 않은 학문적 소양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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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大王:五胡十六國시대 군주의 칭호는 皇帝, 大王, 王, 公, 大單于 등 매우 다양하다. 皇帝를 칭한 나라는 成漢, 前趙, 冉魏, 前燕, 前涼, 前秦, 西燕, 後燕, 南燕, 後秦, 夏, 北魏 13개국이고 이들도 처음에는 王 혹은 天王을 칭한 뒤에 황제의 위에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天王이라는 칭호를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天王은 원래 周왕조의 왕을 나타내는 말로, 『史記』나 『三國志』에서는 皇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五胡十六國시대에는 天王은 皇帝에 준하는 지위와 칭호로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後趙의 石虎는 신하의 皇帝 칭호 권유에도 불구하고 天王을 칭했고, 前秦의 苻堅도 五胡十六國시대 華北을 평정하여 최대 세력을 자랑했지만 天王에 자처하였다. 여기에서의 大王은 이러한 天王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三岐良章,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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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秦隴:秦嶺과 隴山을 병칭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陝西省과 甘肅省 일대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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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시비(視羆), 건포(騫苞), 건포(騫苞), 시비
지명
금성(金城), 진(秦), 농(隴)
서명
역(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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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視羆)가 전쟁을 준비하자 많은 무리가 귀부함 자료번호 : jo.k_0005_0097_004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