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십사도구고성

十四道溝遺址
  • 저필자
    김지영(숙명여자대학교)
  • 날짜
    1960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백산시 장백현 십사도구진 십사도구촌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백산시 장백현 십사도구진 십사도구촌 남쪽 약 1.5km 위치
유적개관
1960년에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성은 압록강과 십사도구하 합류처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평면형태 장방형으로 동서 길이 40m, 남북 20m이다. 관애는 고성의 서쪽에 고성의 남벽과 일직선으로 500m가량 축조하였다.
유물개관
철솥, 석부, 토기편 등
참고문헌
「文物地圖集」
해설
중국 길림성 백산시 장백현 십사도구진 십사도구촌 남쪽 약 1.5km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임강(臨江)-장백(長白) 도로가 동서 방향으로 뚫려 있으며, 십사도구하가 압록강으로 유입되는 합류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십사도구하와의 거리는 20여m, 압록강과의 거리도 100여m에 불과하다. 서쪽 약 50m 거리에 십사도구 풍력발전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고 풍차를 달았던 지지대만 남아 있다. 압록강의 지류인 십사도구하가 남쪽으로 흐르다가 고성의 동쪽을 지나 동남쪽에서 압록강과 합류한다. 고성과 차단성[關隘]은 충적대지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주변의 토질이 상당히 비옥하여 논밭으로 개강되어 경작되고 있다. 1960년에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1986년 실측과 유물 채집을 하여 기록하여 보고서를 『장백현문물지 長白縣文物志』에 발표하였고, 2004년 재조사하여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여 『동북사지 東北史地』에 발표하였다.
유적지의 형태는 장방형(長方形)으로 동서길이 40m, 남북너비 20m로 마을의 사방을 아래쪽 너비 5m, 위쪽 너비 2m, 높이 2m 전후의 담장으로 둘러싸고 있다. 고성의 성벽은 기단 너비 5m, 윗 너비 2m, 높이 2m 전후로 흙과 돌을 섞어 쌓았으며[土石混築], 차단성은 고성의 서쪽에 마을을 두른 남쪽 벽과 일직선으로 약 500m의 길이로 산 아래까지 쌓았다.
고성과 차단성 안팎이 모두 농지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어 훼손이 심한데 고성의 성벽은 동북 모서리 부분, 남벽 동쪽 끝만 조금 남아 있지만 안과 밖의 토양과 색깔이 달라 전체 범위는 판별할 수 있다. 차단성도 거의 모두 사라지고 현재 밭으로 경작되는 주변 지역과 달리 진흙과 갈대밭으로 남아 있어 전체 범위를 쉽게 판별할 수 있다. 마을 유적 부근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고구려 시기의 쇠솥, 회색 평기와, 회색 토기의 입구 조각과 손잡이 등 고구려 시기의 것과 유사한 토기 등이 있으며, 돌자귀[石錛]나 돌도끼, 돌칼, 돌화살촉 등 원시사회 말기의 유물도 있다.
십사도구고성은 형태상 집안 장천고성(長川古城)과 유사하며, 차단성인 관애는 집안 노변장관애(老邊墻關隘)와 비슷하다. 출토된 쇠솥은 집안 승리 7대(勝利7隊) 출토품과 유사하며, 토기 손잡이는 동대자(東臺子) 유적 출토품과 비슷하다. 이러한 것들로 볼 때 이 유적은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협사(夾沙)토기를 비롯하여 돌도끼나 반달돌칼 등은 원시사회 말기의 유물로 추정되기 때문에 십사도구고성 및 차단성이 원시사회 유적 위에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십사도구고성과 차단성은 소형 평지성과 차단성이 동시에 축조되었다는 점에서 역참과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것으로 보고 특히 차단성이 압록강 오른쪽 연안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길게 축조되었다는 점에서 압록강 상류의 교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십사도구고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20_002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