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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쇼군 이에하루(家治)가 쇼군 선하(宣下)를 마치고 내빙(來聘)한 조선인이 오사카(大坂)에 이르기까지 여정

一. 쇼군 이에하루(家治)가 쇼군 선하(宣下)주 001
각주 001)
쇼군 선하(宣下) : 무가시대에 교토의 조정(朝廷)이 선지(宣旨)를 내려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을 보임하는 의식. 1192년 가마쿠라(鎌倉) 막부 초대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를 임명한 것이 최초이다. 선지(宣旨)란 헤이안(平安) 말기 이후 천황의 명령을 전하는 공문서를 말한다. 천황이 파견한 칙사(勅使)가 선지를 쇼군에게 전달하면, 쇼군은 선지가 담긴 상자에 사금(砂金)을 넣어 돌려보내는 것이 항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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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마치고주 002
각주 002)
이 통신사의 방일 명목은 ‘도쿠가와 이에하루의 쇼군 취임 축하’였다. 9대 쇼군 이에시게(家重)가 1760년 5월 쇼군에서 물러나고, 9월 이에하루(家治)가 천황으로부터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에 보임되었다. 그 후 1761년 6월 前 쇼군 이에시게의 사거(死去), 1762년 정월 조선의 문위행 파견, 1762년 5월 쓰시마의 번주 교체(소 요시아리[宗義蕃]가 물러나고 소 요시나가[宗義暢]가 가독을 계승) 등이 이어졌고, 조선에서는 1763년 7월 정사(正使) 부제학(副提學) 조엄(趙曮), 부사(副使) 보덕(輔德) 이인배(李仁培), 종사관 수찬(修撰) 김상익(金相翊)이 三使에 임명되었다. 그해 8월 한성을 출발한 통신사 일행은 8월 하순 부산에 도착하여 해풍의 변화를 기다리면서 40일가량을 부산에서 보내다가 10월 초순 부산을 출항했다. 1764년 2월 중순 에도에 도착했다. 이에하루의 쇼군 취임 후 통신사의 에도 도착이 실현되기까지 3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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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키(寶曆) 14년(甲申)주 003
각주 003)
17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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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조선인이 내빙(來聘), 2월 16일 에도(江府)에 도착하다.
 一. 호레키 13년(癸未)주 004
각주 004)
17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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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조선국에서 출발한 지 17일로 동래부(東萊府)에 이르렀고, 30일 만에 승선, 10일 만에 부산해 항구를 출범하다.주 005
각주 005)
본문에 ‘8월에 조선국을 출발하다’고 되어 있으나, 통신사 일행이 한성(漢城)을 출발한 것이 8월이다. (『朝鮮通信使と徳川幕府』,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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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해에서 쓰시마(對馬)까지 해상 25리
   쓰시마에서 이키(壹岐)주 006
각주 006)
이키노시마(壹岐島)는 규슈(九州) 북쪽의 현해탄에 있는 남북 17km·동서 14km의 섬이다. 규슈와 쓰시마의 중간에 위치한다. 중세에는 마쓰라도(松浦党)의 세력하에 있었고, 몽골과 고려 연합군에 의해 두 차례 침략을 받았다. 에도시대에는 마쓰라도의 흐름을 이은 히라도 마쓰라(松浦)씨가 다스리는 히라도번(平戶藩)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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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同 30리
   이키에서 히라도(平戶)까지 同 13리
   히라도에서 치쿠젠(筑前)주 007
각주 007)
현재 규슈 후쿠오카(福岡)현 지역을 지칭하는 옛 국명(國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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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同 10리
   치쿠젠에서 겐카이주 008
각주 008)
겐카이(玄海)는 후쿠오카현 북부 무나카타군(宗像郡)에 있던 옛 지명이자 사가(佐賀)현 북부 겐카이나다(현해탄, 玄界灘)에 면한 지명을 가리키는데, 통신사의 배는 히라도에서 오사카를 향해 항해하므로 방향상 후쿠오카의 지명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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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同 15리
   겐카이에서 시모노세키(下關)까지 同 14리
   시모노세키에서 오사카(大坂)까지
 부산해에서 오사카까지 해상 253리, 조선국 출발로부터 에도까지 무탈하다면 대략 소요되는 일수가 170여 일.
   단, 치쿠젠에 도착할 무렵 부사(副使)가 탄 배가 파선(破船)되어주 009
각주 009)
규슈 아이노시마(藍嶋)에 왔을 때 부사 이인배(李仁培)가 승선한 배가 침몰했다. 부사는 작은 배로 갈아타는 데 성공해서 육지에 상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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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쿠젠에서 수리하려고 살펴보았으나 시일이 걸려서 그만두고 조선으로 보내다. 이때 20여 일 치쿠젠에 체류하다.

  • 각주 001)
    쇼군 선하(宣下) : 무가시대에 교토의 조정(朝廷)이 선지(宣旨)를 내려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을 보임하는 의식. 1192년 가마쿠라(鎌倉) 막부 초대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를 임명한 것이 최초이다. 선지(宣旨)란 헤이안(平安) 말기 이후 천황의 명령을 전하는 공문서를 말한다. 천황이 파견한 칙사(勅使)가 선지를 쇼군에게 전달하면, 쇼군은 선지가 담긴 상자에 사금(砂金)을 넣어 돌려보내는 것이 항례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 통신사의 방일 명목은 ‘도쿠가와 이에하루의 쇼군 취임 축하’였다. 9대 쇼군 이에시게(家重)가 1760년 5월 쇼군에서 물러나고, 9월 이에하루(家治)가 천황으로부터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에 보임되었다. 그 후 1761년 6월 前 쇼군 이에시게의 사거(死去), 1762년 정월 조선의 문위행 파견, 1762년 5월 쓰시마의 번주 교체(소 요시아리[宗義蕃]가 물러나고 소 요시나가[宗義暢]가 가독을 계승) 등이 이어졌고, 조선에서는 1763년 7월 정사(正使) 부제학(副提學) 조엄(趙曮), 부사(副使) 보덕(輔德) 이인배(李仁培), 종사관 수찬(修撰) 김상익(金相翊)이 三使에 임명되었다. 그해 8월 한성을 출발한 통신사 일행은 8월 하순 부산에 도착하여 해풍의 변화를 기다리면서 40일가량을 부산에서 보내다가 10월 초순 부산을 출항했다. 1764년 2월 중순 에도에 도착했다. 이에하루의 쇼군 취임 후 통신사의 에도 도착이 실현되기까지 3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3)
    1764년. 바로가기
  • 각주 004)
    1763년. 바로가기
  • 각주 005)
    본문에 ‘8월에 조선국을 출발하다’고 되어 있으나, 통신사 일행이 한성(漢城)을 출발한 것이 8월이다. (『朝鮮通信使と徳川幕府』, 259쪽) 바로가기
  • 각주 006)
    이키노시마(壹岐島)는 규슈(九州) 북쪽의 현해탄에 있는 남북 17km·동서 14km의 섬이다. 규슈와 쓰시마의 중간에 위치한다. 중세에는 마쓰라도(松浦党)의 세력하에 있었고, 몽골과 고려 연합군에 의해 두 차례 침략을 받았다. 에도시대에는 마쓰라도의 흐름을 이은 히라도 마쓰라(松浦)씨가 다스리는 히라도번(平戶藩)의 일부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7)
    현재 규슈 후쿠오카(福岡)현 지역을 지칭하는 옛 국명(國名). 바로가기
  • 각주 008)
    겐카이(玄海)는 후쿠오카현 북부 무나카타군(宗像郡)에 있던 옛 지명이자 사가(佐賀)현 북부 겐카이나다(현해탄, 玄界灘)에 면한 지명을 가리키는데, 통신사의 배는 히라도에서 오사카를 향해 항해하므로 방향상 후쿠오카의 지명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009)
    규슈 아이노시마(藍嶋)에 왔을 때 부사 이인배(李仁培)가 승선한 배가 침몰했다. 부사는 작은 배로 갈아타는 데 성공해서 육지에 상륙할 수 있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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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이에하루(家治)가 쇼군 선하(宣下)를 마치고 내빙(來聘)한 조선인이 오사카(大坂)에 이르기까지 여정 자료번호 : kn.k_0006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