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에서 강원도 암행 어사 조석명의 서계에 따라 군보(軍保)를 단속하는 절목을 강구하게 하다
사료해설
이 사료는 숙종 때 국방강화책을 기록한 것이다. 숙종 40년(1714년) 강원도 암행어사 조석명(趙錫命)이 영동지방의 해안방어를 논의하는 중에 평해(平海)·울진(蔚珍)은 울릉도와 거리가 멀지 않고, 일본배의 왕래가 빈번한데도 해상방어가 허술하니 심히 염려가 된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비변사에서 강원도 감찰사와 수령들에게 연안의 해상방어를 강화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조석명은 울릉도 동쪽으로는 섬이 잇달아 있고, 그 섬들은 일본의 경계와 접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울릉도 동쪽으로 잇달아 있는 섬이란 오늘날의 죽도(竹島, 竹嶼)와 독도를 가리킨다. 이는 조선이 ‘울릉도 쟁계’ 이후 일본과의 국경을 더욱 분명하게 파악하였음을 보여준다.
원문
○備邊司因江原道暗行御史趙錫命書啓, 令江原道臣、守令, 講究軍保團束節目。 蓋錫命以爲, 平、蔚之距鬱陵島不遠, 倭往來頻數, 而東沿一帶八百餘里之間, 只有數鎭, 海防踈虞, 誠甚可慮云故也。
번역문
비변사(備邊司)에서 강원도 암행 어사 조석명(趙錫命)의 서계(書啓)로 인하여 강원도의 도신(道臣)과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군보(軍保)를 단속하는 절목(節目)을 강구(講究)하게 하였다. 대개 조석명이 ‘평해(平海)·울진(蔚珍)은 울릉도와 거리가 멀지 않고 왜선(倭船)의 왕래가 빈번한데, 관동(關東) 연해(沿海)의 일대(一帶) 8백여 리 사이에 다만 두서너 진영(鎭營)이 있을 뿐이니, 해방(海防)의 허술함이 참으로 매우 염려가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